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목지
공포영화에 빠져들면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저 사람은 자기가 죽은 것을 모르고 있구나“라고.
아주 오래 전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TV드라마 <전설의 고향> 이래로 한국 공포영화에서 '원귀'(寃鬼)와 '해원'(解寃)은 중요한 포인트이다. 인적 드문, 낯선 곳에 내던져진 사람들은 점점 그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곳이 저수지라면? 해가 저물고, 발목에 물이 차오르면서 봉인이 풀리게 된다. 이상민 감독의 신작 <살목지>가 바로 그런 영화이다.
●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저수지에서 밤낚시를 하던 커플이 순식간에 미지의 힘에 끌려 물속으로 사라지는 도입부가 지나면 곧장 로드맵 서비스업체 사정을 보여준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탑재되는 지도서비스에서 어느 특정지점의 확대 이미지에 정체불명의 모습이 비친다는 것이다. 차도가 끊긴 산길, 그 저수지로 향하는 로드뷰 이미지에 마치 물귀신처럼 고개를 내민 여자의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업체는 서둘러 새로운 로드뷰 이미지 데이터를 올려야한다. '온로드미디어'의 한수인PD(김혜윤)와 팀원, 그리고 외주 촬영업체 사람들이 그 곳으로 긴급 출동한다. 그곳이 바로 '살목지'이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이 원래 공동묘지였대..."같은 이야기. 수장된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수귀(水鬼)들이 있을까.
원래 호러는 낯선 공간, 고립된 사람들 속에서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가 스멀스멀 공포심을 키운다. 이성이 만개하고, 디지털기기가 최첨단이어도 원형의 공포를 이기지는 못하는 법이다. 이상민 감독은 공동묘지 저수지와 자동차 내비게이터의 기묘한 결합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공포영화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뒤섞여있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다가 우연찮게 미스터리한 영역에 들어가서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저수지에서 마주치게 되는 한수인과 구교식 팀장(김준한)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그 저수지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알 수 있는 묘비명이 누구 것인지, 그 이상한 곳에 위치한 집에 사는 할머니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돌탑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는지 등은 관객의 상상과 믿음 속에서 풀어야할 의문에 속한다. 이미 날은 저물고 저수지 수면엔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장비가 말썽을 부리고, 물속에 인영(人影)이 비치고, 바람이 불고, 물수제비하는 돌멩이가 쑹쑹 날아들면서 다음번 희생자가 점지되는 것이다.
살목지
이상민 감독의 단편 <함진아비>(2023)는 꽤 훌륭한 공포영화이다. 지금은 사라진 전통혼례에서의 ‘함’과 ‘함진아비’가 등장한다. 친구를 위해 ‘함’을 지고 어두운 밤, 을씨년스러운 마을을 지나 괴이한 풍경의 집앞에 도착한다. ‘신부’는 누구일까. 오래 전 덮어둔 친구들과 마을사람들의 죄악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원극이었다.
이상민 감독은 신작 <살목지>에서 흔한 소재와 상투적인 이야기들을 세련된 상상력으로 승화시킨다. 저수지엔 빠져죽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억울한 죽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동묘지라면? 팀 버튼은 상상도 못할 풍광이 그 물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물속에 잠긴 무덤들, 그 무덤 위로 뻗쳐오른 괴이한 모습들. 아마 한국형 공포물에서 길이 기억될 이미지일 것이다. (<월하의 공동묘지(1967)>의 무덤 신 이후 최고의 장면!)
‘가지 말라는 곳’에 가지 말고, 지도가 끝난 지점에서는 차를 돌려야 목숨이 부지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묶어둬야 하는 오래된 원귀가 있으니 말이다. 한수인은 언제, 어떻게 되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