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
지난 16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탄금>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미스터리 로맨스 사극이다. <탄금>은 장다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홍랑과 재이의 애틋한 로맨스를 기본으로 하고, 상단(商團)과 가문이라는 굴레, 그리고 미스터리한 대군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때는 조선시대. 팔도의 장사치들과 거래하는 거상인 민 상단의 단주는 심열국이지만, 실권은 아내 민연의에게 있다. 어렵게 얻은 아들, 홍랑은 어릴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홍랑보다 한 살 많은 누이, 재이는 구박을 받으며 살고 있다. 집안과 상단을 이어가기 위해 무진을 양자로 들인 상태. 홍랑이 사라진 뒤 12년 뒤, ‘홍랑’을 자처하는 인물이 홀연히 등장한다. 민연의는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기뻐하지만 심열국은 조금 의심스럽다. 어릴 적 우애가 깊었던 누이 재이는 그 자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자는 홍랑이 아니야!”란다. 홍랑은 어릴 적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렸단다. 그의 진짜 정체는? 그리고 왜 민 상단에 온 것일까.
이야기의 서두는 마치 <써머스비>(그리고 그 원작인 ‘마틴 기어의 귀환’)를 연상시킨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돌아왔는데, 과연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가. 아버지, 어머니는 의심하면서도 믿으려 하고, 믿으면서도 의심하기 시작한다. 몸에 난 상처, 부지불식간 나오는 행동과 말투가 더욱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 자는 단지 ‘민 상단’의 재산을 노린 사기꾼일까. 홍랑의 등장에 가장 기뻐해야할 재이는 계속하여 의심한다. 그리고 한 순간에 상단의 계승자 신분에서 구경꾼이 되어 버린 무진의 마음도 심란하다. 의심과 의혹, 그리고 사건 속에서 홍랑과 재이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놀랍게도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탄금
<탄금>은 초반부 ‘홍랑’의 정체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의 등장의 진짜 이유에 대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홍랑’은 어린 시절 유괴(납치)되었단다. 괴이한 사람에게 잡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당했던 것이다. 이제 홍랑은 그 사람을 찾아, 복수를 하려고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은 ‘근친상간’ 스토리와 ‘소아성애자’ 광인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과연 홍랑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심 상단의 패밀리 스토리. 전 단주에게는 딸(연의)만 있었고, 이재에 밝았던 심열국을 양자로 삼을 요량이었지만 연의의 수작으로 데릴사위를 삼는다. 열국과 연의 사이에 자식이 없어, ‘씨받이’를 들이는데 딸 재이를 낳은 것이다. 그 후 홍랑을 낳게 되지만 어릴 때 사라졌던 것이다. (연이는 아들 홍랑에게 광적으로 집착하지만, 아버지는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맞기는 하냐?”라는 대사가 나올 만큼 수상하다)
<탄금>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은 ‘한평대군’이다. 왕실 사람인 그는 은거하여 기이한 행각을 보인다. 온갖 나비를 잡아들이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심미안이 뛰어나고, 서화에 미친 우아한 문인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괴벽(怪癖)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한평대군이 지필묵에 집착하고 화폭에 광적으로 탐닉한 결과, 온갖 종이를 거쳐 옷감에, 가죽에, 그리고는 사람의 살가죽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가 사람 피부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생(生)화폭이 주는 따스한 느낌, 보드라운 감촉, 붓질에 반응하는 잔 근육, 촉촉이 배어나와 색감을 반전시키는 땀까지...” 그 과정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물론, 그 대상이 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된다. 한평대군이 ‘아이’를 잡아들이는 이유가 그랬다. 화폭으로 쓰일 흰 피부가 필수이고, 그림을 담을 만큼의 폭이 되어야하니 여인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죽 특유의 땀구멍을 최소화시켜하기 위해선 장성한 사내는 곤란하단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양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고, 죽어나갔던 것이다.
