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
“영화 개봉을 앞두고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참석한 스페셜GV가 열렸었다. 감독님이 제게 ‘너도 이제 하는구나.’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준익 감독님이 저를 인정해 주시니까 기분이 좋다.“ ‘천만 관객 필이 온다는 한 기자의 말에 장항준 감독은 기쁨을 전혀 숨기지 않고 해맑은 웃음을 보였다. 올해 57살의 노장 감독의 유쾌한 인터뷰의 시작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영월로 유배 가서 1457년, 그곳 청령포에서 덧없이 생을 마감한 단종 이홍위의 마지막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Q. 정말이지 <왕의 남자>에 비견할 사극의 탄생인 것 같다.
▶장항준 감독: “그렇게 되면 영광이죠. ‘왕의 남자’ 팀과 콜라보GV를 했었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랑 제작자 장원석이 나섰다. 그 영화 조감독이었던 안태진(‘올빼미’의 감독)이 객석에서 질문도 하고 그랬다.”
Q. 이 영화가 장항준 감독 최고의 흥행작이 될 것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장항준 감독: “너무 다행이다. 시사회 반응이 안 좋으면 저도 기분이 안 좋다. 한 영화를 몇 년씩 준비했는데 그 농사를 망치는 것이니. 나를 믿어준 배우, 나를 믿어준 스태프, 그리고 나를 믿고 투자해준 분들에게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이다. 들뜨지 말라고 그런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Q. 유해진, 박지훈을 포함하여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빛이 난다. 캐스팅의 인복인가.
▶장항준 감독: “인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뒤집어 생각해보자. 과연 누가 이들을 한 곳에 모았을까.” (폭소!) “캐스팅할 때 인기를 본 게 아니라 온전히 연기만 봤다. 극중 매화 역을 캐스팅할 때 고민했다. 비중이 크지 않지만 신선한 연기자를 생각했다. 전미도는 안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시나리오를 줬는데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조감독에게 ‘왜 하겠대?’라고 물었었다. 원래 분량이 적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늘어난 것이다. 박지훈은 아이돌 때문은 아니다. 나는 경연(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패해왔기에. 박지훈은 <약한영웅>보고 캐스팅하고 싶었다. 유해진 배우는 원래 오랜 친구이기도 하고. 그런데 시나리오 쓸 때는 캐스팅 생각은 안했었다. 그런데 은연중에 그런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외모는 확실히 한국인이잖은가. 1960년대, 부모님 사진 한 번 보라. 다들 그렇게 생겼어요. 지금이야 전부 용 된거다. 시골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내추럴 함이 유해진의 강점이다.” (폭소)
Q. 장현성 배우는 영화 초반에 고문당하는 역으로 잠깐 등장한다..
▶장항준 감독: “영화 초반에 고문당해 죽는 사람은 임팩트가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현성 배우가 딱 맞았다. 아마 손석구나 성동일 이었다면 몰입이 안 되었을 것이다. 장현성은 국문당하기 딱 좋은 인물이다. 절개가 곧다. 내가 20살 때부터 친구라 잘 안다. 잠깐 출연하는 것이라 하루만 카미오처럼 나오면 된다고 그랬다. 안한다고 할 것 같아서. 그런데 하루가 아니었다.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고, 작품은 작품이다. 밀어붙여야하는 것이 감독이다. 특별출연으로서 최고의 활용이 아니었을까.” (안재홍은?) “시나리오 주면서 작은 것인데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고는 노루골 촌장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조그만 수염 붙이고.”
Q. 안재홍과 함께 김민 배우도 <리바운드>에 이어 이 영화에 출연했다.
▶장항준 감독: “야사를 보면 엄흥도(유해진 분)에겐 아들이 셋이란다. 그런데 세 명이나 있을 필요가 없었다. 유해진의 아들이어야 하니 극단적인 미남은 피했다.”(폭소) “근데 실제로 잘 생긴 배우이다. 좋은 개량형이랄까. 20대 유해진 느낌이 살짝 있다. 신뢰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
Q. 이준혁이 금성대군을 연기했다.
▶장항준 감독: “고결한 인물이다.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힘을 가진 선인이자 정의의 인물이다. 왕을 복위 시키고, 역사를 제 자리에 돌리는 기개가 있는 인물이니 멋있게 연기하면 좋을 것이다. TV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에 이준혁이 나오는 것을 보고 느낌이 좋았다. 뒤에 캐스팅 하려면 어려웠을 것이다.”
