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의 근위병' 이승주- 최재림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이 8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인도계 미국인 극작가 라지브 조셉의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2015년 미국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대학로 무대에 올랐었다. 작품의 배경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인도 ‘타지마할 궁’에서 보초를 서는 근위병의 이야기이다. 무굴 제굴의 황제 샤 자한이 끔찍이도 사랑하던 아내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슬픔이 극에 달한 황제는 죽은 아내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겠다며 무려 22년의 공사를 거쳐 ‘타지마할’을 완공시킨 것이다. 이제, 내일 해가 떠오르면 타지마할의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바로 그 전날 밤, 그곳에서 보초를 서던 두 근위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오직 두 사람만이 등장한다!
수십 년간 저 장막 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근위병 ‘휴마윤’과 ‘바불’은 그 장관을 결코 본 적이 없다. 두 사람은 성벽을 등진 채 오직 앞만 바라보고 보초를 서는 것이다. (관객이 바라보면) 오른쪽의 휴마윤은 명령에 충실하다. 입을 다문 채 오직 임무에 집중한다. 하지만 뒤늦게 자리를 잡은 바불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소소한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였으며, 휴마윤의 아버지는 근위대의 고관임을 알 수 있다. 어두운 무대에서는 밀림의 새소리와 벌레 소리만이 들려오고, 지루함을 견딜 수 없는 바불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입 다물고, 앞만 바라보고, 임무에 충실하라”는 휴마윤도 조금씩 대화에 스며든다. 바불은 어둠과 지루함 속에서 끝없는 상상력을 동원한다. 저 밤하늘 반짝이는 별에 다다를 수 있는 ‘가마’가 있을 것이라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곧 황제의 소망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황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완성하라”,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은 만들지 못 한다”고 명령했다고. 이제 아름다움은 황제만의 것이란다. 그런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가 오고가며 밤은 깊어지고, 마침내 명령이 떨어진다.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을 만들 수 없도록 황제는 공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손목을 자르라고 명령한 것이다. 무대는 더욱 어두워지더니 보초를 서던 두 사람이 무대에 쓰러져 있다. 두 사람은 밤새 황제의 명령을 따른 것이다. 바불은 칼로 손목을 잘랐고, 휴마윤은 잘린 손목 부위를 인두로 지지는 일을 밤새 한 것이다. 무려 2만 명, 4만 개의 손목이 잘린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은 피바다가 된 무대에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견뎌내기 위해 또다시 수다를 이어간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와 함께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그리고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마지막 비극의 한 컷을 남기고 막을 내린다.
'타지마할의 근위병' 백석광 박은석
‘타지마할’의 하얀 궁전은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수많은 권력가의 기념물처럼 보통사람들의 엄청난 희생으로 완성된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타지마할’의 그림자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저 어두운 벽 너머 문제의 그 건축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 근위병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죽은 왕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순애보겠지만, 공사에 참여한 사람과 그 과정이 결코 애민(愛民)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란 것을 안다. 작가 라지브 조셉은 ‘사랑의 기념탑’을 뒤에 두고 앞에서 쓰러져간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건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희생은 끔찍하다는 것이다.
‘타지마할’이 등장하는 영화 <슬럼도 밀리어네어>(와 그 원작소설 비카스 스와럽의 《Q & A》)에서도 ‘이방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과는 천양지차의 빈민가 소년의 시선이 담겨있다. 타지마할은 왕비가 죽은 뒤 곧바로 건설을 시작하여 22년 만에 완공된다. 그런 ‘순애보’는 전설을 남긴다. 왕이 2만 명의 손목을 잘라 더 이상 아름다움은 만들지 못하게 했다는 전설. 그리고 왕은 ‘타지마할’ 맞은편에 자신을 위한 ‘검은 타지마할’을 지으려고 했단다. 물론, 둘 다 전설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은 샤 자한 황제는 아들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 아그라성에 유폐되어 멀리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었단다.
거대한 성벽 아래, 멀리서 알 수 없는 새소리가 들려오고, 어둠은 깊어갈 때 칼을 든 채 앞만 바라보는 근위병/경계병/보초병/군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세상의 아름다움? 상상의 우주공간? 죽은 주군의 사랑? 그래도 타지마할은 아름다움으로 봉인될 것이다.
'타지마할의 근위병'
최재림과 백석광이 규율을 신봉하는 근위병 ‘휴마윤’을, 이승주와 박은석이 상상력과 호기심이 많은 근위병 ‘바불’을 연기한다. 연출은 연극 <그을린 사랑>으로 백상연극상 수상, 연극 <와이프>와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로 동아연극상을 수상한 신유청 연출이 맡았다. 내년 1월 4일까지 마곡나루역에 있는 LG아트센터서울 내 가변형 블랙박스 공연장 U+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리뷰=박재환)
▶타지마할의 근위병 (원제:Guards at the Taj) ▶연출: 신유청 ▶출연:이승주, 백석광, 박은석, 최재림 ▶제작:해븐프로덕션/공동제작:글림 아티스트 ▶주최:엠피앤코 ▶주관:달 컴퍼니 ▶공연: LG아트센터서울 U+ 스테이지 2025.11.12 ~ 2026.01.04. ▶14세이상/10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