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리아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모두 65편의 반짝이는 단편이 상영되었다. 이세형 감독의 <스포일리아>는 [기담]섹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스포일리아’를 스포일러한다. 진리가 궁금하면 귀를 막을 지어라!
이세형 감독의 <스포일리아>는 클레이애니메이션과 실사를 결합한 29분 길이의 단편영화이다. 미쟝센 출품 독립단편영화이니 할리우드 스타일의 블록버스터를 기대하진 말아라. 심형래나 백승기, 에드 우드를 생각해야한다. 망망대해 같은 대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선이 있다. 그 우주선 안은 황당할 정도로 엉성하고, 조잡하고, 올드하다. 두 우주인 ‘김’과 ‘박’은 그 우주선을 타고 무려 500년 동안 정처 없이 우주를 탐사하고 있단다. 워프 항법이나 동면장치, AI 로봇 같은 것은 없다. 어느 날 그들 눈앞에 커다란 행성이 나타난다. 착륙하고 나니 놀라운 화면이 펼쳐진다. 화성처럼 붉은 행성. 마치 사람의 ‘창자’ 같기도 하다. ‘뇌’란다. 뇌행성에 착륙한 ‘김’과 ‘박’, 두 우주인은 자신의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한 외계인과 마주친다. 그가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뇌행성의 붉은 돌기를 하나 밟자, 그 돌기는 ‘입술’ 형태로 진화(변)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입술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스포일리아
‘저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광활한 우주공간에 다른 존재가 없을까?’, ‘왜 공산주의는 망하고, 자본주의는 탐욕적일까?’, ‘왜 트럼프는 저럴까?’(이 질문은 없다!) 식으로. 무려 500년 동안 좁은 우주선 안에서 수도 없이 나눈 대화, 여러 번 했던 생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다. 여러 번 질문하고, 토론하고, 추론하고, 반박하며, 애타게 답을 찾았을 그 두 우주인에게 ‘선지자’가 나타난 것이다. ‘우주창조의 순간부터 모든 것을 듣고, 보고, 생각하고, 추론한 우주의 모든 비밀’. 지구인은 외계의 선지자에게서 명쾌한 답을 기꺼이 들을까?
그 별의 이름은 ‘스포일리아’이다. 답을 알려주는 행성이다. 궁금증 대마왕 인간에게 답은 중요한 것일까? 중요한 것은 고난의 과정, 역경을 거친 뒤 도달하게 되는 성과물로서의 답일 것이다. 그 모든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허망한 ‘스포일러’ 앞에 인간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 고대 철학자도, 현대의 과학자도, 미래의 AI도 수수께끼를 풀려고 애쓰는 그런 문제의 명쾌한 솔루션! 과연 당신은 500년간의 긴 항행에서, 선지자를 만나게 되면 그 답을 물어볼 것인가? 그 답을 찾아 500년을 날아왔는데 말이다. 답을 찾은 그 다음은 무엇을 할 것인가? 설마 ”유레카“라고 외치고 우주선 밖으로 뛰쳐나갈 것인가.
<스포일리아>는 이세형 감독인 2년 3개월에 자취방에서 씨름하며 내놓은 우주대작이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만나는 결과물은 경이롭다. 온 우주의 기를 한 곳에 모아, 영겁의 비밀을 푸는 숭고한 순간이다. 감독은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곁들인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명언까지 읊조린다. 그.야.말.로. 놀라운 SF이다. (박재환)
▶스포일리아 ▶감독/각본/편집/애니메이션: 이세형 ▶출연: 장요훈,정이주,심효민,원호섭 ▶조연출/VFX: 정기연 ▶스크립터: 정유재 ▶PD:오소현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상영작
[사진=미쟝센단편영화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