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극장가에서는 이환경 감독의 ‘휴먼’ 정치드라마 <이웃사촌>이 흥행 정상을 차지했다. 수요일 개봉되어 닷새간 동원한 관객 수는 20만 명에 그쳤다. 코로나의 위력을 실감한 주말이었다. <7번방의 선물>로 1280만 관객을 끌어 모았던 흥행감독의 신작이지만 <이웃사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라 흥행 결과가 주목되었다.
영화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웠던 정치사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 제작사는 구체적인 시기, 인물을 밝히기를, 혹은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모양인데, 박정희 유신시절에서 전두환 정권 시절에 행해진 야당지도자 탄압을 모티브로 한다. 당시 ‘가택연금’을 당한 민주화 인사는 많았다. 아마도 영화를 만들 때 누구를, 어떤 사건에 초점을 맞출지 고민을 많이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로 나갔다가 기어이 귀국하고, 독재정권이 그의 대선 출마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고 한 정치인, 그리고 화물트럭과의 충돌사고로 죽을 뻔한 지도자는 DJ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화사는 전라도 사투리도 빼고, 지팡이도 치우는 선택을 했다. 그래도 안다. 그가 누구인지를.
영화는 정말 끔찍한 음지에서, 더러운 임무를 수행하며 그것이 애국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요원 유대권(정우)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공항 씬으로 넘어간다.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재야정치인 이의식(오달수)이다.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이의식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국가기관은 그를 귀국하자마자 압송, 가택연금 조치를 취한다.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차단하며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에 갇힌 그를 ‘빨갱이’로 엮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도청전문가 대권을 이웃집에 투입해서 말이다. 이제부터 담 하나 사이에 두고, 유력한 대권주자인 야당지도자와 독재정권의 하수인이 기묘한 ‘이웃사촌’이 되는 것이다. 빨갱이를 잡느냐, 인품에 감복하여 저도 모르게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한 무명의 헌신을 하느냐가 이 영화의 감상의 포인트인 것이다.
정우가 소속된 정보기관은 중정도 아니고, 안기부도, 국정원도 아닌 ‘유사명칭’으로 나온다. 그들 소속의 ‘도청팀’이 이웃집에 상주하며 야당정치인을 상대로 ‘불법사찰’을 펼치는 것이다. 암울한 시대를 염두에 두더라도 영화는 도청의 긴박감 보다는, ‘휴먼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 도청이 발각될 위기에 펼쳐지는 긴장감은 곧바로 어이없는 코믹함으로 마감된다.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같은 스릴을 기대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도청팀 3인방(정우,김병철, 조현철)의 팀플레이는 시종 도청의 긴박감보다는 담 너머 도청대상자(와 그 가족)과의 유대관계 형성에 주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가 이의식’의 인간적 풍모, 서민적 삶을 강조해야하고, 정보기관의 실장(김희원)에게는 스테레오타입의 악당질을 요구해야할 것이다. 한국현대사에서의 무거운 이야기는 그런 불균질 속에서 한없이 가벼운 드라마가 되어간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1987년 연말의 제13대 대통령선거 유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해 12월 16일 치러진 선거에는 (전두환의 뒤를 이은) 노태우 후보, 김영삼 후보, 김대중 후보, 그리고 김종필 후보가 출마했다. 선거를 앞두고 여의도광장, 장충단공원 등에서는 누가 더 많은 지지자를 동원하느냐가 뉴스 초점이었다. 그때부터 어딘가에 사람들이 집결하면 ‘100만 동원’의 신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웃사촌>과는 달리, 1987년, 13대 대선은 민주화세력의 좌절이었던 셈이다.
<이웃사촌>을 보면서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 잘 만든 인물드라마이며, 장준환 감독의 <1987>이 걸작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어쩌겠는가. 이환경 감독과 제작사는 이 영화를 끝까지 거대한 ‘정치드라마’가 아닌, 이웃과의 소통을 강조한 소소한 휴먼드라마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20년 11월 25일/12세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