정지영 감독
올해 여든(1946년생)의 정지영 감독에게는 투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피가 끓던 시절 UIP직배 저지투쟁으로 극장에 뱀을 푸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은 행동하는 영화감독 정지영은 빨치산을 다룬 <남부군>, 베트남전을 담은 <하얀 전쟁>, 사법부에 분연히 ‘활’을 겨눈 <부러진 화살>, 독재정권의 고문기술자를 담아낸 <남영동1985> 등 부정과 권력에 맞서 결코 꺾이지 않는 집념과 고집을 보여주었다. 그가 내놓은 신작은 대한민국 건국과정에서 일어난 끔찍한 ‘제주4·3’이야기이다. 정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이야기하려고 했단다. 개봉을 앞두고 감독을 만나 <내 이름은>에 대해 물어보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작품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아보려는 노(老)감독의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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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는지.
▶정지영 감독: “시나리오 초고는 제주43평화재단의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야기이다. ‘내 이름’을 우연히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심사위원들은 4·3을 정면에서 다루는 게 신선해서 뽑았던 모양인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4·3을 모르니 그것을 전면에서 다루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4·3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게 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배우는 이야기지만 이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폭력이었다. 제주에서는 4·3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고, 하루빨리 대중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다큐는 여러 편 나왔지만 그 실상을 알리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내 이름은'
Q. 개봉일 날 대통령이 이 영화를 관람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지영 감독: “개봉을 앞두고 초조해 하는 타입은 아닌데 이번엔 좀 다르다. 고생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사전 시사 끝나고 관객들이 말이 없기에 물어봤다. 어떤 기자가 재밌는데, 너무 재밌다고 말하면 실례가 될 것 같다고 대답하더라. 그래서 GV때 내가 그런다 ‘이건 재미고,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대통령이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청와대에서 관객을 모집해서 시사회를 하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4·3을 앞두고 ‘국가폭력 범죄 시효 없애 책임 물을 것’이라고 말한 게 마음에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Q. 재밌는 대중, 상업영화를 지향하는가.
▶정지영 감독: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요소인 코믹하거나 신나는 액션을 잘 못한다. 난 그런 능력이 없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이런 것도 못한다. 나는 내 영화를 관객들이 보고 이게 맞니 틀리니 이런 이야기를 하기를 바라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만들면 관객들이 재밌게 볼 거야’하고 시나리오를 쓴다. 내 작품 중 그다지 난해한 작품이 없다. 철학을 담아 고민하게 하는 게 없다. 그래서 난 스스로 예술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대중영화감독이다.“
Q. 크라우드 펀딩으로 완성되었다. 투자 받기가 어려웠는지.
▶정지영 감독: ”많은 영화인들이 제주4·3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가 안 된 이유가 있다. 투자하려는 데가 없다. 이런 영화에는 투자를 안 한다. 어차피 아무도 투자를 안 할 것이니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크라우드펀딩을 생각했다. 나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사회명망가들을 모아서 제작추진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함세웅 신부, 백낙청 교수, 조정래 작가, 현기영 작가 등 많은 사람을 만나서 제주4·3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들이 허락을 하면서 시나리오를 보자거나 내용이 뭐냐고 물어보지도 않더라. 그것에 용기를 얻었다. 정지영을 신뢰해 준 것이다. 텀블백 크라우드펀딩으로 2개월 만에 4억 원을 모을 수 있었다. 홍보가 필요해서 ‘뉴스공장’과 ‘매불쇼’에 나갔다. 앵벌이를 한 셈이다. 그것을 시드머니로 삼았고, 스탭들이 나서서 신용보증기금 10억 빌리고. 그렇게 겨우 완성한 것이다.“
