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우리나라의 ‘인간문화재’에 비견할 만한 것으로 일본에는 '인간국보‘(人間国宝)가 있다. ‘가부키’계의 인간국보의 세계를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19일 개봉하는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이다. 영화 <국보>는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이상일 감독은 <악인>, <분노>에 이어 세 번째로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가부키’에 대한 짧은 소개 자막이 나온다. 17세기 처음 등장한 가부키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풍속적인 이유로 여성의 출연을 금지했단다. 그 때문에 ‘온나가타’(女形)라는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연기자가 등장한다. 우선은 ‘가부키’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알아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경극과 판소리처럼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일생을 걸고 ‘생과 사’를 노래하는 것이니 말이다.
1964년 일본 나가사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야쿠자 보스 타치바나의 저택에서 새해맞이 술자리가 펼쳐지고 있다. 손님이 북적대며 덕담을 나누고 있는 가운데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가 찾아오며 일순 술렁거린다. 손님들의 여흥을 위해 타치바나의 어린 아들 키쿠오가 가부키 분장을 하고는 짧은 공연을 펼친다. 한지로가 ‘온나가타’로 분한 키쿠오의 실력에 놀라는 것도 잠시. 야쿠자 무리들이 난입하며 신년 축하연자리는 엉망이 된다. 아버지를 비극적으로 잃은 키쿠오는 이제 한지로의 집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가부키를 배우기 시작한다. 가부키의 길은 야쿠자의 길만큼 험난하다.
국보
<국보>를 보면서 한국의 관객들은 가부키에 입문하게 된다. 노래와 연기를 잘한다고 가부키 배우가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가부키는 가문에서만 승계되는 비기(祕技)이다. 키쿠오는 곧바로 한자이의 아들 슌스케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동년배인 키쿠오와 슌스케는 함께 가부키를 배우지만 그들의 미래는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다. 야쿠자의 아들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가부키 가문의 혈연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부키 세계의 폐쇄성이며, 하나의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이다. 둘은 함께 힘든 배움의 과정을 거치면서 남성적 우정을 이어가지만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한다. 그런데, <국보>에서는 그런 전승과 승계의 과정이 순탄하지가 않다. 좌절하고, 질투하고, 방황하고, 도망간다. 그러면서 다시 일어나고, 다가오고, 분장하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국보
영화 <국보>에는 ’関の扉‘(세키노토), ’連獅子‘(렌지시), ’曽根崎心中‘(소네자키 신주우), ’娘道成寺‘(무스메 도조지), ’鷺娘‘(사기무스메),’ ‘二人藤娘’ (후타리 후지무스메) 등 가부키 작품(演目)이 꽤 많이 등장한다. 가부키에 익숙하지 않아도 거듭 보게 되면 이상일 감독이 이 작품들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정체성과 야망을 드러내면서 이어지는 무대는 남과 여의 사랑과 비극이며, 끝없이 경쟁해야하는 라이벌의 삶이며, 예술가로서의 연대와 갈등, 그리고 동반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끝없이 춤을 춰야하는 백로처녀(鷺娘)처럼 고독한 예술혼이다.
영화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처럼 ‘천재’에 대한 질투심으로 장을 열고, 진개가(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처럼 두 사람의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장을 닫는다. 결국 3시간에 달하는 영화를, 가부키를 보고나면 예술은 피보다 뜨겁고, 사랑보다 잔혹하다는 것과 결국 가부키를 통해 키쿠오와 슌스케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리뷰.박재환)
▶국보 (원제:国宝) ▶감독:이상일(李相日) ▶각본:오쿠데라 사토코 ▶원작: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국보》 ▶출연: 요시자와 료 (키쿠오), 요코하마 류세이 (슌스케), 쿠로카와 소야(키쿠오 아역), 와타나베 켄(하나이 한지로), 타카하타 미츠키 (후쿠다), 테라지마 시노부 (사치코,슌스케母), 모리 나나(아키코), 미우라 타카히로(타케노), 미카미 아이(후지코마), 다나카 민 (만키쿠) ▶촬영:소피안 엘 파니▶가부키 지도:나카무라 간지로▶수입:미디어캐슬▶배급:NEW ▶개봉:2025년11월19일/175분/15세이상관람가 ▶30회 부산국제영화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