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허스트 © 2026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논쟁적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는 3월 20일부터 서울관에서 열리며, 아시아 최초로 진행되는 그의 본격 회고전이다. 약 35년에 걸친 작업을 집약한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 등 50여 점을 통해 작가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허스트는 1988년 골드스미스 대학 재학 중 직접 기획한 그룹전 《프리즈》로 YBA(Young British Artists) 세대의 중심에 섰다. 죽은 소 머리와 파리 유충을 활용한 〈천 년〉(1990),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상어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 등 초기작부터 죽음의 공포와 생명의 무상함을 날것으로 드러내며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종교, 과학, 자본이 인간의 불안과 영생 욕망을 어떻게 대체하는지 날카롭게 파헤친다. “진실은 없지만 모든 것은 가능하다”는 전시 제목처럼,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가치들이 실은 구조적 환상일 수 있음을 직시하게 만든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된다. 1부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는 초기 콜라주, 〈자화상〉(1987), 〈스팟 페인팅〉(1986) 등으로 작가의 조형 실험 과정을 보여준다. 2부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에서는 대표작 〈천 년〉과 상어 작품이 관객에게 죽음의 물리적 실체를 강렬하게 대면시킨다. 유리 수조라는 폐쇄적 구조는 삶의 운명을 관찰만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지를 상징한다.
데이미언 허스트 © 2026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3부 ‘침묵의 사치’는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다룬다. 할머니의 빈 약병으로 만든 〈죄인〉(1988)을 시작으로 알약 캐비닛 연작, 실제 인간 치아를 박은 백금 두개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 수천 마리 나비 날개로 만든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가 나온다. 특히 1998년 런던에서 운영했던 ‘약국’ 레스토랑을 부분 재현한 공간은 현대 의학이 종교처럼 작동하는 시각적 권위를 풍자한다. 4부 ‘작가의 스튜디오: 진행 중인 연작’은 런던 리버 스튜디오를 그대로 옮겨 미완성 〈리버 페인팅〉과 작업 도구, 플레이리스트까지 공개하며 창작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미술사의 도판에 나오는 그 작품, 저 진본을 얼마나 봤을까?
한국 미술 관객에게 허스트는 단순한 ‘악동’이 아니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과학·의학 신앙, 성공 강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의 작품은 ‘영생을 파는 자본의 논리’와 ‘죽음 앞의 인간 욕망’을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약국 재현 공간은 코로나19 이후 의학에 대한 맹신을, 다이아몬드 해골은 물질주의와 무상함을 동시에 환기한다. 미술관은 연계 프로그램으로 관객이 자신의 불안을 기록하는 ‘안녕하십니까?’, 처방 퍼포먼스 ‘말하지 않는 약국’, 가족 워크숍 ‘허스트의 방식’ 등을 마련했다. MMCA 필름앤비디오에서는 YBA 다큐멘터리 8편을 상영한다.
데이미언 허스트 © 2026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개막을 앞두고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작가의 상업성과 공공미술관 전시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초기 충격 이후 반복에 머문 작가”라는 비판과 함께 최근 작업의 예술적 밀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미술관 측은 “허스트는 예술과 시장, 제도의 관계를 스스로 실험해온 작가”라며 “실물 작품이 주는 물리적 경험이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40년 예술 인생을 총망라하는 자리”라는 허스트의 호언이 있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가 적절한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미술관 측은 “국립기관에서 왜 허스트인가라는 질문을 우리도 많이 받았지만, 진본을 직접 마주할 때 느껴지는 힘 자체가 답”이라고 대답했다. 김성희 관장은 “현대사회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논쟁을 넘어 현대미술의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는 6월 28일까지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