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한때 충무로를 완전 접수한 장르가 ‘조폭영화’였다. 일본의 야쿠자, 중국의 삼합회에 맞서 ‘K-폭력’ 무비의 최선봉에서 칼과 주먹질과 얄팍한 의리로 사회정의를 평정(?)하며 악의 소굴을 파 들어갔다. 물론, 한국 조폭영화는 나름 발전했다. 건달이 학교에도 가고, 아내(마누라)가 조직에 들어오기도 하고, 여하튼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달콤한 신세계가 한동안 펼쳐졌다. 그렇게 정계, 재계, 언론계가 한통속이 되어 다 같이 부정부패로 매진하며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2025년 추석을 맞아 그 최신판이 공개되었다. 라희찬 감독의 <보스>이다. 이 작품은 홍콩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이미 조폭영화의 성공법칙, 추석영화의 흥행공식을 잘 아는 한국영화계가 고심하여 스토리를 다듬고, 액션을 조율하고, 관객의 공감을 윽박지른다!
가상의 도시, 용두시. 허름한 간판의 중국집 미미루의 순태(조우진)는 오늘도 짜장면과 탕수육과 각종 중화요리로 식구들을 배불리, 맛있게 먹이고 있다. 그러다가 호출을 받고 뛰어나간다. 알고 보니 조폭 ‘식구파’의 멤버이다. 초반부 코믹한 액션신이 상쾌하게 전개되면서 식구파의 보스는 대수(이성민)이고, 순태(조우진), 강표(정경호), 판호(박지환)가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라는 것을 보여준다. 평화롭고 의리가 넘치는 것 같은 이 용두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보스 대수가 황천길로 떠나자 이제 새로운 보스를 옹립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넘버2’ 인물들이 서로 ‘보스’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순태는 중국집 요리사가 꿈이었고, 강표는 뒤늦게 탱고의 매력에 빠져 춤을 배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대포 판호가 이끌기에는 조직은 이미 너무 위험한 비즈니스에 발을 담근 상태였다. 이제 용두시는 누가 접수하고, 식구파는 누가 먹여 살리고, 관객들은 누구를 응원해야하는가. ‘언더커버’ 태규(이규형)까지 끼어들어 난장판을 만든다.
보스
<보스>는 홍콩영화를 한국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맥조휘와 함께 홍콩 느와르의 걸작 <무간도>와 <절청풍운> 시리즈의 각본을 썼던 장문강의 첫 단독 감독작품 <원스 어 갱스터>(飛砂風中轉)가 원작이다. 삼합회의 보스 방중신이 죽은 뒤 후계자를 뽑아야하는데 진소춘은 식당을 하고 싶어하고, 정이건은 출옥 후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제 둘은 '원치 않는 자리'를 놓고 이겨야 지는 싸움을 펼치는 것이다.
<보스>는 이 홍콩작품을 K-조폭 스타일로 바꾼다. K-드라마의 힘은 가족 중심이다. 조폭 사회의 위계나 의리도 넓게 보면 가족이다. 가장은 그 구성원을 보호해야한다. 그 첫 번째 출발점은 배불리 먹이는 것. 맛있는 짜장면이라면 우선 납득 가능할 것이다. 조우진이 아내(황우슬혜)와 딸의 눈치를 보는 것은 조폭요리사의 웃픈 처지이다. 정경호가 연기하는 춤꾼 강표 또한 뒤늦게 찾은 자신의 꿈에 매진하는 인물이다. 이 둘의 몽상에 균형추가 되는 인물이 무대포 판호이다. 판호의 대사를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영화 <넘버3>의 아우라를 느끼게 해준다. <보스>는 ‘조폭’의 체계를 흥미롭게 그린다. 조우진-정경호-박지환 트리오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선배(!)들인 정규수-주진모-이한위-오달수의 역학 관계를 코믹하게 이끌어낸다. 물론, 고창석-이규형이 만들어내는 ‘무간도’ 스토리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코미디이다. 특히 이규형의 후반부 활약상을 정말 ‘약 빤’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성룡이 물러간 ‘추석’ 자리는 전통적으로 가족 관객을 타깃으로 한 코믹액션극이 대세이다. 그냥 하하호호 웃고, 왁자지껄 수다 떨고, 팝콘 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 사이 트럼프도 잊고, 환율도 잊고 하면 행복한 것이다. <보스>는 딱 그렇게 만든 팝콘 무비이다.
“비겁하다 (비겁하다)/ 욕하지 마 (욕하지 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매고 다녀도/ 내 상처를 끌어안은 그대가/ 곁에 있어 행복했다/..../저 하늘이 외면하는 그 순간/ 내 생에 봄날은 간다...” 그렇다. 라희찬 감독의 <보스>는 그런 영화이다. (박재환)
▶보스 ▶각본/감독:라희찬 ▶원작: 홍콩 ‘飛砂風中轉’(Once A Gangster) (장문강 감독,2010) ▶출연: 조우진, 정경호, 박지환, 이규형, 오달수, 황우슬혜, 정유진, 고창석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김원국), 마인드마크 ▶개봉: 2025년 10월 3일/98분/15세이상관람가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