Q. 영화의 배경은 1998년이다.
▶정지영 감독: ”제주4·3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해가 1998년이다. 현기영 작가가 소설을 썼다. 이 이야기를 다룬 공연도 종종 있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소규모로 이어져온 것이다. 1998년 전까지는 제주4·3은 쉬쉬해야했다. 영화를 보면 수업시간에 국사선생님이 학생들에게 4·3이야기 하지 말라고 그런다. 하지만 누군가는 관심을 가진다. 학생 영옥이 관심이 없다가 조금씩 그게 엄마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정지영 감독
Q. 정순이란 인물이 4·3비극을 관통한다.
▶정지영 감독: ”여자 캐릭터를 잘 못 그린다. 자신이 없다. 정순이 캐릭터를 그리면서 과거라는 큰 틀만 생각했었다. 현대사의 아픈 역사, 그 폭력의 역사를 그쳐온 인물이다. 정순이란 인물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한국의 어머니로 상징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 이야기는 염혜란 배우에겐 자세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다. 상징인데 규정지으면 원하는 캐릭터가 안 나온다. 배우가 잘 소화한 것 같다.“
Q. 염혜란 배우는?
▶정지영 감독: ”연기로 한 시대를 주름잡지 않을까? 염혜란은 천부적인 연기자이다. <소년들>에서 잠깐 나오는데 처음 연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시나리오 읽고 바로 캐치를 한다. 고집쟁이 형사 남편이랑 살아온 여자인데 너무 간단하고, 쉽고, 절절하게, 감칠맛 있게 그 캐릭터를 연기한다. 설명을 안 해줘도 안다. 시나리오 고치는 작업을 하면서 정순을 바로 염혜란 배우라 생각했다.“
Q. 제주도 사투리에 대해. ‘조배죽’이란 말.
▶정지영 감독: ”‘조배죽’은 제주도에서만 쓰던 말이다. 제주도 말을 일일이 자막을 달면 보기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는 학교에서는 표준말을 쓴다. 약간만 섞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엄마는 제주 억양이 심해야 리얼할 것 같았다.“
Q.폭력의 역사에 대해
▶정지영 감독: ”제주4·3과 관련하여 폭력의 메카니즘에 대한 연구는 많다. 개인과 개인의 폭력, 상하간의 폭력, 집단 간의 폭력 등 여러 종류의 매카니즘이 있다. 집단적인 국가 폭력을 들여다봤을 때 어떤 집단에 새로운 질서가 생기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강한 자가 왔을 때 갈등이 생기고 나중에 집단폭력으로 전이된다. 제주4·3의 매카니즘도 그럴 것이다. 학교폭력도 마찬가지이다. 국가폭력과 학교폭력을 병치시킨 이유가 있다. 국가폭력이 너무 끔찍하니 완충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이 과거의 폭력으로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세습된다. 영화를 보면 뺨때리기가 나온다.“
Q. 학교폭력의 서사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올랐다.
▶정지영 감독: ”그런 기시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전학 온 학생이 등장하니까. 약한 아이가 전학 와서 그 학교에 자리 잡고 있는 폭력을 만나는 캐릭터이다. 여기서는 조금 다르게 집단적 폭력의 양상을 보인다. 이번에 학생들을 연기한 배우들을 칭찬해주고 싶다.“
Q. 학생 연기자들은 제주4·3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가.
▶정지영 감독: ”너무 많이 알면 연기에 지장을 줄 것이다. 제주의 아이를 연기해야하니. 극중에서 어른들이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해 준다. 하지만 소문은 들었을 것이다. 그런 정도만 알면 된다고 보았다. 관련 동영상 몇 개만 보내줬다.“
영화 '내 이름은'
Q.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어떻게 화면에 담을 것인가.
▶정지영 감독: ”사실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장면으로 보리밭이 있다. 주인공이 어릴 적 추억을 더듬어가는 장면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광을 떠올리겠지만 실제 4·3을 생각하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제주 출신의 강요배 화가가 그린 풍광을 염두에 뒀다. 제주도 사람이 그린 제주도는 거칠다. 척박하고 힘든 삶이다. 풍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 화산 때문일 것이다. 외지에서 볼 수 없으니까. 강요배 화가의 영향을 받아 그런 이미지를 담아내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Q. 염혜란 배우의 마지막 춤 장면은 제주도의 풍광에 녹아든다.
