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피에르
‘누벨바그 걸작’이라고 했지만 요즘 누가 누벨바그를 추앙할까. 마치 ‘바로크의 걸작’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서지학적 명제이다. 물론, 아직도 영화사적으로 영화를 보고, 이미지적으로 영화를 탐독한다면 극장에서 <미치광이 피에로>를 만나볼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을 것이다.
‘누벨바그’는 익히 알려진 대로 1950~60년대 영화사의 페이지를 장식한 프랑스의 영화사조이다. 그 동안 이어져온 영화들의 제작방식이나 미학에 저항하는 일단의 움직임이었다. 굉장히 현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장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하고, 관념적인 영화미학에 반대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느슨한 이야기 구조, 즉흥적 연기, 야외에서의 촬영방식 등등이다. 프랑스의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열혈 청년평론가들이 그렇게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으면 한동안, 그리고 오랫동안 그런 ‘누벨바그’의 명성을 누렸다. 그들은 작가주의 영화감독으로 추앙받고 그들의 작품은 끊임없이 재발굴되고 있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미치광이 피에로>도 그렇다. 몇 차례 시네마테크에서 기획 상영되었고, 지금도 많은 대학 영화동아리에서 탐닉되고 있을 것이다. 6월 4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영화는 1965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페르디낭은 처가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가 오래전 연인 마리안을 만난다.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다가 기이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두서없이, 맥락도 없이 현장을 빠져나와 도주행각을 펼친다. 살인자나 무법자 같은 이미지는 전혀 없는 두 사람은 음악을 듣고, 시를 읽으면, 책장을 넘긴다. 둘 사이는 좋다가도 나빠지고, 위태롭다가 다시 어울린다. 그러다가. 악당을 만나게 되고 마리안은 잡혀간다. 이야기는 울퉁불퉁 이어진다. 마리안은 도주하고, 이번엔 페르디낭이 잡혀 고문당한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큰돈을 강탈하지만 이내 마리안이 배신한다. 페르디낭은 총을 들고 마리안과 내연남을 쏘아 죽인다. 그리고 ‘자폭’한다.
장 뤽 고다르는 ‘누벨바그 가이드’에 집착하듯이 이 영화를 만든다. 남자와 여자가 만났지만 사랑을 이야기하지도, 미래를 그리지도 않는다. 침대엔 죽은 자가 있지만 왜 죽었는지, 왜 죽였는지도 알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기면서 멋있는 문장을 읊조리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결국 둘은 왜 같이 다니는지, 왜 도망 다니는지도 불확실하다. 어쩌면 남녀의 사랑의 도피란 것이 부질없고, 의미 없고, 맥락 없는 열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60년이 지나도록 누벨바그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든지.
미치광이 피에르
장 뤽 고다르의 영화적 상상력으로 충실히 디자인된 60년 전 프랑스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많은 문학작품과 시사적 이벤트가 언급된다. 장 뤽 고다르의 정치적 관심에 따라, 그리고 당대 프랑스 지식인의 자의식 과잉은 영화에 흘러넘친다. IMDB의 ‘Trivia’의 도움 없이는 왜 페드디낭이 주요소 직원에게 "내 엔진에 호랑이를 넣어라"라는 말을 하는지 감도 못 잡을 것이다. 이 말은 1960년대 에소(엑손) CF란다. 사랑의 도피자들은 에소의 경쟁사인 ‘토탈’ 주유소에서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개그도 누벨바그의 거대한 미학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그처럼, 장면을 꼼꼼히, 대사를 찬찬히, 살펴봐야할 것이다. 이 영화에는 ‘피에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마리안은 처음부터 남자를 피에로라 부르고, 그럴 때마다 남자는 “그런데, 난 페르디난이야.”라고 말한다.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르> 개봉 당시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을까. 시카고선타임즈의 그 유명한 고(故) 로저 에버트 평론가는 이 영화를 평하며 서두에 " 내가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리뷰할 때마다, 그의 영화를 싫어하는 독자들로부터 분노에 찬 편지를 받는다. 어떤 이들은 내 리뷰와 고다르가 함께 역사의 쓰레기더미에 내버려져야 한다고도 말한다. 관객들이 사기를 당했다는 항의도 있다. 가장 흔한 불만은 고다르가 “도무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며 "하지만, 고다르의 영화를 보면 답답하고 당혹스러운 경험이 될 수 있지만, 점점 고다르의 세계관에 빠져들고, 많이 접하다 보면 점점 더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였던 장 뤽 고다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위해 자신의 영화를 만든 것이다. 영화라는 것은 그렇게 사적인 미학이다. 그런 작품을 보며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의미일 것이다. ‘누벨바그 미학’에서 보자면 말이다.
▶미치광이 피에로 (원제:Pierrot le Fou) ▶감독: 장 뤽 고다르 ▶출연: 장 폴 벨몽도, 안나 카리나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개봉:2025년 6월 4일/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