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
이 영화가 조금 일찍 공개되었다면, 아마 내년 봄 열릴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부문) 한국대표로 ‘어쩔수가없다’와 각축을 펼쳤을 것 같다. ‘굿뉴스’에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옹골차게 들어차있다. ‘불한당’으로 언젠간 큰 사고를 칠 것 같은 변성현 감독이 마침내 ‘굿뉴스’에서 폭발한 것이다.
알려진 대로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실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극화한 것이다. 프랑스를 휩쓴 68학생운동은 일본에 적군파를 탄생시켰고,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일단의 몽상가들은 직접 행동에 나선다. 1970년 3월 31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신좌파 일당은 여객기(JAL 요도호)를 하이재킹한다. 그들은 조종석으로 달려가서는 다짜고짜 평양으로 날아갈 것을 명령한다. ‘북조선’이 그들의 혁명의 전진기지로 삼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비행기는 (일본)국내선이었고, 당시 북한과는 수교는 고사하고 북한으로 가는 비행길도 모른다. (관제를 해야 하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게다가 그 사이에는 ‘한국’이라는 절대변수가 있었다. 변성현 감독은 이 난해하고도 난감한 국제적 난기류를 어떻게 헤쳐 나갈까. 흥미진진하다.
한반도로 기수를 돌린 비행기. 그들에겐 항로도 없고, 관제사의 지시도 없다. 이 긴박한 상황에 중앙정보부에서는 신박한 작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중정부장 박상현(설경구)의 장자방인 ‘아무개’(설경구)가 기상천외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선은 실력 있는 공군 관제사 서고명 중위(홍경)로 하여금 비행기 무선통신을 인터셉트하여 기수를 휴전선 쪽으로 돌린다. 그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이 비행기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는 것이다. 그곳이 평양공항이라고 속이고. 어떻게? 세상 속이는 것이 본업(!)인 트릭의 대가 ‘영화감독’(윤경호)을 데려와서 지상최대의 쇼를 연출하는 것이다. 평양공항이 된 김포공항에는 북한인민군과 한복차림의 인민으로 분장한 엑스트라가 대거 동원된다. 이제 비행기에 탄 납치범 일당들이 속아주기만 하면 된다. 1970년의 김포공항. 비도 내리고, 텅 빈 활주로엔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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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이런 기상천외한 하이재킹과 더블하이재킹의 숨 막히는 사건 진행이 관람 포인트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둘러싼 한일 양국, 그리고 북한까지 당사국 인물들이 펼치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진정한 재미거리이다. <굿뉴스>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응하는 동아시아 삼국의 자존심 경쟁이다. 처음 일본에서 하이재킹 당한 뒤 공항에서 펼쳐지는 자위대와 관료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런데 곧이어 한국에서 펼쳐질 코미디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 한국 쪽 드라마는 호화찬란하다. 박정희 시대의 청와대와 중정 같은 권력심장부의 고인물이 펼치는 충성경쟁은 하이엔드급 SNL이다.
설경구는 분단국가가 잉태한 비극적 개인사를 미스터리한 인물 ‘아무개’를 연기한다. 중정부장을 연기한 류승범의 프리스타일 액팅은 그야말로 이 영화를 유신최고의 코미디극으로 등극시킨다. 모든 조역들이 한 편의 유신시대 통속극 속 귀신처럼 영혼을 불어넣었다. 많은 조역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홍경의 아버지로 잠깐 등장하는 박지환은 이 영화의 웃음 뒤에 숨은 비극을 상징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영화에 ‘박통’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반부에 뜻밖의 귀인이 등장한다. ‘각하는 숙취로 못 일어나시고’ 대신 V2(혹은 V0)가 공항에 왕림하여 일장연설을 펼친다. 이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자리에 있어야할 사람이 없고, 설치지 않아야할 사람이 설치는 경우 얼마나 코미디인지를 잔인할 정도로 유쾌하게 재연한다.
굿뉴스
변성현 감독은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선사한다. 그중 아마 가장 잔인한 정치드라마는 서고명이 기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마지못해 납치된 비행기로 들어가는 장면. 이 황당한 상황에서 ‘걸작 망가’ <내일의 죠>에 대해 논쟁을 펼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상황실 모습. “그래서 어떤가? 그들이 자폭할 것인가?” 이에 대해 중정파와 (청와대)비서실파 사이에는 정반대의 상황판단을 강요한다. 마치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의 적정보고와 같다. “풍신수길의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하다.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자가 있고,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된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한 것이다. 훈장과 승진을 애타게 기대하는 서고명 중위는 그 짧은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는 ‘아무개’가 쏟아내는 명언의 향연이 아니라, 관료주의에 찌든 정치가들이 함부로 지껄이는 망언이 전하는 교훈이다. 웃다보면, 말도 안 되는 ‘달의 진실’을 생각하다보면 변성현 감독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굿뉴스 ▶감독:변성현 ▶각본:변성현 이진성 ▶출연:설경구(아무개) 홍경(고명) 류승범(성현) 야마다 타카유키(신이치) 시니나 깃페이(쿠보) 김성오(마에다) 카사마츠 쇼(덴지) 야마모토 나이루(아스카) 박영규 윤경호 최덕문 현봉식 차순배 서영상 이주원 오민애 전도연 박해수 전배수 박지환 김시아▶제작사:스타플래티넘 ▶공개: 2025년 10월 17일 넷플릭스 ▶상영시간:136분/15세이상관람가 ▶토론토국제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