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레귤레
현존(!)하는 한국영화계 최고의 작가주의 감독 고봉수 감독의 신작이 오늘(11일) 개봉한다. 고봉수 감독이 누군지 모른다고? ‘델타 보이즈’(2017)를 필두로 ‘튼튼이의 모험’, ‘습도 다소 높음’, ‘빚가리’ 등을 감독한 사람이다. 본 작품이 없다고? 그럼,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의 작품을 아직 못 봤다는 것이다. 고봉수 감독은 김기덕, 홍상수 감독만큼이나 넘치는 영화(제작)열정을 가지고 있다. 항상 영화를 만들 때마다 눈물겨운 ‘초저예산’ 제작담을 남기던 고봉수 감독이 이번에는 무려 ‘100퍼센트’ 해외로케를 감행한다. 튀르키예이다. 생각도 못한 카파도키아의 벌룬투어도 만나보게 된다. 고봉수 감독은 왜 저 멀리 튀르키예까지 갔을까.
자동차부품 수출업체의 대리 ‘대식’(이희준)은 팀장 원창(정춘)과 함께 튀르키예에서 무역거래를 하나 성사시킨다. 서류에 도장을 찍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은 대식의 마음과는 달리 팀장은 여기까지 온 김에 며칠 관광을 즐기잔다. 그렇게 ‘잘 안 맞는’ 상사와 낯선 땅에 더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 숙소에 정화(서예화)와 병선(신민재) 이혼 커플이 있다. 알코올중독 수준의 병선이 ‘이제 죽어도 술 끊겠다’며 매달리자 재결합 여행을 온 것이다. 하지만 튀르키예의 밤은 계속 술을 부르고 둘의 관계는 다시 악화된다. 벽을 통해 들려오는 커플의 싸움 소리. 대식은 오래 전 대학시절 때 정화와 절친이었다. 그 옛날 진심을 고백했다가 처절하게 차인 뒤 끝장 난 사이였는데 이렇게 튀르키예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다. 이제 알코올로 다시 갈라설 위기에 처한 커플과 뜻밖의 출장으로 옛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두 사람의 관광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이들은 카파도키아의 명물 벌룬을 탈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튀르키예의 ‘그린투어’ 코스를 따라간다. 고봉수 감독은 뛰어난 프로듀서와 유능한 현지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아 튀르키예의 풍광 속에서 고봉수의 색깔을 오롯이 담아낸다. 고봉수 감독의 영화에는 ‘홍상수영화’ 버금가는 일상의 찌질함과 처절함이 섞여있다. 직장인의 애환을 이야기하고, 위기의 커플의 마지막 부부싸움을 찍는 것 같으면서도 이야기는 어느새 재밌게 흘러간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투어에 나서는 세 모녀의 동행도 드라마에 생생한 현장감을 더한다.
귤레귤레
역시 고봉수 영화의 재미는 배우들의 탁월한 일상적 연기이다. 대본인지 애드리브인지, 돌발상황인지 모를 대사가 대식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정화의 분노에 불을 붙인다. <습도 다소 높음>에서 고봉수 영화에 첫 등장했던 이희준은 이제는 완벽하게 고봉수 캐릭터가 된다.(찌질함으로!) 신민재는 고봉수영화 베테랑답게 완벽하게 술주정을 부린다. 아마 패키지 해외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현지가이드에 대한 이런저런 느낌이 있을 것이다. “가이드 말 좀 들어주세요”라고 애달프게 호소하는 현지가이드 ’이스마일‘을 보면 정말 ’극한직업‘이 따로 없다.
<귤레귤레>는 고봉수 감독이 아내(극본 이주예)와 함께 튀르키예 카파도키아를 여행하며 시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아담 샌들러의 <펀치 드렁크 러브>처럼 무기력하고 찌질한 남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로맨스를 그린다.
제목 ‘귤레귤레’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쓰이는 튀르키예 인사말로 ‘웃으며 안녕’이라는 의미가 담겼단다. 영화 마지막에 남자는 하늘의 벌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거의 울상으로 ‘귤레귤레’를 외치고, 여자는 묘하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또 한 남자는 차 안 혼자 남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는 최유리의 ‘동그라미’와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귤레귤레~”
귤레귤레
▶귤레귤레 (Güle-Güle) ▶감독:고봉수 ▶각본:고봉수, 이주예 ▶출연: 이희준(대식), 서예화(정화), 신민재(병선), 정춘(원창), 김수진(자매엄마), 박은영(은영) 최수민(다영), 이스마일 아스케르(투어가이드) ▶제작:㈜필름초이스 ▶배급: ㈜인디스토리 ▶개봉:2025년6월11일/108분/15세이상관람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 상영작(2025)
[사진=인디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