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제주도에서 태어난 애순이는 평생 바다만 보고 살다가 죽을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런 애순에게는 환상적인, 비현실적인 양관식이 있었다. 그들의 딸 금명이는 뭍으로 간다. 아이유가 애순이와 금명이를 연기한다. 제주도 거친 바다바람을 씩씩하게 마주하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그렇게 진솔함과 성실함, 휴머니즘의 K-콘텐츠를 완성시킨 것이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전편이 공개된 뒤 아이유를 만나 애순이와 금명이의 삶을 물어보았다.
Q. 일단, 눈물연기가 어렵지 않았는지. 많이 운다.
▶아이유: “대본에 감정이 잘 쓰여 있었다. 몰입하기가 좋아서 눈물 흘리는 게 힘들지 않았다. 대신 그런 신들이 몰려 있을 때는 ‘액체의 총량’이란 게 있으니까 마음만큼 콸콸 안 나올 때가 있었다. 대본이 설득력이 있었다.”
Q. 가장 가슴이 아팠던 장면을 꼽으라면?
▶아이유: “나문희 선배님이 연기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이다. ‘내 새끼 다 만나고 간다’는 대사할 때. 뒤에 나오는 음악이 정미조 선배님의 ‘귀로’라는 곡인데 어쩌면 그 노래를 그 장면에 넣을 수 있을까. 대사와 함께 많이 울었었다. 아빠 돌아가셨을 때, 병실에서 ‘애순이 잘 부탁해’하는 장면도 그랬다. 현장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다시 봐도 슬펐다. (박해준) 선배의 마르신 모습이 생각났다. 선배는 아픈 신만 몰아서 찍은 게 아니다. 그제까지는 건장하셨다가, 이틀 만에 아픈 장면 찍을 때는 물 한모금 안 마시고 나왔다. 병실에서 그 모습만 봐도 슬퍼서 눈물이 났다.”
'폭싹 속았수다'
Q. 문소리 배우가 아이유 연기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다.
▶아이유: “두 사람이 한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기대되었고, 떨렸다.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선배님의 애순이만큼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선배님이 처음부터 편하게 다가와주셨다. 작업실에 놀려가서 다 여쭤봤다. 후배 입장에서 어려울 수 있는데 그걸 다 배려해주시더라. ‘이 부분이 잘 맞다’며 공통점도 찾아주시고. 선배가 그러니 저도 신이 나서 연기할 수 있었다. 인물에 접근할 때 대사를 읽어주시면 입체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장에서 선배님 만나면 금명이가 느껴졌고, 애순이도 느껴졌다.”
Q. 아빠를 연기한 박해준 배우.
▶아이유: “박해준 선배도 진짜 재밌는 분이시다. 현장에선 애순이와 금명이를 연기하다보니 정신이 멍해있고 넋이 나가있을 때가 많았다. 후반에 스케줄 몰리면 더 그랬다. 그때마다 해준 선배가 장난을 쳐주신다. 마른 흙에 물을 대어주시는 것 같은 선배의 마음을 알겠더라. 기운을 내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금명이로 아빠 관식을 대할 때는 몰입이 너무 잘 되었다. 다시 아버지와 딸로 만나고 싶은 선배이다. '사랑에 빠진 게 죄가 아니잖아' 하시던 분이 말이다. 현장에서 짜증날 만한데 늘 유머러스하게, 여유가 넘쳤다.”
Q. 처음 임상춘 작가의 대본을 보고 든 생각은?
▶아이유: “처음에 3부까지 대본을 봤었다. 초반 분량이 너무 좋았다. 3부 재회하는 신(양관식이 배에서 뛰어내려 방파제의 애순이에게 헤엄쳐 오는 장면)은 머리에서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느낌으로 읽었다. 둘이 끌어안고 힘들게 하는 대사가 애틋한 대사가 아니라 ‘나 옷값 물어내야 해’라고 말하고, ‘나 돈 있어, 나 돈 있어’하는 대사가. 그런 대사가 너무 절절했다가 유쾌했다. 그리고 또 사람을 울리는 것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살아 숨 쉬는 인물이라서 후반까지 재밌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인 2역이라는 부담감은 확실히 있었다. 그 지점이 욕심이 생겼다. 작가님이 절 믿어주신 것이니 무조건 작가님의 믿음에 보답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장에 막상 갔을 때는 보검씨의 눈이 저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부담이 있다가도 잊어버리게 한다. 맑고 순수한 눈이 몰입에 도움이 되었다.”
'폭싹 속았수다'
Q. 아이(동명이)를 잃고 오열한다.
▶아이유: “그 시퀀스는 이어지며 길게 촬영했었다. 감독님이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꼼꼼하게 따졌다. 촬영 준비가 다 되었어도 날이 너무 맑으면, 하늘이 파랗게 밝으면 촬영을 접었다. 실제 날이 흐린 날 찍었다. 진짜 태풍 같은 물벼락을 상상하면서 찍었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아이를 안고 찍었는데 그날 좀 추웠다. 아이 발을 주무르는데 아이 발이 차더라. 마을 주민이 다 나와 있는 설정이었다. 그 모든 것이 감정을 북받쳐 오르게 했다. 관식이는 오열하고. 대본에 '늘 울던 애순이는 울지 않는다. 무쇠가 무너진다'라고 쓰여 있었다. 제가 슬퍼지려 하면 감독님이 ‘지금은 울지 않는 장면입니다’고 피드백을 주더라. 관식이가 오열하는데. 섬세하게 짚어주셨다.”
