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림 감독
‘공중그네’, ‘올림픽의 몸값’ 등 한국에서도 꽤 사랑받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奥田英朗)의 또 다른 히트작 ‘나오미와 가나코’가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이미 일본에서 한차례 TV드라마로 만들어진 이 인기소설을 <브이아이피>와 <악귀>의 이정림 감독이 <당신이 죽였다>라는 제목의 ‘K-드라마’로 완성시켰다. 가정폭력의 그늘에서 자란 은수(전소니)는 희수(이유미)와 고등학교 때부터 운명의 단짝 친구가 된다. 어른이 된 후, 은수는 희수가 남편(장승조)의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둘은 ‘델마와 루이스’가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간다. 이정림 감독을 만나 그 과정을 들어보았다.
“어머니가 보시고는 재밌었다고, 슬펐다고 하셨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감상평을 해주셨다.” 가족의 감상평을 이야기해달라니 일흔이 넘은 어머니의 소감을 전한다.
Q. 이런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든 소감은.
▶이정림 감독: “원작 소설을 워낙 재밌게 읽었기에 영상화 한다고 했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 대본 작업이 시작되면서 먼저 보여 달라고 그랬다. 그때 다른 작품을 찍고 있었던 것 같다. 대본은 소재가 어렵고 무거웠다. 그런데 너무 잘 쓰인 글이라서 일단 해보자고 그랬다. 작품 하겠다고 하면서 공부도 하고, 수업도 들었다.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누군가는 이런 걸 이야기해야지 않을까 생각했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Q. 원작소설을 드라마로 옮기면서 신경 쓴 부분은.
▶이정림 감독: “<당신이 그랬다>의 원작은 그림이 잘 그려지는 작품이고, 캐릭터도 뚜렷하다. 확실한 줄거리가 있고, 작가의 의도를 잘 안다. 이것을 영상화했을 때 우리가 할 이야기를 좀 더 보태면 좋은 작품이 되겠다 생각했다. 작품은 은수와 희수가 큰 결심을 하고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야기이다. 보는 사람이 둘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올라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목도 원작과 다르게 지었다. ‘당신이 그랬다’는 것은 방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은 사회적 문제이며, 우리도 ‘방관자’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알아주었으면 했다. 작품에서 아랫집에 사는 여자는 좋은 사람이다. 그녀가 하는 말 한 마디가 희수의 마음에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도우려는,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Q. 이무생이 연기한 진소백 캐릭터는 원작소설에서는 여성이다. 성별을 바꾼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정림 감독: “가게 사장인 리아케미는 여자이다. 소설에는 이 사람의 전사가 특별히 없다. 대사를 통해 조금은 상상할 수 있다. 은수와 희수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둘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주위에 좋은 어른이 있었으면. 힘든 삶을 사는 사람에겐 꼭 필요하다. 비슷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자 캐릭터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왜?’라는 질문을 안 하게도 될 것이다. 드라마로 만들면서 좀 확장된 부분이 있다. 후반부에 가면서 악인은 정말 악독해진다. 단단하게 이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세상에는 좋은 남자, 좋은 어른이 존재한다. 저는 어쨌든 이무생 배우와 작업하고 싶었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Q. 이무생 배우가 연기하는 진소백 사장은 키다리 아저씨 같기도 하고, 그동안 보여준 차이니즈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은 것 같다.
▶이정림 감독: “그가 왜 은수와 희수를 도와주는지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인류애라고 해야 할지. 물론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나는 나이를 먹었지만 너희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 인물이다. 이무생 배우는 그런 마음으로 연기한 것이다.”
Q. 원작과 또 다른 설정은 결론 부분이다. 어쩌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이정림 감독: “폭력도 용납이 안 되고, 살인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런 결론에 대해 극본을 쓴 작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원작을 존중하지만 자신의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으려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냉정하게 죗값을 치러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정에 세워야한다. 그렇게 정당하게 마무리 지어야 시청자가 이해하고 그들을 응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견이 없었다. 법정 최후진술이 길다. 이유미 배우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니 ‘희수에게는 한 가지 밖에 없다. 은수에게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이 대사를 담담하게 읽겠다’고 했다. 전소니는 가정폭력에 대해 항상 따라다니는 죄책감 같은 게 있다. 엄마와 아빠를 외면한 아픔이 있었다. 그걸 털어내야 했다.”
넷플릭스 '당신이 죽였다'
Q. 희수와 은수의 학창시절, 커튼을 두고 펼치는 두 사람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감독님의 최애장면은?
▶이정림 감독: “진소백이 왜 은수와 희수를 도와주는 거야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다. 그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 장면은 학기 초의 설정으로 둘은 전혀 친하지 않은 관계이다. 엄마가 자살하려고 한 트라우마가 있은 은수는 친구들이 커튼으로 장난치는 게 싫었다. 은수가 그렇게 화를 내면 친구들이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그런데 희수는 ’이 친구가 뭔가 있구나‘라며 달려와서 안아준다. 원래 그런 지문은 아니었는데 은수는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고 하더라. 자신을 안아주는 이 친구를 위해 뭔가를 할 것이라고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 나도 그 장면 좋아한다. 그리고 프롤로그와 4부에 이어지는 장면인데 시체를 산에 파묻고 둘이서 드라이브를 한다. 바닷가에서 말없이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이 좋았다. 대사는 없지만 오만가지 감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후련하다면서, 앞으로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안쓰러웠다.”
