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리아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기담' 섹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세형 감독의 <스포일리아>는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결합한 독창적인 SF 단편이다. 29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영화는 조잡하고 올드한 우주선에 몸을 실은 두 우주인 '김'과 '박'의 500년에 걸친 여정을 통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고전적인 워프 항법도, 세련된 AI도 없는 엉성한 우주선에서 그들은 오직 우주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 하나로 영겁의 시간을 버텨왔다.
마침내 도착한 붉은 행성 '스포일리아'는 마치 거대한 뇌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조우한 외계 선지자는 인간이 수천 년간 고뇌해온 우주의 모든 비밀과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는 행성에서 두 우주인은 절체절명의 선택 앞에 선다. 500년을 찾아 헤맨 정답이 눈앞에 있지만, 정작 그 답을 듣게 되는 순간 그들이 거쳐온 고난의 과정은 허망한 스포일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세형 감독이 2년 넘게 자취방에서 공들여 완성한 이 '우주 대작'은 에드 우드 식의 키치한 감성과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그리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기묘하게 섞여 있다. 감독은 비트겐슈타인의 명언을 빌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읊조리며,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답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발버둥임을 역설한다.
결국 <스포일리아>는 정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과정의 가치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유쾌하고도 서늘한 농담이다. 경이로운 시각적 연출과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성취한 이 작품은, 단편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의 극치를 증명한다. 모든 비밀이 밝혀진 뒤의 허무를 감당할 수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답 없는 우주를 유영하는 쪽을 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