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레귤레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인 작가주의 감독 고봉수가 신작 <귤레귤레>로 돌아왔다. 항상 눈물겨운 초저예산 제작 환경 속에서도 넘치는 창작열을 보여온 그는 이번에 무려 100% 튀르키예 로케이션이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감행했다. 영화는 자동차 부품 수출업체 대리 대식(이희준)이 팀장 원창과 함께 출장차 들른 튀르키예에서 대학 시절 짝사랑이자 절친이었던 정화(서예화)를 우연히 재회하며 벌어지는 소동극을 담는다.
정화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약속한 남편 병선(신민재)과 재결합 여행 중이었지만, 이들의 관계는 튀르키예의 밤마다 터져 나오는 술주정과 부부싸움으로 다시 위기에 처한다. 고봉수 감독은 카파도키아의 광활한 풍광과 '그린 투어' 코스를 배경으로, 홍상수 영화를 연상시키는 일상의 찌질함과 처절함을 고봉수 특유의 색채로 변주한다. 특히 직장 상사와의 껄끄러운 동행, 과거의 미련이 남은 재회, 극한 직업이나 다름없는 현지 가이드의 호소 등이 어우러져 생생한 현장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배우들의 열연은 단연 돋보인다. 고봉수 사단에 완벽히 녹아든 이희준의 찌질한 연기와 신민재의 능청스러운 술주정은 대본과 애드립의 경계를 허물며 몰입도를 높인다. 떠나는 이에게 건네는 '웃으며 안녕'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영화는 카파도키아의 벌룬 투어 끝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과 대면하는 인물들을 비춘다. 무기력한 남성 캐릭터의 서툰 로맨스를 통해 인생의 씁쓸하고도 동그란 단면을 포착해 낸 수작이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