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로퍼
4년 만에 부활하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인시킨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오한울 감독의 <갤로퍼>는 단연 눈에 띄는 수작이다. 액션 장르를 표방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섹션에 초청된 이 21분짜리 단편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단종된 노후 차량 '갤로퍼'를 통해 은퇴를 앞둔 한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과 회한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이야기는 30년 경찰 생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시골 파출소장(기주봉)의 하루를 쫓는다. 수갑을 반납하고 짐을 정리하며 정든 일터를 떠나는 그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는 경찰 초년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1993년산 갤로퍼를 폐차하는 일이다. 차마 고철로 보낼 수 없어 무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은 퇴근길, 그의 앞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레이' 한 대가 정적을 깨운다. 최근 도내를 떠들썩하게 한 은행강도 사건을 떠올린 노병의 촉이 발동하고, 폐차 직전의 갤로퍼는 생애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추격전에 돌입한다.
영화는 삐걱거리는 노후 차량의 거친 숨소리와 시골길을 꿰뚫고 있는 노련한 경찰의 노하우를 결합해 독특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단순히 은퇴자의 쓸쓸한 드라마에 머물 것 같던 영화는 레이와의 추격전 끝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선사하며 단편 영화 특유의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배우 기주봉은 무뚝뚝하면서도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로 낡은 갤로퍼와 하나 된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오한울 감독은 단종된 자동차와 은퇴하는 경찰이라는 유사한 운명을 지닌 두 객체를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갤로퍼>는 낡고 오래된 것이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그 속에 쌓인 시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액션과 드라마의 절묘한 변주로 증명해낸다. 짧은 러닝타임 속에 인생의 황혼과 마지막 열정을 담아낸, 묵직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