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유내강 20년, 그리고 한국영화의 미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로 충무로에 무모한 도전장을 날리며 등장한 류승완 감독. 그가 <짝패>(2006)를 내놓으며 한국 장르영화를 이끈 영화사 ‘외유내강’이 20년을 시간을 '한국영화'로 꽉 채웠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외유내강 20주년’ 특별 프로그램과 더불어 최근 한국 영화산업이 겪고 있는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돌파구를 모색하는 ‘외유내강 X BIFAN 한국영화포럼: 외유내강 20년, 그리고 한국영화의 미래’를 개최했다. 극장 관객 감소, 배급 불균형, OTT의 부상 등 다양한 변화를 맞이한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에 대한 실질적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외유내강’은 충무로의 전설적 로맨스의 두 주인공 류승완 감독과 그의 아내 강혜정이 오직 영화사랑으로 뭉쳐 만든 영화사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동안 ‘외유내강’과 한국영화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 5일(토) 오후, 부천아트센터 2층 소공연장에서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가 모더레이터를 맡아 열린 <외유내강 20년, 그리고 한국영화의 미래> 포럼에는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와 이하영 대표(하하필름스), 오정민 감독, 신한식 본부장(한국영화관산업협회), 그리고 학계의 조영신 박사가 참석하여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포럼은 ‘외유내강’에 대한 찬사와 짧은 덕담으로 시작되었다.
강혜정 대표는 “이렇게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하다. 20년의 의미와 영화라는 매체의 재미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주시기를 바란다. 그동안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게 돌려드리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외유내강에 대한 짧은 찬사는 여기서 끝나고, 이어지는 토론 시간은 작금의 한국영화계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미래 전망이었다.
이하영 대표는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는 확실하다. 2019년 이래 관객은 반 토막이 났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관객 수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관객 수 감소는 신규투자 감소로, 제작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관객 감소라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한 때 OTT를 무시하고, 소프트 개발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홀드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티티의 공세가 거세다. 한국영화 제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기획개발비 부분인데 이번 정부 예산에 반영되는 것이 무산되었다.”
극장상황을 대변하는 신한식 본부장은 “영화산업이란 것이 우리나라 전체 산업에서 보자면 미미한 수준이다. 2조 원이라 해봤자 넷플릭스 하나보다 작다. 그런데 이에 관련된 이해관계자, 플레이어가 너무 많다. 영화감독, 영화배우뿐만 아니라 극장, 창투사, 투자배급사 등이 있다. 한 저수지 안에 있다고만 생각하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고 분석했다.
조영신 박사는 이날 글로벌 OTT의 득세와 시장변화에 대한 영화계 측의 대응에 대한 질타를 쏟아 부었다. “전적으로 시장변화를 전혀 쫓아가지 못했다. 펜데믹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영화/극장 말고 다른 사업자들은 어땠는가. 그들은 대응전략을 짰고, 버텨왔다. 하지만 영화 쪽은 그러질 못했다. 지금은 시장의 경계가 무너졌는데 여전히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것 같다. 케이팝도, 방송도 변하고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이 바뀌었고, 소비자가 가장 능동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영화 쪽은 덜 움직인다. K팝이 그랬던 것처럼 내수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등 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작년 작은 영화 <장손>으로 큰 성과를 이룬 오정민 감독도 작금의 사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제 영화 <장손>이 개봉될 때 극장 스크린 수는 상업영화에 비해 형편없었다. 극장에서 맛볼 수 있는 메뉴가 한정적이었다. 우리나라엔 천만관객의 신화가 있는 것 같다. 인구 수에 비해 월등히 많다. 역대 대통령 당선자 득표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하나의 영화를 본다. 그러면서도 <서브스턴스> 같은 영화를 50만이나 보는 나라가 다른 나라에 있는가. 한국 관객을 그만큼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만큼 볼 만한 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의 경쟁은 영화만이 아니다. 이제 유튜브가 경쟁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극장에 갈 이유를 만들어줄 작품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연출자로서 영화도 좋고, 오티티도 좋다. 심지어 연극이라도 좋다. 시장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적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 콘텐츠를 만들겠다.”
강혜정 대표는 “이미 골든타임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신랄한 비평에 정신이 확 든다. 그래도 저는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동안 선배들 따라 열심히 영화만 만들며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제 뒤에 따라오는 후배가 없더라. 그것을 후회한다.”면서 “저는 출신 자체가 극장 영화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깊다. 지금은 어딜 가나 K-뷰티, K-푸드가 관심을 받지만 K-무비는 존재감이 떨어진 것 같다. 관객들이 영화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K-무비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 글로벌 OTT도 만들 것이고, 애니메이션도 도전할 것이다. 글로벌한 관객과 시청자가 위로 받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날 객석에서 포럼을 지켜보던 류승완 감독도 발언 기회를 얻어 영화사랑에 대해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올해 부천에서는 류승완 감독 영화를 포함해 외유내강이 제작한 대표작 18편을 상영했다. 영화팬들은 외유내강의 작품을 극장에서 만날 예정이다. 흥행영화 <엑시트> 이상근 감독의 신작 <악마가 이사왔다>가 곧 개봉되고,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휴민트>가 열심히 후반 작업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