Q. 두 사람이 외박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한다.
▶이정림 감독: “악몽을 꾸는 것처럼 얼굴이 안 좋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다. 연쇄살인마처럼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라는 내비게이션 경고가 계속 흘러나온다. 갈 곳도 없고, 어디를 가야할지 모른다. 마치 두 사람의 인생 같다. 그 부분에 깔리는 OST도 마음에 든다. 마치 어린 아이로 돌아간 것 같은 창법으로 부르는 가수이다. 이 둘이 오랜만에 바다를 바라보며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된 것 같지 않다. 여러 가지 감정이 있을 것이다. 음악감독(프라이머리)에게 이런 창법으로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가수를 섭외했다.”
*4부(45분 26초)에 나오는 곡은 Jihae Kimm의 ‘슬픔에 머무르지 않기에’(As sadness won’t linger)라는 곡이다*
Q. 장승조 연기하는 장강이라는 인물은 정말 역대급 빌런이다.
▶이정림 감독: “제작발표회 때에는 기자들에게 4부까지만 공개되었다. 그래서 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장승조 배우가 1인 3역을 했다고 생각한다. 노진표, 순둥이 장강, 악마의 장강. 이 드라마 준비하면서 장승조가 출연한 드라마를 많이 찾아봤다. 그의 얼굴에는 뭔가가 있다. 아주 나쁜 눈매, 이게 진짜일까 의문을 던지게 하는 얼굴, 착한 모습. 다양한 얼굴을 보면서 노진표를 잘 할 것이라 확신했다. 조선족 말투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하더라.“
Q. 장승조가 연기하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이정림 감독: “2부에서 희수에게 ‘부부동반 외출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 찍을 때이다. 지문은 심플했다. 그런데 그가 손가락을 탁 튕긴다. 기분 나쁘게. 애드리브 연기였는데 조금 충격을 받았다. 웃기기도 하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하지 말까?‘라고 하더라. 애완동물 통제하듯이 하는 그 행동이 정말 악마 같았다.”
Q. 노진표의 동생 노진영을 연기한 이호정 배우에 대해.
▶이정림 감독: “넷플릭스 <도적>에서 보여준 눈빛이 좋았다. 악역도 아니고 선역도 아닌데 사연이 있어 보였다. 액션도 잘하고. 무표정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압도적이었다. 제안을 했는데 바로 이 캐릭터를 이해하더라. 오빠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 그건 오빠일이고 자신은 제 살 길을 찾아야하는 인물이란 것을 바로 이해했다. 모델 활동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때도 포스가 남다른 데가 있었다.”
Q. 진표와 진영의 엄마는 어떤가. 김미숙이 연기하는 고정숙은 무서운 사람이다. 특히 희수의 얼굴에 난 멍을 보고는 ‘진표 왔어?’라고 말할 때는 희수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이정림 감독: “김미숙 캐릭터를 통해 아이러니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악역에게 서사를 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진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런 과거를 일일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엄마나 동생을 보여주면 충분히 알 것이다. 시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아마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아들의 행실을) 알고 있다면 그럴 수가 없을 것이라고. 그런 강연을 하는 정의로운 사람인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확실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Q. 음,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거사를 치르기에 너무 조심성이 없고, 무계획적인 것 아닌가. 보는 내내 너무 불안불안했다.
▶이정림 감독: “원작에서는 은수가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인터넷도 찾아본다. 저는 은수가 희수를 구해 주겠다는 것은 진심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칫 완전범죄로 비쳐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조금 어설퍼보여도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면 될 것이다. 그들은 보통의 사람이다. 우발적인 살인이니까, 너무 계획적인 인물들로 보이는 것은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정림 감독
Q. SBS에서 지상파 드라마를 만들다가 넷플릭스와 작업해 보니 어떻던가. 맘껏 연출하고 싶었던 것은 없었는지.
▶이정림 감독: “지상파 드라마는 법으로 정해진 부분이 있으니까.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시청 대상도 다르고, 전파의 방식도 다르니 이해가 간다. 뭔가 이런 걸 해 보고 싶었던 것을 맘껏 해 볼 수 있었다. 진표를 죽이는 신에서도 19세에 맞춰 표현의 자유를 만끽했다.” (지상파에 없는 흡연 장면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화면에 등장하는 것은 가짜 담배다. 냄새도 안 난다. 배우가 담배를 안 피우신다. 그래도. 식당에서 나올 때 자연스럽게 피는 게 인물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Q. 드라마 PD는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책을 보면서 ‘이건 내가 꼭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 작품이 있는지.
▶이정림 감독: “2012년 SBS 공채 피디로 입사해서 조연출을 7년 했고, 2019년 [VIP]로 데뷔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하고 사랑해서 뭐든지 방송국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시켜만 주면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장르를 가리지는 않는다. 이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말하고 있잖아>(정용준 소설).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었을 때 어떻게 영상화하면 재밌을까 생각했다.”
Q.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정림 감독: “이게 아픔을 가진 사람이거나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제가 뭐라고 덧붙일 말은 없다. 바뀐 제목이나 줄거리를 보고 시청을 꺼려하실 수 있을 것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어 본다면 어느 순간 작품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은수와 희수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배우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조심스럽게 만든 작품이다.”
전소니, 이유미, 장승조, 이무생, 그리고 이호정, 김미숙, 김미경, 김원해의 열연이 펼쳐지는 이정림 감독의 통쾌한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는 지난 7일 공개되었다. 8부작. (인터뷰어 박재환)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