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노이드
지난 3일 개막한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BIFAN)에서는 200편 넘는 영화들이 소개된다. 장편, 단편, AI영화, XR콘텐츠 등 다양한 작품들이 영화팬의 기대에 부응할 예정이다. 이들 상영작 중에는 현재의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달에 발맞춘, 재기 넘치는 창의적 SF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스페인 셀리아 갈란(Celia Galán) 감독의 <가이노이드>(원제:Ginoide)이다. 런닝타임 22분의 단편영화이다. ‘안드로이드’가 진화/분화하면서 이제 성별도 생긴 모양이다. ‘가이노이드’는 여성형 안드로이드라 보면 된다. 여기서 잠깐, ‘여성형 안드로이드’는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것일까. 불온한 생각은 잠깐 접어두고 우리 곁으로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온 미래를 접해본다.
영화가 시작되면 미니멀하게 모던한 우주여행 대합실 같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여기 두 여자가 마주앉아있다. 왼쪽의 여자(리타)는 간밤의 술 파티에서 아직 덜 깬 상태인 것 같고, 오른쪽의 여자(올리비아)는 그런 여자를 유심히 지켜보는 사감 같다.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이곳은 인공지능 개발회사이고, 지금 신상 베타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험실의 스피커에서는 “이 실험을 통과해야 실험 참가비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와 함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15분 내로 찾아내라”란 것이다.
리타와 올리비아가 나누는 대사, 행동, 반응을 지켜보면 이제 관객들도 상품테스트에 나서는 ‘사람’이 된다. 술과 약에 덜 깬 것 같은 리타는 “어제 과음 했지만, 난 인간이 맞아. 여기, 손목에 어제 클럽에 들어갈 때 찍은 스탬프도 있잖아.”란다. 올리비아는 “그것은 다 입력된 기억일 뿐이야.”란다. 과연 어떻게 자기 자신이 로봇이 아닌 인간이란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첨단지능이 어떻게 인간을 속일 수 있는지, 그들이 어떤 식으로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 흥미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가이노이드
영화에서 언급되는 ‘테스트 방식’은 유래가 깊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공학자인 앨런 튜링이 제창한 인공지능의 수준(레벨)에 대한 테스트이다.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지금 말하고 있는 저 상대가 ‘기계’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수준의 인공지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70년 전 개발된 테스트 방식이고, 이제는 ‘AI’와 ‘첨단 디자인 실력’으로 구별하기는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에이리언>에 등장하던 안드로이드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올리비아와 리타 둘 다 인간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단편영화답게, 흥미로운 과학적 난제를 심플하게 보여준다. 술 취한 인간과 냉혹한 기계, 혹은 공감하는 인간과 실험에 충실한 로봇의 대결일지도 모른다. <블레이드 러너> (필립 K. 딕 -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 등장하는 보이트-캄프 테스트의 변형인 셈이다.
그래서, 누가 안드로이드였는데? 글쎄 뻔한 것 같으면서도 반전을 보여준다.
참, 영화제 기간에 셀리아 갈란 감독이 한국을 찾아 한국관객을 직접 만났다. GV끝내고 부천 소풍에서 샌드위치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며 “저것은 안드로이드인가?” 생각이 얼핏 들었다.
가이노이드
▶가이노이드/지노이드(원제:Ginoide) ▶감독/각본: 셀리아 갈란 ▶출연: 베시 튀르네즈(올리비아), 알렉산드라 피노(리타) ▶상영시간: 20분 ▶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2025) 부천초이스(단편)부문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