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집안이 많다. 오랜 병치레에 아버지는 병원에서 오늘내일하고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빠와 여동생이 번갈아가며 병원을 지킨다. 경만(하준)은 전국의 잔칫집을 찾아 집안행사 이벤트MC로 밥벌이를 하고 있고, 여동생 경미(소주연)는 디자인학원을 다니며, 아르바이트하며 오빠와 번갈아 아빠 병수발을 든다. 병원비는 밀렸고 의뢰들어오는 행사는 없다. 다행히 좀 멀긴 하지만 삼천포에서 200(만원)짜리 행사가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숨을 거두신다. 오빠와 동생은 아버지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막막하다. 초상화 준비부터, 제단 장식도, 얼마나 찾아올지도 모를 문상객을 위해 머리고기도 마련해둬야 하는지 모른다. 수의는 어떻게 하고 장지는 어떻게 할지. 가르쳐주는 어른도 없다. 당장, 상주로서 절은 몇 번 하는지, 향불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장례식 날, 나는 잔칫집으로 향한다”
영화 <잔칫날>을 보면서 가슴이 아려오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코로나 사태로 극장이 한파에 걸린 지난 주말, <잔칫날>을 보는 사람의 연령은 다양했다. 몇 안 되는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공감하며, 한탄하며, 눈물을 짓는다. 삶이란 게 저렇게 처절하고, 장례식이란 게 얼마나 블랙코미디의 장인지 말이다.
오빠 경만은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삼천포로 향한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팔순 어머니를 위한 효도잔치 행사를 진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자기 아버지는 관속에 있는데, 자신은 남의 잔칫상에서 웃음을 팔아야한다. 효성 지극한 그 사람이 부탁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어머님이 도통 웃으시질 않는다. 어머니 얼굴에 웃음꽃만 핀다며. 제가 넉넉하게 보너스도 더 드리겠다.” 경만은 필사적이다.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다. 없는 집안의 경우 막상 어려운 일을 겪게 되면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어르신이 별로 없다. 있다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먼 친척이 허다하다. 경만은 오빠로서, 상주로서 마음이 급하다. 어떻게든 장례를 치러야하니깐. 장례비는 어디서 구할지 막막하다.
감독은 경만이 직면한 모든 문제를 장례식장 초입부에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심사가 복잡한 경만이가 뒤에 앉아있는 줄도 모르고 친구들이 와서 나누는 대화. “부조금 얼마 내면 되지? 5만원에 맞추자.” “10만원 낼 생각인데.” .“안 돼. 그러면 경만이도 담에 10만원 내야하는데 부담 갈 거야.”란다. 경만의 형편을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듣고 있는 경만으로서는 서글플 수밖에 없는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기어이 삼천포로 떠나는 것이다. 동생에겐 말도 없이. 장례식장을 내버려둔 채 말이다.
영화는 삼천포에서의 경만의 운수도 그리 좋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파출소에 발목이 잡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삼천포 팔순 잔칫집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장례식장에선 상주인 경만의 부재를 원망하는 동생의 울음소리가 처절하다.
영화는 경만과 경미의 답답한 현실을 부지런히 따라간다. 경만과 경미의 속을 긁어놓는 인물들을 하나씩 배치하며 남매의 상황을 더욱 애달프게 만든다. 김록경 감독은 그렇게 이어가던 절망적 심정을 후반부에 ‘아름답게’ 추스른다. 장례는 무사히 끝나고, 남은 것은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따뜻하고 푸근한 가족의 정과 추억들이다.
하준과 소주연의 성실한 연기와 정인기를 비롯한 조연들의 적절한 추임새가 영화의 소박하면서도 진중한 리얼리티를 살린다. 김록경 감독의 [잔칫날]은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최고로 마음이 움직이는 영화였다. 2020년 12월 2일 개봉 12세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