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의 불멸의 고전 <폭풍의 언덕>이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흑백영화나 세계명작동화 속 서정적인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이번 작품은 다소 충격적일 것이다. [프라미싱 영 우먼]에서 복수의 서늘함을 보여준 페넬 감독은 요크셔의 황무지를 아름다운 동화가 아닌, 집착과 광기가 소용돌이치는 파멸적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영화는 18세기 영국 읍내의 잔혹한 공개 교수형 장면으로 포문을 열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건조하고 으스스한 공기를 설정한다. 언쇼 집안의 딸 캐서린과 거리에서 구출되어 학대 속에 자란 히스클리프는 서로의 유일한 소울메이트가 되지만, 캐서린이 에드거와 결혼하며 비극은 시작된다. 원작의 방대한 3세대에 걸친 복수극은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라는 두 주연 배우의 어깨 위로 대폭 압축되어 두 사람의 로맨틱한 긴장감에 집중한다.
감독은 완숙한 러브스토리를 넘어 이를 파멸적인 에로티시즘으로 변주한다. 하인 조셉이 캐서린의 야성을 일깨우고,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의 집착에 종속되는 과정은 현대적 감각의 호러 드라마에 가깝다. 에밀리 브론테의 문학적 무게를 할리우드적 비주얼과 저급한 욕망의 분출로 치환한 점은 아쉽다. 요크셔의 안개 속에 사랑의 본질을 빠뜨린 이 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원작 소설을 꼼꼼히 다시 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