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호랑이
누군가에게는 그 날의 시계바늘은 영원히 멈춰버렸을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의 아침 말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학생 325명, 인솔교사 14명, 일반인 137명 등 모두 476명이 타고 있었다. 밤새 파도를 헤치며 남으로 향하던 그 배는 운명의 날 오전 8시 49분경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수도에서 침몰한다. 배가 뒤집힌 채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때 모습이 뉴스화면에 잡혔다. 그 때만해도 우리 해경이, 우리 해군이 신속하게 현장으로 가서 학생들을, 사람들을 건져내고, 구해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2014년의 대한민국에는 그런 안전의 신화가 없었다. 배는 완전히 가라앉았고, 그 배에는 학생들이 갇혀있었고, 파도는 사나웠다. 이제 그 뒷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월호의 비극을 다룬 작품은 많다. 다큐멘터리도 많이 만들어졌고, <눈꺼풀>(오멸감독,2018), <너와 나>(조현철 감독) 같은 극영화도 만들어졌다. 김탁환 작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사고를 들여다보았다. 배가 침몰한 뒤, 현장으로 바로 달려간 사람들, 목숨 걸고 사체를 수습하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2016년 출간된 르포르타쥬 <거짓말이다>이다. 이 영화 <바다호랑이>는 바로 그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배가 침몰하자 사람들이 달려간다. 아마도, 인근을 지나던 어선, 구조연락 받은 해경, 어쩌면 해군 선박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배는 가라앉았고 이제 구조와 인양의 시간싸움이 시작된다. 문제는 그곳, 맹골수도의 해류가 거세다는 것. 그때부터 믿을 수 없는 뉴스가 세상을 뒤덮는다. 스쿠버 500명이 모였다고. 베테랑 잠수사가 그런다. “그곳은 맹골 수도(水道)야. 이순신 장군이 명랑해전 때 왜군들을 수장시킨 울들목 바로 옆이야. 물이 울면서 돈다고 해서 울들목이야. 세계에서 조류가 가장 세기로 유명한 곳이야.” 구조작업이 이어지면서 이제 ‘에어포켓’이나 ‘골든타임’ 용어만큼이나 ‘잠수병’, 감압장치인 ‘챔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안타까운 뉴스화면만 보고는 “왜 빨리 뛰어들어 구하지 않나?”고 다그치기만 했다. 김탁환의 르포르타주 소설 <거짓말이다>에서는 바로 그 촌각을 다투는 시점에 그 곳으로 달려갔고, 그 후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며 수도 없이 침몰선의 복잡한 선상구조를 오가며 희생자를 인양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시야는 1미터도 되지 않는 탁한 바다 속이다.
바다호랑이
모든 대형사고에는 희생자와 유족이 있고, 뻔뻔한 ‘당국’이 있다. 무책임한 사람들은 서둘러 ‘책임자’를 찾아 나선다. ‘희생양’이 필요하다. 바로 그 위험한 현장에서 민간잠수사가 사망한다. 의로운 죽음임에 분명하다. 이제, 그 사람을 바다로 내몰아 죽게 만든 사람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다. 위험한 임무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히는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국민에게는 도대체 그 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민간 잠수사들은 어이 없어하고, 유가족은 분통 터지고,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김탁환 작가는 민간 잠수사인 고 김관홍 잠수사와 공우영 잠수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거짓말이다>를 썼고, 영화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정윤철 감독은 원래 이 작품을 상업영화로 만들려고 했단다. 하지만 소재의 ‘민감성’(<다이빙벨>논란 등)과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프로젝트는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정윤철 감독은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저예산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결국 극초저예산 영화로 완성된다. 그래서 <바다호랑이>에는 실물이든, CG든, 미니어처든 ‘세월호’가 등장하지 않고, 학생들이 뛰놀며 SNS로 사진을 남겼을 ‘갑판’이나 ‘선내 객실’을 보여주는 세트조차 없다. <바다호랑이>는 마치 연극무대처럼 ‘하나의 텅 빈 공간’이 모든 이야기의 공간이 된다. 학생들이 머문 선실이며, 억울한 잠수사들이 재판받는 법정이 되며, 잠수사들이 분통 터지는 술집이 되며, 유족들이 한숨 쉬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잠수사가 어두운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으며 학생들을 거두는 곳도 바로 그 공간이다. 단지, 파도 소리와 물새소리만이 그곳이 맹골수도임을 알린다. 관객들은 첫 장면에서부터 바로 ‘상업영화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저예산영화의 진정성’에 녹아드는 것이다. 그만큼 연출의 힘, 연기의 진정성, 그리고 진실의 인양에 대한 관객의 마음이 절실하다는 것이리라.
영화를 보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것이 마녀사냥이든, 해원(解冤)의 발버둥이든 말이다. 정윤철 감독은 그 바다에서, 그 법정에서 그 분노를 마주친다. <대립군>을 찍었던 감독답게 분노의 방향은 확실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허구적인 대목은 대리기사가 만나는 정체불명의 공무원이다. 그 사람은 이런 식으로 협박한다.
“억울하실 것입니다. 근데 임진왜란 때 왜놈들하고 싸운 게 이순신 장군님 말고는 다 의병이었어요. 그 의병들의 최후를 아시나요. 의병장 김덕령은 곤장 100대를 맞고 죽었어요. 의병인데 왜놈이 아니라 조선의 왕에게 죽임을 당했죠. 반역죄라고. 그래서 병자호란 때는 아무도 의병에 나서지 않았어. 나라님들이 원래 그래. 정치라는 게. 또 그래서 조선왕조가 500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거지.”라고.
세월호가 남긴 길고도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정윤철 감독은 그렇게 분노한 것이다. 이게 상업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고통을 낮게, 깊게, 오래 전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고나면, 한 가지는 알게 된다. 깊은 수심, 맹렬한 해류, 기울어진 배,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어두운 선실, 계단, 복도, 벽을 더듬으며 학생들을, 사람들을 찾는 잠수사들의 노고를. 만약, 그 어둠 속에 손바닥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잠수사가 묻는다. “학생들을 어떻게 수습해야하죠?”
“두 팔로 꽉 안은 채 모시고 나와야한다. 맹골수도가 아니라면 평생하지 않아도 될 포옹이지. 그들이 잠수사를 붙잡거나 안을 수는 없으니까. 산 사람끼리 포옹할 때보다 두 배 , 세 배, 어쩌면 그 이상으로 힘을 주고 빠져나와야해. 나오다가 무너진 벽에 부딪치면 평생 후회하게 될지 모르니.” 그들은 깊고 어두운, 그 선실에서 교복의 명찰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잠수사의 절규. “챔버는 몸속의 질소를 빼내는 것이야. 내 머릿속도 같이 지워주면 좋을 텐데.”
세월호의 학생은 그렇게 잠수사들과 함께 기억되어야할 것이다.
▶바다호랑이(Sea Tiger) ▶감독: 정윤철 ▶원작: 김탁환 <거짓말이다> ▶출연: 이지훈(나경수), 손성호(류창대), 김영택(송창준), 김채원(조검사), 길정석(조치벽), 박소윤(나래엄마)박호산 ▶제공/제작: 영화사 침, 굿프로덕션 ▶배급: 영화로운형제 ▶개봉:2025년 6월25일/105분/15세이상관람가
[사진=영화로운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