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해병
오늘 자정이 지난 시간, KBS 1TV [한국영화클래식]에서는 이만희 감독의 1963년 작품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방송된다. 무려 62년 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중공군’과 치열한 고지전을 펼치는 국군 해병대의 혈전이 흑백의 화면에서 펼쳐진다. 이만희 감독은 한국영화 충무로시대의 명감독의 한 사람으로 <휴일>,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만추>, <쇠사슬을 끊어라>, <삼포 가는 길> 같은 걸작을 남겼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10년 뒤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당시 ‘스펙터클 한국영화’의 제작방식과 군인정신, ‘적성국’에 대한 시선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다. 해병부대의 상륙장갑차가 해변에 호랑이분대원들을 쏟아낸다. 용감한 해병대원들은 폐허가 된 시가로 들어가서 북한군과 총격전을 펼친다. 남과 북의 군인들이 총알을 쏟아내는 한복판에 한 모녀가 뛰어들고, 소녀(영희)만 국군에게 구조된다. 북한군을 섬멸하고 건물을 수색하는데 학살된 양민의 처참함에 분노한다. 희생자 중에는 구 일병의 여동생이 있다. 서울이 수복되고 부대는 계속 북진한다. 그런데 분대원들은 고아가 된 소녀, 영희를 자루 속에 숨겨 함께 전진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중공군의 남침을 저지하라는 특명이 내려진다. 분대원들은 영희를 본부에 남겨두고 마지막 전선에 투입된다. 영희는 “오빠 살아서 꼭 돌아와요”라고 말하고, 분대원들은 이제 물 밀듯이 밀려오는 중공군을 마지막 한 사람, 마지막 총알 하나까지 쏟아내며 저지한다. 과연 살아서 영희를 다시 만날 해병대원이 있을까.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는 전우들의 시체가 가득하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10년. 불타는 애국심으로 완성된 전쟁영화일 것이다. 실제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 영화가 완성되었다. 해병대원 3천명이 엑스트라로 동원되어 장관을 연출한다. 초반부 ‘인천상륙작전’ 신은 제작연도를 염두에 둔다면 조금 놀라운 장면이다. (항공모함을 동원한 ‘톱 건’에 비견할 만할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한다면!) 실제 이 영화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있다. 필름소모가 엄청나서 제작이 좌절될 뻔 했으나, 초반 상륙전을 찍은 것을 본 투자자들이 다시 돈을 대주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일화를 시작으로, 실감나는 전투장면에 대한 이만희 감독의 욕심으로 폭발물에 의한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믿지 못할 이야기는 공포탄보다 실탄을 사용한 사격 장면을 찍기 위해 명사수가 ‘사람 안 다치게’ 총을 쏘았다는 이야기까지. 여하튼 1963년에 찍은 한국전쟁 영화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이 영화를 처음 접하면 스토리 전개에 몇 번 놀라게 된다. 어린 여자애를 데리고 전선을 누빈다는 것은 영화적 장치일 것이다. (“고아원에 가는 것보다는 군인아저씨랑 같이 있고 싶어요~”) 그리고, 전쟁이 한창인데 군인들이 포상 휴가로 술집으로 몰려가서 하룻밤 뜨거운 밤을 보내려 한다는 에피소드. 그것도 그들이 가는 곳이 미군클럽이고, ‘양공주’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반미’까지는 안가지만 ‘미군’의 특별한 대접에 대한 ‘한국군’의 불만도 대사에 짠하게 남아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이다. 충무로 ‘625영화’에서는 북한의 비인간적인 만행, 비겁함, 허접함이 항상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초반부 ‘폐건물 양민학살신’만 잠깐 보여줄 뿐이다. 대신 해병대가 맞서 싸워야하는 주적은 ‘중공군’이다.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해병대’가 분장한 인민군들이 말 그대로 산등성이를 빽빽하게 채우며 돌진하는 모습은 공포스러울 정도이다. 당시 이들을 묘사할 때, 총조차 없는 중공군들이 북과 꽹과리를 치며 인해전술로 몰려온다고 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충실하게 그런 전술을 보여준다.
포화가 쏟아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전우가 하나둘 죽는다. 애국심은 둘째 치더라도 전우애는 불타고 적개심은 불타오를 것이다. 이만희 감독은 그 야만, 혹은 애국의 전장에서 독특한 휴머니즘을 보여준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런 전장에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린 소녀’를 마스코트처럼 보여준다. 그들이 지켜야할 산하, 국민은 아마 그 어린 소녀로 대표될 것이다. ‘람보’ 같은 해병대원은 없지만 충분히 전쟁의 비극과 군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다. 장동휘가 분대장으로,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등이 용감무쌍한 해병대원으로 나온다. 어린 소녀로 나온 배우는 전영선이다. 지난 주 방송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명희로 나왔던 배우이다. 35년간 영화배우로 활약하다 1991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북한군에 여동생을 잃고 오열하는 구 해병을 연기한 배우는 고(故) 이대엽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에 당선(19,20대)될 때 전임 시장(17,18대)을 지냈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이만희 감독을 이야기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7인의 여포로>(1965)이다. 영화 내용은 북한군 장교는 포로가 된 국군 간호장교 7명을 호송하는 중에 중공군을 만나고, 중공군이 여포로들을 겁탈하려 들자 북한군 장교가 부하 사병과 함께 중공군과 맞서 싸운다. 결국 간호장교들을 데리고 국군에 귀순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북한군이고, 중공군의 만행에 맞서 싸우고 대한민국에 귀순한다니! 꽤나 앞서가는 이데올로기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이 영화 때문에 이만희 감독은 곤욕을 치르게 된다. 북한군을 미화시켰다고 검열에 걸려 영화감독 최초로 반공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당시(1964년 12월) 서울지검 공안부의 변은 이랬다. “감상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군을 무기력한 군대로 그린 반면, 북한의 인민군을 찬양하고 미군에게 학대받는 양공주들의 비참함을 과장 묘사하여 미군 철수 등 외세 배격 풍조를 고취하였다”고. 다행히 최종적으론 무혐의로 끝나서 무사히 풀려났지만 영화는 여러 곳이 잘리고, 제목도 <돌아온 여군>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밤 방송되는 <한국영화걸작선>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전쟁과 그 이후 한국인이 가진 동북아정세에 대한 시각과 이해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자, 이만희라는 불세출의 영화감독의 작품세계를 음미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만희 감독은 43살에 요절했다.((1931~1975) 그의 딸이 바로 영화배우 이혜영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감독: 이만희 ▶시나리오: 장국진 ▶출연: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전계현, 강미애, 전영선, 김운하 ▶촬영: 서정민 ▶편집: 김희수 ▶제작: 원선 ▶제작: 대원영화주식회사 ▶배급: 연방영화주식회사 ▶개봉: 1963년 4월 ▶방송: 2025년 6월 7일 토요일 밤 24:15~ (KBS-1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