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로퍼
‘미쟝센단편영화제’가 돌아왔다. 박찬욱, 봉준호의 뒤를 이을 야심을 가진 영화새싹들의 등용문인 미장센영화제는 코로나를 거치며 중단되었다가 4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올해에도 [고양이를 부탁해](사회적관점), [질투는 나의 힘](멜로로맨스), [품행제로](코미디), [기담](호러판타지), [인정사정 볼것없다](액션) 등 분류부터 취향이 확실한 섹션에서 모두 65편의 재기발랄한 작품이 상영되었다. 확실히 내일의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잉어들이 펄떡거렸다.
오한울 감독의 [갤로퍼]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섹션에서 ‘고라니’(심운용 감독), ‘나쁜피’(송현범 감독), ‘아주 먼 곳’(오은영 감독)과 함께 묶여 '인정사정 볼 것없다'(2)에서 상영되었다. ‘갤로퍼’는 한 시대를 풍미(!)한 자동차 모델이다. 현대(현대정공!)에서 1991년 세상에 첫선을 보인 갤로퍼는 쌍용의 코란도와 함께 4WD SUV로 이름을 떨쳤다. 이 차는 2003년 단종되었지만 지금도 아주 가끔 도로에서 만난다. 단편영화 [갤로퍼]는 그 차만큼 인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갤로퍼
차를 타고 한 두어 시간 달리면 만나는 지방 소도시. 이 조용한 시골마을 파출소장(기주봉)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30년 몸담은 경찰 생활의 마지막 날이다. 자리도 정리하고, 수갑 등도 반납하고, 짐도 치우고, 마음도 비운다. 하지만 오랫동안 탄 차가 마음에 걸린다. 경찰 초년 시절부터 이 갤로퍼를 타고 도내 어디든지 달리며 범인을 잡았을 것이다. 폐차 처리를 하려고 업자를 불렀지만 그 차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인다. 속상해서 돌려보낸다. 파출소 사람과 작별인사를 하고, 덜덜거리는 갤로퍼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그의 차 앞으로 ‘레이’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따라잡으려 했지만 차가 멈춰 선다. 도내에 은행강도 사건이 계속 일어났기에 경찰의 촉이 살아난다. 차를 겨우 수습하고는 30년, 갤로퍼와 함께한 경찰 노하우를 활용, 사방팔방 시골길을 꿰차고 있는 그는 레이의 예상 도주로를 파악, 앞에 따악 멈춰 선다. 잡았다! 그런데... 그 차에는 웬 할머니가 타고 있다. 이걸 어쩌지.
단편영화 <갤로퍼>는 단종된 갤로퍼, 1993년산 자동차 오너의 마지막 날을 함께 한다. 자동차 주인도 하필 그날이 ‘마지막 경찰의 날’이다. 차는 오늘로 폐차될 신세였다. 그 마지막 순간에 불꽃같은 추격전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불태우는 것이다. 조금은 문학적인 쓸쓸한 구조이다. 하지만 시골길을 삐걱대면 달리는 노후 차량의 불꽃 체이싱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 영화의 미덕은 ‘레이의 반전’이다. 과연 감독은 이 단편을 은퇴자의 쓸쓸한 드라마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액션 추적극으로 만들 것인지. 놀랍게도 반전이 있는 드라마였다.
성균관대(영상학과)와 한예종을 나온 오한울 감독은 ‘장롱 안 호랑이’(18), ‘제사’(20), ‘도시락’(21), ‘오디션’(24), ‘순환감정’(25) 등의 단편을 연출했다. 장르의 특성을 바탕으로 드라마의 맛을 잘 살린 작품이다. (박재환)
▶갤로퍼 ▶감독/각본:오한욱 ▶프로듀서:이지원 ▶조연출:김동은 ▶촬영:김동효 편▶집:이영후 ▶출연:기주봉, 이양희, 전봉석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인정사정볼것없다’ 상영작/ 21분
[사진=미장센단편영화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