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정원
<이사>, <태풍클럽> 등 일본 영화의 거장 소마이 신지 감독의 걸작들이 잇따라 개봉하며 국내 관객들을 찾는다. 그중 <여름정원>(1994)은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30여 년 만에 극장에서 온전히 감상할 기회를 얻었다. 영화는 고즈넉한 일본 고베의 주택가를 배경으로 세 소년의 엉뚱하고도 진지한 모험을 다룬다.
죽마고우인 키야마, 카와베, 야마시타는 죽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곧 죽을 것 같다"는 소문이 도는 독거노인 덴포 할아버지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계와 기웃거림은 이내 우정으로 변한다. 아이들은 잡초가 무성하던 할아버지의 마당을 정리하고 꽃씨를 뿌리며, 그곳을 자신들만의 놀이동산으로 바꾼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아이들은 할아버지로부터 평생을 짓눌러온 태평양 전쟁의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고독한 노후의 진실을 듣게 된다.
영화는 스티븐 킹의 <스탠드 바이 미>처럼 아이들의 모험 구조를 띠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전쟁의 죄책감과 가족 해체의 아픔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마당에 핀 푸른 코스모스와 죽은 나비, 말라버린 우물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생의 비유다. <여름정원>은 단순한 유년의 추억담을 넘어, 세대를 초월한 소통을 통해 상처를 보듬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