Q. 아이 낳는 장면은?
▶아이유: “주위에 많이 물어봤다. 개인차가 많더라. 산통을 느끼는 정도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봤는데 다 다르더라. 그래서 이건 정해진 게 없구나. 대본에 쓰인 대로 충실하게 연기해야지 생각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니 대본에 충실해야겠다. 감독님(남자)도 출산 경험이 없다보니 ‘아이유가 하는 대로 해 보라고 했다.”
Q. 연기하면서 아이유의 경험이 투영되거나 말투가 삐져나온 게 있는지.
▶아이유: “금명이가 엄마 아빠한테 계속 짜증난다고 말한다. 그게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줘. 엄마 아빠도 힘들면서..'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고마워. 미안해. 최고야. 사랑해'가 담겨있는 '짜증나'이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다. 편찮으신데 잘해주거나 무리하면 짜증이 났던 것이다. 죄송하고 감사해요. 20대 초중반엔 그랬는데, 이젠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 딸이 되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그 마음을 아는 애순이와 관식이니 그들은 단 한번도 ‘짜증난다’는 말에 대해 리액션을 하지 않는다. 은명이에게 하듯이 막 하진 않는다. 동생도 이제 30대이니. 어렸을 땐 그랬겠지만”
Q. 내레이션이 많다.
▶아이유: “내레이션 작업만 두세 달 걸렸다. 마지막에 넷플릭스에 납품하기 직전까지 수정하는 작업이 있었다. 내레이션이 중요하다며 감독님이 세심하게 작업했다. 화자는 금명이다. 어린 시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보다 훨씬 이후일 것이다. 50대 이후일 수도 있는 시점에서 과거의 회상이다. 엄마 애순이가 죽은 뒤, 금명이가 회상하는 방식이다. 금명이지만 우리가 아는 금명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조금 낯선 톤이어야 한다. 이야기가 방대하다니 읽다보면 신나는 장면이 있어 밝아보이게, 엣지도 넣어보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다시 갑시다’라며 주지를 시켰다. 50대 이후의 모습을 그렇게 만들어갔다.”
Q. 명대사를 꼽자며.
▶아이유: “명대사가 너무 많다. '그들의 푸름을 다 먹고 내가 나무가 됐다'는 애순과 관식의 그 푸르른 모습을 연기했던 입장에서 더 와 닿았다. 또 금명이와 영범(이준영)이 헤어질 때 나오는 '둘만 있던 작은 행성에서 어린왕자가 떠나는 일이었다' 대사. 둘의 연애가 작품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았는데 이별 신만큼은 작가님께서 너무 자세하게 써주셔서 상상이 되었다.”
Q. 주위 사람들 감상평은 어땠는지.
▶아이유: “엄마는 내가 출연한 드라마나 음악에 대해 항상 상세한 피드백을 해주시는데 이번 작품에 대해선 피드백이 없다. 시청자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주행해서 네 번 봤다. 봐도봐도 재밌다고 하신다.”
Q. 아이유의 연기는 어디까지 성장할까.
▶아이유: “성장이라고 하기엔 모호하다. 이 작품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한 작품은 1년 동안 찍은 것은 처음이다. 꾸준히, 성실히 하려고 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매일 촬영장에 나갈 때 성실하게 나가고 태연하게 돌아오자고 결심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 그런 태도가 성장이라면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유
Q. 배우로서의 장점이 무엇인가.
▶아이유: “저는 맷집이 좋습니다. 맷집이 좋은 편이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부족하기에 현장에서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그래도, 좌절을 하더라도 회복하는 시간이 짧다. 그런 것을 맷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Q. <폭싹 속았수다>를 하면서 삶에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
▶아이유: “촬영이 다 끝나고 실감을 못했다. 애순이와 금명이를 품은 시간이 저의 성격을 변하게 한 것 같다. 멋있게 말이다. 인생에 시니컬 부분이 있었는데 <폭싹> 하고나서는 알게 모르게 인생을 좀 더 좋게, 낙관적으로 보는 태도가 생긴 것 같다. ‘애순이 관식이 정신으로!’대사를 달달 외고, 어떤 상황이 닥치면 임상춘 작가 시점으로 내레이션 한다. 그런 말투로, 시선으로 보게 되더라. 그래서 요즘 ‘너, 과몰입이 길다’는 소리를 듣는다.”
Q. 차기작은?
▶아이유: “내가 어떤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타이밍에 딱 맞춰 ‘캐릭터적’으로 들어오더라.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으면 그런 제안이 들어왔다. <폭싹 속았수다>도 그랬다. 3년 전인데. 그 때 하고 싶었던 것은 ‘다해 먹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가 들어온 것이었다. 이건 다해먹잖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차기작 <대군부인>도 그렇다. 금명이, 애순이는 울보였다. 둘이 많이 울고, 감정이 많은 캐릭터였다. ‘대군부인’은 울지를 않는다. 마음속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는 모양이다. 또 다른 강인한 느낌의 인물이다. 결핍이 있다.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김원석 감독이 “조부모와 부모세대에 바치는 헌사”라고 말한 <폭싹 속았수다>에 대해 아이유는 “다음세대를 위한 다리이자, 새봄이 세대가 반드시 봐야할 이야기”라고 했다. 새봄은 금명이와 충섭이의 딸이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