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영화 ‘세계의 주인’은 열여덟 여고생 ‘이주인’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이다. 지구, 대한민국, 그리고 어느 도시의 한 고등학교와 집을 오가는 특별할 것 없는 주인의 세상이다. 정말 특별할 것이 ‘1’도 없는 세상이지만, 영화가 끝나갈 무렵이면 이 세상의, 이 세계의 주인이 누구란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폭발력 만랩의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남녀공학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과 여학생의 키스 장면을 보여준다. 마치 입술을 뜯어먹기라도 하듯이 열정적이다. 하지만 이내 여학생이 “여기서 그만!”한다. ‘이주인’이다. 이주인(서수빈)은 그렇게 연애도 열심이지만, 선을 지키는 것 같다. 그래서 남친이 자주 바뀐다. 주인의 학교생활은 명랑, 쾌활, 활발, 엉뚱 그 자체이다. 진학상담을 하는 담임 선생님(이상희)이 건네는 사과를 보더니 갑자기 중증 알레르기 환자처럼 숨을 몰아쉬며 사람을 놀래더니 천연덕스럽게 “이제부터 사과를 좋아해볼까요?”란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인의 가족.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에서처럼 행복이 넘쳐난다. 엄마와는 스스럼없이 남친 문제를 이야기하고, 어린 동생은 수가 훤히 보이는 마술 연습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주인의 텐션이 이상하게 높다. 뭔가 불안정하고 뭔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 같다. 엄마 문제일 수도 있고, 동생 문제일 수도 있고, 아빠 문제일 수도 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폭발한다. 흔한 모범생 반장이 서명을 해달란다. 몇 년 전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아동 성폭력범이 출소해서 돌아온다고. 반대서명을 받고 있단다. 그런데 언제나 모든 일에 열심이던 주인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관심 없어!”라고. 이내 목소리가 커진다. 반장은 “이건 우리의 문제야, 너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그러면서 이제 꽁꽁 닫아두었던, 주인의 어두운 세계가 쏟아진다. 관객은 그제야 주인의 말과 행동과, 종잡을 수 없었던 발랄함을 이해하게 된다. 아.주.충.격.적.으.로.
세계의 주인
● “아프냐?” “아닌데~”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은 아주 세밀하게, 섬세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을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생각’이 있고,‘마음’이 있다. 어린이집 원장인 엄마(장혜진)는 친구와의 화상통화에서 듣는 말이 “너 얼굴이 왜 그리 늙었어?”였다. 텀블러에 몰래 술을 따라 마신다. 왜 그럴까. 동생(이재희)은 어설픈 마술을 아주 열심히 연습한다. 그리고, 편지함의 편지도 몰래 빼돌린다. 학교 단짝 유라(강채윤)는 주인 옆에서 야한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함께 봉사활동하는 미도(고민시)도 어느 순간 표변한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뭔가 사연을 갖고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이 주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마치 별자리처럼 돌아가고 있다. 관객은 어린이집의 어린 누리의 목에 난 빨간 상처에 대해 커다란 의문을 품다가 엄청난 깨우침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엔 조두순 같은 악인이 많다. 반장처럼 나서는 의인도 많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엔 “성폭력은 평생 씻지 못할 깊은 상처를 남기며, 한 사람의 인생과 영혼을 파괴하는....” 이 문장에 생각도 못할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주인>은 피해자를 배려하고, 사건을 사려 깊게 바라보는 감독의 마음이 녹아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이 영화를 우주의 중심에 올린다. (박재환)
▶세계의 주인 ▶각본/감독: 윤가은 ▶출연: 서수빈, 장혜진, 김정식, 강채윤, 이재희, 김예창 ▶제공/배급: 바른손이앤에이 ▶제작: 세모시, 볼미디어 ▶개봉: 2025년 10월 22일
[사진=바른손이앤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