● 실현되지 못한 정의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단종 이야기는 많이 극화가 되었다. 특히 계유정난을 많이 다룬다.
▶장항준 감독: “그렇다. 그동안 계유정난 이야기는 많이 했다. 좋은 작품도 많은데 내가 굳이 재생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계유정난 이후의 단종을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단종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 작품을 통해 실현되지 못한 정의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패한 의(義)에 대한 진정한 추모이다.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망각해도 되는가? 아닐 것이다. 엄흥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
Q. 엄흥도라는 인물을 발굴한 셈이다.
▶장항준 감독: “그 인물에 대한 자세한 사료는 없다. 단종이 죽고 동강에 시신이 버려졌다는 것. 시신이 썩어간다는 것이다. 엄흥도가 그걸 수습해서 장례를 치르고 평생 숨어서 살았단다. 당시 그 어떤 왕족이나 사대부들보다 못 한 일을 그가 한 것이다. 조선 최고의 가치를 지킨 것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보면 라이언 한 사람 구하기 위해 일개 소대가 다 죽는다. 톰 행크스는 ‘제발 라이언이라는 애가 (우리가 목숨 걸고 살릴) 가치가 있는 애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세조가 나쁜 놈, 단종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가 가치 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었으면, 이왕이면 좋은 성군의 자질을 가졌으면 했다. 그래야 그런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엄흥도는 멸문지화를 감수하고 그런 일에 나선다. 단종이 나약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에겐 정치적 비호세력이 없었다. 사료에 따르면 그는 영특했다. 학문적으로도. 활쏘기에 능해 세종의 총애를 받은 적통 중의 적통이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원손, 세자, 태자였으니 헌법적 가치를 지닌 적통이었다. 픽션이든 넌픽션이든 가치가 있어야한다. 그것이 없다면 10분짜리 영화로도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Q. 영화에서 몇몇 상징적 장치가 있는 것 같다. 청령포나 호랑이 같은.
▶장항준 감독: “청령포의 뗏목을 이야기하고 싶다. 유배된 곳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저 앞에 보이지만 건널 수가 없다. 버려진 섬이었다. 물이 얕아 보이지만 건너기 힘든 강이다. 이홍위는 그곳에 갇힌다. 살아서 그 강을 건너, 나의 집 경복궁으로 가서 다시 왕이 되든가. 아니면 결국 죽어서야 그 강을 건널 수 있다. 결국 가장 큰 상징은 그 강인 셈이다. 세상의 경계이다. 그 강을 건너는 것이 목표이다. 호랑이는 왕을 상징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 왕 말고 저 왕!’ 이라고 할 때, 왕의 정체성을 마을 사람이 인식하게 된다.”
(노루는?) “기본적으로 한양에는 호랑이가 없다. 하지만 그 시대의 진짜 호랑이인 수양은 한양에 있었고, 진짜 무서운 일은 한양에서 펼쳐진다. 이홍위가 궁벽한 산골까지 왔는데 이곳에도 노루와 호랑이 같은 먹이사슬이 있는 것이다. 생태계의 먹이사슬. 자유로울 수가 없다.”
Q. 이 영화 최고의 단점, 옥에 티는 호랑이 CG인 것 같은데.
▶장항준 감독: “CG의 생명은 투입시간이다. 몇 달간 작업해야한다. 호랑이의 털을 충분히 표현하려면 랜더링 시간이 어마어마하다. 물리적으로 수정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다행이다. 영화를 다 보신 분들이 ‘시나리오가 엉망이네’ ‘후반부가 형편없네’, ‘역사왜곡이네’, ‘중국풍이네’ 이런 이야기보다 ‘CG이야기’만 나오니 정말 다행이다.” (폭소)
Q. 아내 김은희 작가는 시나리오 과정에서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장항준 감독: “이번 작품처럼 안 도와준 게 없다. 서로 안 그런지가 5~6년 된다. ‘남의 것은 안 해’란다. 그리고 김 작가는 계속 자기 작품을 했다. 처음에는 서로 봐줬는데 언젠가부터 글이 읽히지가 않는다. 나도 ‘시그널’이후 한 번도 봐준 적이 없다.”
