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인의 사막
50년의 세월을 건너 4K 리마스터링으로 부활한 <타타르인의 사막>은 관료화된 조직 속에서 풍화되어 가는 인간의 존재론적 고독을 그린 장엄한 서사시다. 디노 부차티의 1940년 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파시즘의 광기가 감돌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기다리며 일생을 바치는 군인들의 허망한 충성심과 시간의 굴레를 응시한다.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장교 드로고(자크 패랭)는 국경지대의 바스티아니 요새로 부임한다. 그가 마주한 것은 끝없는 사막과 정체 모를 '타타르족'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의무감뿐이다. 요새의 장교들은 격식을 차려 군기를 유지하지만, 정작 적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청년 드로고가 중년의 부사령관이 될 때까지 요새의 시간은 박제된 채 흐르고, 군인들은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듯 오지 않는 전쟁에 집착한다.
영화는 이란의 고대 요새도시 '아르게 밤'을 배경으로 조르조 데 키리코의 회화처럼 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미장센을 구현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섬세한 선율은 황량한 사막의 고독을 배가시키며, 자크 패랭을 비롯한 유럽의 톱스타들은 실존적 위기 앞에 놓인 군상들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규격화된 군대 시스템 속에서 유령처럼 변해가는 장교들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고립 속에 놓인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결국 <타타르인의 사막>은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헛된 희망과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사이에서 마모되는 삶의 비극을 다룬다. 14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요새의 장교들이 겪었을 지루하고도 가혹한 시간의 무게를 직접 체감케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요새의 풍경과 함께, 우리가 일생을 걸고 기다리는 '타타르인'은 과연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걸작이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