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물안개, 닭갈비, 막국수? 아마도 가본 사람이라면 공지천, 소양강댐, 그리고 청평사를 떠올릴 것이다. 30년 전, 이곳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어떤 추억이 남아있을까. 극중 ‘잔나비띠’ 아저씨가 하룻밤 청평사를 배회한다.
은주(서영화)와 홍주(양흥주) 부부는 소양강댐을 들렸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다. 택시기사의 시답잖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은주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둘은 다시 소양강댐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평사로 올라간다. 이미 날은 저물었고, 인적을 끊어졌다. 송하가든에서 따뜻한 오뎅(어묵)국물을 먹고, 예상치 않은 하룻밤을 묶게 된다. 그런데, 오래 전 이곳에 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은주와 흥주가 그렇게 옛 생각을 떠올릴 때 외박 나온 군인(우지현)와 애인인 듯한 여자(이상희)도 그곳에 나타난다.
이 영화를 재밌게 이해하려면 ‘청평사의 전설(?)’을 알아야한다. 소양강댐에서 청평사로 가는 뱃길은 오후 5시에 끊긴다. 걸어서 구성폭포와 청평사까지 갔다가 배를 놓치면 하루를 이곳에서 유숙해야한다. 적어도 30년 전 그곳에서는 연애의 작전이 필요한 곳이었다.
중년부부 은주와 흥주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들은 아마도 그때 즈음 대학생이었고, 외박 나온 군인이었고, 연인이었고, 결혼까지 이어진다. 중년의 삶이 다 그러하듯이 이들 부부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대단한 파열음은 아닐지라도 오랜 세월, 그냥 부부라는 이유로, 함께 산다는 이유로 이어온 정이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했는지 모른다. 그 위기는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는 여정에서 시작된다. 흥주는 한밤에 인적 끊긴 유원지를 배회하다 옛 여친(이선영)과 마주치고, 은주는 구성폭포와 청평사를 오가다 젊은 연인(우지현-이상희)을 만난다.
영화 <겨울밤에>는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놀라운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공간은 택시 씬을 제외하고는 청평사 인근을 벗어나지 않는다. 민박집과 폭포, 그리고 법당 등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교차한다. 탁월한 것은 시간적 배열이다. 영화는 은주와 흥주의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은주의 발길로, 흥주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에 끼어드는 젊은 연인들의 이야기는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저들이 이들의 과거일지 모른다고. 저들이 기억하고 싶은 첫사랑의 순간일지 모른다고. 폭포의 살얼음판에서 이뤄지는 ‘고함’과 ‘눈물’은 이들의 기이한 인연을 말하는지 모른다. 결국, 찾고자 하는 핸드폰은 이야기에서 사라진다. 애당초 찾고자 한 것은 30년 전의 기억과 추억인지 모른다.
감독은 청평사를 이야기하면, 삶을 반추하다보니 의도적으로 ‘심우도’의 몇 장면을 집어넣는다. (임순례 감독의 ‘소와 여행하는 법’ 참조) 아마도, 잃은 것과 찾는 것, 선문답의 요체를 전달하고 싶어 한 것 같지만 뜬금없는 죽비다.
춘천의 기억, 젊은 날의 초상을 제외한다면 어쩜 이 영화는 <아이즈 와이드 샷>과 연결된 작품인지 모른다. 중년의 부부는 멀리까지 가서, 하룻밤을 배회하며 가슴 속 응어리를 푼다. 아마도 미해결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감독 장우진이 1985년생이란 것이다. 분명 이 영화는 앞으로도 많은 분석과 해석이 뒤따를 구도(構圖/求道)의 영화이다. 2020년 12월 10일 개봉/12세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