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고기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노인의 이야기.
고깃집에서 무전취식하는 세 노인의 이야기.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노인들의 말로.
지난 7일 개봉된 영화 <노인과 고기>의 주된 내용이다. 요즘 같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글로벌하게 어려운 시기에 누가 이런 영화를 굳이 돈 내고 볼 것인가. 어쩌면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이 서글픈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는 한 줄 줄거리 너머,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은 고기를 먹어야 산다”일지라도.
길을 걷다보면 나이 드신 어르신네, ‘노인네’가 힘겹게 리어카나 바퀴달린 바구니를 끌며 휴지, 폐지를 모으는 것을 볼 수 있다. 택배박스, 신문, 버린 책들. 이런 걸 모아 고물상에 가져가면 킬로그램 단위도 폐지 값을 받는다. 그야말로 푼돈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 땀과 노동력에 대한 가치, 신발 밑창 닳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이 안타까울 것이다. 하지만 노인네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묵묵히 리어카를 끈다. 골목에서도, 언덕길에서도, 인도에서도, 차도에서도. 다른 사람, 운전자는 안중에도 없다. 단지 다른 누군가가 먼저 폐지를 주워가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국이다.
사람과 고기
우식(장용)과 형준(박근형)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항상 오는 그 길에 놓인 폐지를 누가 줍느냐로 말다툼을 하고 몸싸움을 한다. 그 싸움이 벌어지는 코앞에서 화진(예수정)은 좌판을 펼치고 채소를 팔고 있다. 이제 이 세 노인네가 푼돈을 벌고, 겨우 먹고사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달프다. 한국이다. 첫 만남에의 언짢은 추억은 뒤로 하고 이들은 곧 함께 어울리게 된다. 맨날 지나가는 길목, 보아온 처지이니. 형준의 오래된, 낡은, 하지만 괜찮은 집이 그들의 사랑방이 된다. 오랜만에 소고기뭇국을 먹으며 이들은 새로운 삶의 재미를 찾기 시작한다. 우식이 말을 꺼낸다. “우리 고기 먹은 지 오래된 것 같아. 고기 먹자!”고. 그들은 장사가 잘 되는 고깃집을 찾아 푸짐하게 고기를 먹는다. 배가 부르니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데 계산은 어떡하지?” 이제부터 한국을 살아온 노인네의 삶의 지혜가 드러난다. “먹었으니 튀자!” 이렇게 우식과 형준과 화진의 고깃집 순례가 시작된다. 요령도 생기고, 여유도 생긴다. 물론,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수모를 당하고, 비난을 받고, 재판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의 즐거운 한 때가 저녁놀과 함께 사라져간다. 헛헛하다.
사람과 고기
<사람과 고기>는 여러모로 서글픈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문제, 독거노인문제, 고독사문제 등등. 이른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쓸쓸하게 여생을 마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사람과 고기>는 그런 노인들의 자구책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먹고 죽으나 안 먹고 죽으나” 그들 남은 삶을 채우는 방법은 똑 같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무전취식하는, 불법을 저지르는 노인네를 명확하게 보여주나 관객들은 어느새 그 불법에 묘한 응원을 하게 된다. 제발 고기를 배불리 자시고, 무사히 먹튀하기를. 이 영화에서 뜻밖에 만나는 장면이 있다. 장용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힘들게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갈 때 퀵오토바이가 옆으로 쌩하고 지나간다. 장용이 한소리를 내지르자 그 퀵 청년이 갑자기 끽 멈추더니 내리더니 성큼성큼 다가온다. 아마도 그 청년이 화풀이를 하겠지.참 불쌍한 노인이네 생각하는 순간 청년은 말없이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준다. 세상은 요만큼이라도 숨 쉴 틈이 있는 것이다. 이런 장면은 뒤에 고깃집 사장(김성오)과 파출소 경찰의 뜻밖의 대사에서도 느낄 수 있다.
물론, <사람과 고기>는 명확히 ‘빈곤포르노’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감독은 마지막에 그런 시선을 지혜롭게 차단한다. 박근형이 줄곧 영어회화 테이프를 듣는데 그 용도는 뜻밖이었다. ‘K-’ 한류의 휘황찬란함 뒤에 폐지 리어카를 끄는 한국 노인이라니. 그 모습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박근형은 어눌한 영어로 말한다. “두 유 라이크 몽키? 아이 돈트 라이크 몽키”라고. 이 영화는 단죄하는 영화가 아니다. 젊은 시절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자식들에게 왜 버림 받았는지 몰라도, 영세자영업 사장님을 한숨짓게 만드는 K-올드맨이지만 그들도 한때 뜨거웠던 연탄불의 열정을 가슴에 품었던 청춘이었다는 것을. 고기를 앞에 두고 “이렇게 가슴 뛰었던 적이 없었다”고. (박재환)
▶사람과 고기 ▶감독:양종현 ▶출연: 박근형(형준) 장용(우식) 예수정(화진) 김성오 이승준 ▶제작사:영화사 도로시/ 오아시스스튜디오 ▶배급: 트리플픽쳐스 ▶개봉:2025년 10월 7일/107분/12세이상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