Q. 시나리오는 작업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장항준 감독: “황성구의 초고는 좋았다. 지금과는 다른 버전이었다. 금성대군의 이야기를 축으로 한다. 한명회와 엄흥도의 접점이 있어야했다. 엄흥도의 아들을 두고 협박해야한다. 의리냐 생존이냐. 이런 게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러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 길을 떠나는데 ‘같이 가자’며 길라잡이로 나서는 부분도 계속 수정하였다. 나름 몰입했다. 작은 수정은 계속 되었다. 역사의 간극, 그 빈틈이 창작자에게는 큰 자극을 준다.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그가 유배 와서는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는 전혀 기록이 없다. 야사에도 없다. 금성대군의 복위운동과 관련하여 거병했다지만 기록이 없다. 순흥에 유배 왔다가 관련된 자는 다 죽었기 때문이다.”
Q. 박지훈의 연기는 어떤가. 극중에서 몇 차례 큰 변신을 한다.
▶장항준 감독: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야기를 하면 눈이 똥그래진다. ‘처라, 죽여라’ 이런 대사의 톤까지 잡아서 준비한다. 그런 과정이 즐거웠다. 배우가 잘해야 영화가 사는 것이다. 섭외에 공을 들였다. 몇 번 만났는데 딱히 ‘이 작품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데 네 번째인가 만남에서 하겠다고 하더라.” (끝까지 거절했다면?) “다른 배우가 했겠죠. 그런데 지금 같은 이홍위 인물이 나올 수 있었을까. 너무 잘했다. 박지훈 배우에게는 진중함이 있었다.”
장항준 감독
Q. 엄흥도와 단종과의 관계는?
▶장항준 감독: “주인과 손님이다. 마을의 주인이 귀한 손님을 모시는 것이다. 잘 모셨다가 한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상전과 아랫사람의 관계로 바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친구처럼 된다. 왕이었던 사람이 마을 사람과 밥을 먹는다. 조선시대에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마음을 연 것이다. 쌀밥을 같이 먹는다? 아마, 그 당시 영월 그 벽지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쌀은 권력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 신분은 다르지만.”
Q. 장항준 감독의 장기는 코미디 아닌가. 이번 작품에서는 어떻게 안배하였는지.
▶장항준 감독: “코미디는 제 장기가 맞죠. 그렇게 봐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코미디는 이런 극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바나나껍질 깔아놓는 것은 싫었다. 흥도에게 발생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작위적인 코미디에는 거부감이 있다. 어느 정도 세속적인 욕심이 있을 것이다. 그게 인간적이다. 나름 ‘니즈’도 있다. 아들을 출세시키고 싶은 속물적인 면. 그런 인물이 이홍위를 만나면서 성장한다. 마지막엔 목숨 걸고 시신을 건져내는 용기를 보여준다. 이홍위도 성장한다. 드라마에서는 캐릭터가 성장하느냐 안 하느냐는 중요하다. 한명회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동안의 작품에 나오는 한명회는 내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다. 이번 작품에선 유지태가 연기한다. 당대 기록을 보면 그가 훤칠하고, 기골이 장대하다는 기록도 있다. 시나리오 쓰면서, ‘아이고 잘 됐다’ 생각했다.”
영화에서 유해진은 "다슬기는 제가 직접 동강에서 잡은 것입니다."라고 굳이 강조한다. 장항준 감독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틈만 나면 "그런데, 이 영화를 누가 만들었을까요?" 라며 자기자랑을 빼놓지 않으며 유쾌하게 영화 홍보에 열과 성의를 다한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지난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쇼박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