홍랑의 등'가죽'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소설에서는 ‘관능적 남녀의 환희와 절정의 순간이 담긴 춘화도로 천하의 걸작이며, 전대미문의 역작이라고 했다. 오늘날 ’타투‘의 조선(朝鮮)적 광(狂)미술인 셈이다.
탄금
’세상에 이런 일이‘ 류에는 사람의 피부(人皮)로 장정했다거나, 글씨를 새겼다는 책 이야기가 전해진다. 호기심에 더 찾아보면 ’천녀유혼‘의 원전이 되는 중국 청나라 포송령이 지은 기담모음집 <요재지이> 속 괴담 가운데 ’화피‘가 있다. 요괴가 사람 피부(껍질)를 뒤집어쓰고 요망한 짓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서장(西藏) 티베트의 종교이야기를 읽다보면 ’인피‘와 관련한 믿지 못할 이야기도 만나게 된다. 이런 이야기가 아마도 <탄금>의 상상력의 원천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과연 그는 ’홍랑‘이 맞는지, 왜 이 위험한 판에 뛰어들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밀당‘아닌 ’밀당‘을 펼치는 이재욱과 조보아, 그리고 그런 재이를 연모한 무진(정가람)의 감정의 흐름이 드라마를 이끄는 힘이다. 그 과정에서 ’데릴사위의 비애‘에서 일종의 ’쿠테타‘를 일으킨 셈인 심열국(박병은)의 노련미, 엄지원의 표독함이 상단과 가족의 비극성을 더한다. ’귀곡자‘를 연기한 박지아 배우는 이 작품이 유작이 되었다.
김홍선 감독은 TV드라마 <무사 백동수>, <보이스>, <손 the guest>, <루카:더 비기닝>를 거쳐 <종이의 집:공동경비구역>(넷플릭스), <미끼>(쿠팡플레이) 등 OTT에서 장르적 재미를 더하고 있다. <탄금>은 시청자가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와 ’스토리의 독창성‘, ’캐릭터의 매력 포인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다. 대신, 넷플릭스 윈도우를 통해 ’조선의 칼 액션‘은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듯.
참, 제목으로 쓰인 <탄금>. 처음엔 거문고(彈琴)를 연주하는 검객이야기인줄 알았다. ’呑金‘(금을 삼키다)이란다. 소설에서 심열국이 맹독을 마시고 죽어갈 때 잠깐 설명이 나온다. 그게 탄금형으로 죽는 거나 진배없다고. 탄금형은 고대 중국의 형벌로 배속이 금덩이로 가득 차서 장이 파열되고 다리가 부러져 일어설 수조차 없게 되고, 마지막엔 기혈이 모두 막혀 사지가 썩어 들어가는 형벌이라고 한다. 심열국은 일생토록 허겁지겁 금을 삼킨 것이란다. 그렇게 죽은 사람은? “죽고 나면 쩐에 환장한 사람들이 허겁지겁 달려들어 배를 가르고 서로 금덩이를 꺼내갖겠다고 야단법석을 뜰 거야..”란다. 제목으로만 보자면 홍랑과 재이의 애틋한 로맨스가 아니라 과욕에 대한 ’찬란한‘ 징벌이다.
▶탄금 (영제:Dear Hongrang) ▶원작: 장다혜 소설 [탄금: 금을 삼키다] ▶감독: 김홍선 ▶극본: 김진아 ▶출연: 이재욱(홍랑) 조보아(재이) 정가람(무진) 박병은(심열국) 엄지원(민연희) 박명훈(방지련) 최영우(육손) 김민기(인회) 박지아(귀곡자) 박미현(을분어멈) 서우진(어린홍랑) 김지율(어린재이) 기미찬(어린무진) 특별출연: 김재욱(한평대군) ▶제작: 스튜디오 드래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에이치하우스 ▶공동제작: 이오콘텐츠그룹 ▶제공:넷플릭스 ▶공개: 2025년 5월 16일(금)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