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티
지난 주 4년 만에 다시 열린 미쟝센단편영화제(MSFF)에서는 모두 65편의 단편영화가 상영되었다. 미쟝센영화제는 한국의 대표적 장르영화를 따와서 출품작들의 섹션을 나눈다. [품행제로], [질투는 나의 힘], [기담], [고양이를 부탁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식이다. ‘공포와 판타지’ 장르라면 [기담]에 묶인다. 정휘빈 감독의 신작 <엔터티>가 그러하다. 애니메이션이다. 정휘빈 감독은 <민서와 할아버지>(20), <도나 표류기>(22) 등의 작품으로 이쪽에서는 조금 알려진 감독이다. <엔터티>는 작년 BIFAN 상영을 포함하여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입소문을 탄 작품이다.
서태지 스타일의 젊은이들이 가득한 1990년대 풍의 전자오락실(아케이드) ‘오렌지센츄리’. 누군가 VIP공간으로 입장하는데 패스는 특별한 ‘시가’이다. 이곳은 메타버스 공간. 그리고 어느 ‘리앨리티’ 건물에서는 주인공 김영이 어수선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전자기기 수리 일을 하고 있다. 건물 안팎으로 ‘안전깨비’드론이 돌아다니며 시큐리티를 담당하고 있다. 김영은 고객의 클레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배송사고가 나고, 층간소음으로 집중할 수가 없다. 요망스러운 디지털기기는 오작동을 계속하고.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소셜포인트]가 부족하다는 알람이 뜬다. 불법적으로 충전을 시도해야하는데 쉽지가 않다. 층간소음은 계속되고 응징에 나섰다가 못 볼 것을 보고 만다. 이제부터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한다. 도망자의 시간이다.
정휘빈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친근한 말투와 멋진 외모로 감시와 통제를 포장하는 미래사회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자유로웠던 90년대를 그리워하며 모두가 메타버스로 떠난 2050년의 적막한 서울, 안전한 사회시스템의 완성이 야기한 모순 한 가운데로 주인공을 던져 넣으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했다.”고 밝혔다.
엔터티
실제 <엔터티>에서 보여주는 미래상은 골방에 갇힌 불쌍한 청춘이다. 그것도 20대 여성이다. 메타버스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겠지만 실상은 손바닥만 한 작업실이자, 안식처이다.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은 아마 광범위하게 체크가 될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경보가 울린다. 그것은 [소셜포인트]로 계량화된다. 사회적 신용도에 다름없다. 그리고 그런 디지털시대에 어울리는 불법적 우회로가 존재한다.
제목으로 쓰인 ‘엔터티’(Entity)는 조금 낯설다. 1990년대 유행한 전산학과 용어 같다. 정보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대상이 되는 ‘실체’ 또는 ‘객체’를 의미한다. 마치 <매트릭스>가 개봉되고 나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언급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 영화는 미래의 이야기이고, 미래의 젊은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감시드론’의 눈과 ‘소셜포인트’의 잔액이 두려울 뿐. 영화는 암울한(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 던져진 난감한 캐릭터가 겪는 경쾌한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실체와 메타버스를 오가며, 건물 안과 밖의 떠돌며 청춘은 바쁘고, 현대인은 고독하고, 미래는 미정이다. 정휘빈 감독은 17분의 애니메이션에 그 소동을 멋있게 우겨넣었다. 오작동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불안감이 끝까지 상존한다. (박재환)
▶감독:정휘빈 ▶각본:정휘빈 ▶출연:이새벽, 원종준, 김인수, 장미 ▶프로듀서:김광회 ▶촬영/편집:이용선 ▶미술: 정휘빈, 최지희, 조예슬 ▶음악:양관섭 ▶사운드:지준석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기담]상영작 ▶상영시간: 17분28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