▶정지영 감독: ”제주의 자연이 도와줄 줄 알았다. 바람이 불어오고 흔들리는 그런 이미지를 생각했었다. 국가폭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그런 풍광에 그런 바람. 그런데 바람이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Q. 팝송이 나온다. 4.3 당시 라디오에서 미군이 듣는 영어노래. 어떤 곡인가.
▶정지영 감독: ”정순이 잊어버린 기억의 되찾는 실마리로 작용하는 곡이다. 흑인 영가이다. 유색인종의 아픔을 남아낸 곡이다. 미국에서 흑백 인종차별이 심할 때 나온 곡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1949년에 미군 라디오방송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가사 내용도 어울렸다. ‘나는 가끔 엄마가 없다는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내용이다. 4·3의 폭력과도 맞고. 더 크게는 우리의 상실감, 조국 분단의 상실감이 들었다. 온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상실감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Q. 제작비는 충분했는지.
▶정지영 감독: ”사실 돈이 모자라서 어려웠다. 영화촬영이란 것이 그렇다. 촬영회수를 줄이는 게 방법이다. 그러자니 항상 현장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사실 (충무로에서) 촬영회수를 허비한 게 나이다. 남부군을 직을 때 100회차 이상이었다. 4계절을 담고 싶었다. 이번 작업에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제작비가 충분하다면 더 잘 찍었겠지.“
Q. 보리밭 장면은?
▶정지영 감독: ”처음엔 유채꽃밭을 생각했었다. 화려함과 처참함이 대비될 때 그 아픔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데서 죽어가다니. 그런데 유채는 키가 크지 않다. 그리고 유채꽃은 1950년대부터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리 넓은 유채밭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포기하고 메밀밭이나 보리밭을 생각한 것이다.“
Q. 정순이 갖고 있는 죄책감에 대해서.
▶정지영 감독: ”그 지점이 바로 제주4·3이 갖고 있는 부채의식이다. 아직도 쉬쉬하는 이유가 된다. 자기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다.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가 희생당했다. 그런 게 중첩된 죄의식이 영화에 담겨야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 성을 바꿔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그 과정을 보니 정순이 생각이 났다.“
정지영 감독
Q. 사실 국가폭력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학교에서 친구들이 서로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서구 관객들이 그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던지?
▶정지영 감독: ”그런 질문이 나왔었다. 국가폭력 안에서 이뤄지는 남성의 폭력성을 강조한 게 아닌가라는 질문이었다. 마을 사람이 모였을 때 뺨을 때리는 것도 남자이고, 학교에서도 남학생이 폭력을 휘두른다. 그때 내가 한 대답이 “그 질문이 내 무의식에 있는 것을 끄집어낸 준 것 같다‘고 했다. 뺨 때리는 장면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에서 따온 것이다.”
Q.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정지영 감독: “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년배와 후배들도 영화를 다 준비하고 있지만 진행이 쉽지 않다. ’애들은 나만큼 노력을 안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난 비즈니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대포‘이며 유령부득으로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운이 좋아서 이렇게 영화를 완성한 것 같다. 언제까지 이렇게 영화를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많이는 못할 것 같다. 사회가 급변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테마에 관객들이 계속 들어올까? 안 들어올 것 같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볼 때 나이도 나이이다. 정지영을 기다리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 독립영화라면 가능할까?”
Q. 다루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정지영 감독: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그 다음 작품에 대해서는 생각은 많이 하지 않는다. 할지 안할지도 모르니. 절망만 하게 되니까. 그래서 다음 작품까지만 준비하려고 한다.”
정지영 감독의 대한민국 현대사 탐독 ’내 이름은‘은 16일 개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