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 미래가 안 보이는 안개 같은 세상 속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은 연인의 이야기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조제, 그리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영석.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만한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영화 ‘조제’를 연출한 김종관 감독은 두 인물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인생과 사랑을 마주해야 할지 이야기한다. ‘조제’가 오는 12월 10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김종관 감독에게서 ‘조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조제’를 보며 연출해온 전작들이 떠올랐다. 평소처럼 공간과 풍경에 섬세한 연출을 기울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들의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나.
“영화 속에는 조제의 집, 고물상같이 쓸쓸한 공간들이 등장한다. 쓸쓸하지만 사람들의 삶도 들어 있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들이 영화라는 무대에 올라와 아름답게 비치길 바랐다.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림자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조제의 집이 가장 중요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무대이기도 했고 조제의 집 자체에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버려진 것들이 모여서 쌓인 공간이며 조제의 취향들이 묻어난 곳이지 않나. 그들의 가난한 삶 또한 깃들어 있다. 소품이나 배경 같은 부분들은 내 어린 시절의 가난함을 떠올리며 구현했다.”
Q.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을 것 같다. 새로운 ‘조제’를 탄생시키는 것에 부담감은 없었나.
“부담이 있었다. 처음에 할 생각이 없었지만 우연한 계기로 일본에 간 적이 있었다. 배우와 지원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어서 여러 PD들을 만나던 중에 원작 영화에 관련된 PD가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 그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은 일본 영화가 뭐냐’는 질문을 했고 그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고 답했다. 내 청춘에 가장 중요한 영화고 잘 만든 영화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리메이크 하는 것은 그 영화를 아끼는 마음에서 웬만한 사람들은 시도를 못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영화로 ‘러브레터’를 들었는데 그가 ‘둘 중에서 꼭 리메이크를 해야 한다면 무슨 영화를 하겠냐’고 물어봤다. 꼭 해야한다면 ‘조제’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 멜로 이야기도 있지만 그 안에 인간에 대한 깊은 시선이 있는 영화라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Q. 새롭게 탄생시킨 ‘조제’는 일본 영화와는 다른 구성과 연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각색했던 부분들에 대해 기억에 남는 부분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떤 영화들은 추억이 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20대 때 봤는데 보면서 나 자신을 떠올렸다. 내게는 소중한 영화고 영화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비슷한 캐스팅을 해서 똑같이 찍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에 대한 좋은 관점을 가지고 가되 그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조제’는 캐릭터의 변화도 있지만 스타일, 스토리도 변화가 있다. 이야기적인 면에서 보자면 사랑을 쌓아가는 과정이 길게 묘사됐다. 작은 돌을 쌓아서 그것들로 큰 덩어리의 감정을 만드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들이 안 좋은 판단을 할 때도 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연민을 갖게 된다. ‘누가 잘못을 했다’고 인물의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그들을 감싸고 있는 세상을 보게 만들고 싶었다. 이들의 이별에 누군가의 이기심이 드러나게 만들기는 싫었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관객들이 대입할 수 있는,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Q. 주연을 맡은 배우 한지민과 남주혁은 전작 ‘눈이 부시게’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이미 한번 호흡을 맞춰본 배우를 동시에 캐스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훌륭한 원작을 각색할 때 부담도 느꼈지만 동시에 장점들도 있었다. 그 점과 마찬가지로 이미 호흡을 맞춰본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 또한 걱정보다 장점들이 많았다. 멜로 영화에서는 케미스트리가 나오지 않으면 진짜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이미 쌓인 배우들과 작업한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눈이 부시게’ 촬영 전에 남주혁 배우와 미팅을 가졌는데 그의 목소리와 표정, 싱그러움, 선함이 마음에 들었고 새로운 결의 남자 캐릭터를 만들어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지민 배우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고, 남주혁과의 호흡에서 나이의 터울이 새로운 매력과 더 깊은 이야기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촬영을 하면서 둘의 호흡에 만족을 느꼈다.”
Q. 전작에서 현실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연애를 겪고 있는 관객들의 가슴을 관통하는 서사와 대사들을 담았다. ‘조제’ 또한 장애를 가진 여성과 연민을 느끼는 남성의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인 우리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육체적인 장애에 대한 장면들을 연출하면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삶 안에서 그런 디테일들이 왜곡되게 드러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조제는 마음의 트라우마가 있다. 자기가 어렸을 때의 실수 때문에 죄책감도 있고 본인이 본인을 사랑하지 않고 경멸한다. 그런 사람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를 좀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보편적인 사랑과 이별에 대해 본인의 감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들에서 캐릭터를 정하고 나니 그 안에서 대사들이 정해진 것 같다. 결국은 사람들이 저마다 어떤 순간들에 자신들의 아름다운 순간들, 혹은 나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괴로워한 순간이 있지 않나. 나 또한 20대, 30대에 후회 대신 그들과 함께한 시간을 더 좋게 추억하고 간직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관객들에게도 ‘조제’가 좋은 추억을 보는 것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랐다.”
Q. 전작 ‘페르소나-밤을 걷다’에서 작업을 함께 했던 배우 이지은(아이유)의 자장가가 엔딩곡으로 나왔다. 어떠한 계기로 이 곡을 넣게 되었나.
“막을 내릴 때 관객들에게 여러 상념이 들게 만드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이 이 영화의 방점을 찍어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자장가’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페르소나’에서 ‘밤을 걷다’라는 작품을 연출했는데 이지은 배우가 출연했었고 그가 이 에피소드에서 받은 영감으로 이 노래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연이 있었고, 노래가 나왔을 때 너무 좋았다. 이 영화의 엔딩에도 절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Q. 전작 ‘밤을 걷다’는 누군가의 젊은 죽음을 겪어본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영화는 어떠한 이야기를 지닌 관객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 속에서 조제는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영석은 스스로를 알아간다. 현재와 미래가 안 보이는 안개 같은 세상 속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은 연인의 이야기다. 서로를 아껴주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의 영화가 지금 시기에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본인들의 추억들을 더 사랑하고 아껴주게 되는, 또 하나의 추억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란다. 웃고 밝은 것만 보여줘서는 따뜻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 같다. ‘밤을 걷다’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지만 역설적으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영화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생각하고 희망을 생각해보게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조제의 집으로 여행 와서 조제와 영석이라는 사람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