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1998년 이후》 전시장에서 이불 작가
조각에서 드로잉까지 다양한 조형물을 만들고 있는 세계적인 작가 이불의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린다.
리움미술관은 작가 이불의 대규모 서베이 전시 《이불: 1998년 이후》를 9월 4일(목)부터 2026년 1월 4일(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작가의 주요 작업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며, 조각, 대형 설치, 평면, 드로잉과 모형 등 150여 점을 전시한다.
이불은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사회정치적 맥락과 맞물린 급진적 작업을 선보이며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신체와 사회, 인간과 기술, 자연과 문명의 관계와 이를 둘러싼 권력의 문제를 폭넓게 탐구하며 동시대 미술의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해 왔다.
1990년대 후반 주요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를 통해 〈사이보그〉, 〈아나그램〉, 노래방 연작 등을 발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2005년부터는 근대의 유산과 유토피아적 비전을 탐구하는 건축적 설치 연작 <몽그랑레시(Mon grand récit)〉를 전개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2010년대부터는 평면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새로운 형식적, 재료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간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는 이불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하는 대규모 개인전이 이어져 왔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프로젝트 규모의 전시가 열려 왔고,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 개인전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의 초기 작업과 퍼포먼스를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다. 리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난 30여 년간의 작업을 선보이는 국내 첫 대규모 전시이자, 아시아에서는 13년 만에 최근작을 포함하여 기획된 서베이 전시로 주요 해외기관으로 순회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 2015-2016, 2020
기획전시장의 입구인 슬로프 공간에는 길이 17미터에 달하는 은빛 비행선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이 설치되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 체펠린 비행선을 참조하였으며, 기술 진보에 대한 인류의 열망과 그 좌절을 동시에 상징한다. 함께 전시 되는 〈롱 테일 헤일로: CTCS #1〉은 202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을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블랙박스 공간에서는 대규모 거울 설치 작업 〈태양의 도시 II〉가 벽과 바닥을 감싸며 관람객을 혼란스럽고 몰입적인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공간에는 작가의 초기 대표작인 〈사이보그 W6〉, 〈무제(아나그램 레더 #11 T.O.T.)〉,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소개된 노래방 작업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I〉, 그리고 근대 건축의 유토피아적 상징을 차용한〈오바드〉가 함께 배치된다.
'오바드 V'(2019)는 남북간 평화무드가 조성되며 비무장지대에서 철거한 초소 자재로 만든 작품이다.
또한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평면 연작인 〈퍼듀〉와 〈무제(취약할 의향–벨벳)〉도 선보인다. 이들 연작은 내용적으로는 작가의 대표적 조각 연작의 주제와 모티프를 반영하면서, 형식적으로는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화면을 구성하거나 자개, 벨벳 등 새로운 재료 실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관람객은 전시 공간을 이동하며 은빛 비행선, 거울 미로, 폐허를 닮은 구조물, 아득한 별과 가상의 공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다층적인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여정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시작과 끝이 없는 풍경 속에서 인간과 문명,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도록 이끈다.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욕조 형상의 작품도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를 기획한 리움미술관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이불 작가를 바라 보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미술, 건축, 문학, 사회 이론과 철학적 사유를 넘나들며 인류의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가능한 미래들에 대한 확장된 사유를 이끌어 온 작가의 폭넓은 작품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회 개막을 앞둔 이불 작가는 "이번 전시는 시간순이 아닌, 과거와 미래의 모습으로 펼쳐낸 것이다.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느낀다면 보람을 느낄 것 같다. 만약 어떠한 전시물이 지나간 일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또한 인류를 위해선 그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이불에게 따라붙는 ‘여전사’와 ‘페미니즘 아티스트’라는 수식어에 대해서는 "나를 그렇게 규정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제게 중요하지 않다. 관심사였고, 주변의 삶과 사회적 맥락에서 작업해서 나온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고 덧붙였다.
이불의 예술 세계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9월 27일(토) 에는 이불 작가가 직접 1998년 이후 주요 작업을 설명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되며, 10월에는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의 큐레이터 토크를 통해 전시 기획 의도와 배경을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다. 11월에는 〈몽그랑레시〉 연작의 건축적 요소와 개인적 서사를 철학, 건축, 미학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주제 강연이 예정되어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으로 참여 가능하다.
《이불: 1998년 이후》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그 뒤 홍콩 M+ 뮤지엄 전시와 유럽과 캐나다 순회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리움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