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파과>는 ‘킬러’라는 비현실적 직업군에 ‘노화’와 ‘유통기한’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화두를 던진다. 민규동 감독은 흠집 난 과일을 뜻하는 ‘파과(破果)’의 이미지를 빌려, 한때는 날카로운 ‘손톱’이었으나 이제는 부서지기 쉬운 존재가 된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혜영)의 삶을 유려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1975년 식모살이를 하던 소녀가 첫 살인을 저지르고 킬러로 길러지는 과거와, ‘신성방역’이라는 이름의 청부살인 업체에서 은퇴를 종용받는 현재를 교차시킨다. 지하철 빌런을 비녀 하나로 제압하는 노익장을 과시하지만, 조각은 어느새 자신을 ‘폐기물’ 취급하는 젊은 킬러들과 마주해야 하는 처지다. 이혜영 배우는 리암 니슨보다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류마티스 관념과 세월의 무게를 견디는 킬러의 고독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로 채워 넣는다.
작품은 ‘조각(爪角)’이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웠던 투쟁의 시간이 어떻게 무뎌지고 부서지는지를 응시한다. 단순히 악을 척결한다는 소명의식 이면에 숨겨진 개인의 상처와 상실감을 다루며, 액션 장르를 넘어선 서늘한 잔혹 동화를 완성한다. 흠집이 났다고 해서 과일의 단맛이 사라지지 않듯, 늙고 상처 입은 킬러의 심장 또한 여전히 뜨겁게 박동하고 있음을 영화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증명해 낸다.(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