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넷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새롭게 만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햄넷>은 매기 오패럴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셰익스피어의 아내인 아그네스 해서웨이의 시선에서 가족의 비극과 사랑을 그린다.
1582년, 8살 연상의 아그네스와 결혼한 젊은 윌리엄. 가죽 장갑을 만들던 집안 출신인 그는 이야기꾼의 재능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꿈을 좇아 런던으로 떠난다. 고향에 남은 아내는 흑사병의 그늘 속에서 큰딸 수잔나와 쌍둥이남매 햄넷과 쥬디스를 지키려 애쓴다. 그러나 아들 햄넷은 끝내 세상을 떠난다. 슬픔에 잠긴 아그네스는 멀리서 극작가로 성공하는 남편을 원망한다. 그가 아들의 죽음을 코미디로 승화시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분노한다.
그런데 런던의 극장에서 <햄릿>을 마주한 순간, 그녀의 감정은 뒤흔들린다. 분노와 경악, 의아함을 지나 슬픔과 공감으로 이어지며, 무대 위 햄릿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영화는 ‘Hamnet’과 ‘Hamlet’이 당시 같은 발음·철자로 여겨졌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셰익스피어 자신의 이름 철자도 수십 가지 변형으로 남아 있듯, 이 작품은 역사적 공백을 문학적 상상으로 채운다. 아들의 죽음이 위대한 비극 <햄릿>의 씨앗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아름다운 가정이다.
클로이 자오는 아그네스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자연과 소통하고, 매를 통해 영혼을 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신비롭고 원초적이다. 제시 버클리의 연기는 날것의 고통과 사랑을 그대로 드러내며 압도적이다. 폴 메스컬은 꿈과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셰익스피어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오랫동안 셰익스피어의 아내는 유언장의 “두 번째로 좋은 침대” 한 줄로만 기억되었다. 이제 이 영화는 그 침대가 품었던 깊은 슬픔과 애정을 되살린다. 문학 거장의 뒤에 숨은 한 여인의 목소리가, 이렇게 오래도록 울려 퍼진다.
영화 <햄넷>을 보고 나면 <햄릿>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원작 소설과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연극까지 궁금해지는, 문학의 신비로운 힘이다.2026년 2월 25일 개봉 / 125분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