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감독
<암살>, <신과 함께 죄와 벌>,<신과 함께 인과 연> 등 ‘천만’영화 3편을 포함 수많은 흥행작품에 출연했던 배우 하정우는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에 이어 10년만에 다시 감독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골프 필드에서 벌어지는 절박한 로비 플레이를 다룬 블랙코미디이다. 영화에 대한 열정, 감독에 대한 야망, 코믹 본능을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하정우 감독을 만나 ‘로비’와 인간 하정우에 대해 들어보았다. 하정우는 <로비> 언론시사회 전날 수술실에 실려갔다. ‘맹장’이 터진 것(급성 충수돌기염)이다.
Q. 수술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홍보를 위해 뛰고 있다. 상태는?
▶하정우 감독: “몸은 잘 회복되고 있다. 금요일 퇴원했다. 그날 저녁 GV는 야심차게 준비한 것이라 빠질 수가 없었다. 아픈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진통제 맞고 몽롱한 상태였다. 31일에는 VIP시사회가 있었다. 긍정적인 평이 많았다. 리뷰도 그렇고. 기분이 좋았다.”
Q. <롤러코스트>, <허삼관> 이후 세 번째 감독 작품이다. 세 번째 연출 작품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하정우 감독: “중간에 <서울타임즈>라는 작품을 준비했었다. 2018년 무렵부터 시작하여 시나리오 3고까지 집필했었다. ‘이게 내가 진짜 잘 할 수 있는 작품인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기다려보자고 시간을 갖다가 2021년부터 <로비>를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 처음 골프를 배우고 필드에 나갔었는데 그 때 이런 배경, 환경, 사람들을 잘 묶으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때부터 준비를 했다.”
Q. 하정우가 골프장에서 본 것은 어떤 모습인지.
▶하정우 감독: “라운딩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가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비나 접대를 떠나서 말이다. 필드에 오르기 전에 아침 밥 먹으면서 하는 말이 다 똑같다. ‘오늘 몸이 안좋다’, ‘근육통이다’, ‘감기 걸렸다’, ‘공이 잘 맞을지 모르겠다’면서 서로 밑밥을 많이 깐다. 그런데 티오프 시작하면 정말 열심히들 하신다. 다른 사람이 잘 치면.. 음. 나중에 이야기 할게요.” (하하하) “평소 인품이 좋던 사람이 ‘저런 면모도 있었나?’ 그런 이상한 상황을 많이 보게 되더라. 온순한 사람이 거칠어지고, 상남자가 소녀 같이 공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이면을 보게 되었고, 그런 캐릭터가 코미디 같다고 생각되었다. ‘나이스 샷’하고 외치지만 말이다. 비즈니스로 일할 때는 잘 숨겨지는데, 골프장에선 그런 속내가 스멀스멀 나오더라. 나이를 다 떠나서 말이다. 내가 20대에서 70대까지 다 쳐봤는데 다 똑같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즐겼다면 그런 문화 쇼크가 없었을 텐데. 사회경험하고, 나이먹고 골프장에 갔더니 그런 독특한, 흥미로운 지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극중 창욱은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이다. 자기 회사가 개발한 첨단IT서비스를 위해 마지못해 로비 전선에 뛰어든다.
▶하정우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무선충전시스템’이다. 친구 중에 공무원이 있는데 그 친구에게 들은 것이다. 그 친구가 골프와 로비 접촉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캐물었다. ‘무선충전시스템’ 같은 신기술은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 되지 않을까. 흥미로워서 <로비>에 접목시킨 것이다.”
Q. 건설교통부의 실세 관료인 최 실장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의성의 뛰어난 연기로 이른바 전형적인 ‘개저씨’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하정우 감독: “골프를 떠나 여러 매체에서, 주변 사람들을 통해 만나본 최악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짬뽕’시킨 것이다. 재수 없고, 보고 싶지 않은 것. 그런데 자기만 그런 걸 모르고 있는 최악의 경우이다. 자신은 나이스하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매력적인 아저씨라고 여기는 것이다. 반대편에서 보자면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 없고,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MSG 네 스푼 정도 넣어만든 캐릭터이다.”
Q. 강말금 배우는 하정우 감독이 대본 리딩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하정우 감독: “감독마다 특징이 있다. 17년 전에 홍상수 감독 작품에 출연했을 때 감독님은 아침에 그날 찍을 시나리오를 주는게 너무 신기했었다. 왜 촬영하기 1시간 전에 줄까. 촬영 끝나고 한번 물어봤다. 불만은 아니고, 이유를 알고 싶다고. 제 기억으로는 감독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원하는대로 메시지가 올곧이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배우가 캐릭터를 컨트롤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란 것이다. 저는 그렇게까지는 가혹하게 하지 않았다. 리딩하면서 애드리브도 하고, 대사도 만들고, 상황도 만들어 갔다. 촬영 전에 그런 것이 이뤄지를 원한다고 미리 말했다. 그래서 리딩하는 시간이 많았다. 몇몇 배우들과 ‘신 바인 신’으로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그렇게 하면 촬영 들어가서 올곧이 담을 수가 있다. 내가 연기까지 해야하니 디렉션을 할 겨를도 없다. 콘티에 맞춰 최대한 집중해서 찍었다.”
Q. 강말금 배우는 감독이 촬영 때 뜻밖의 봉투로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는데.
▶하정우 감독: “배우들에게 작은 성의를 표현한 것이다. 때로는 3만원에서 5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나 백화점 상품권을 넣고, 어떤 날은 달러, 어떤 날은 엔화를 드렸다. 작은 재미를 드리고 싶었다. 주연배우들이야 그런 것이 귀여운 수준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조단역이나 알바 하시다가 오신 분에게는 차바에라도 보태드리고 싶어서 시작했던 이벤트이다.”
Q. 김의성 배우는 하정와 유머 코드가 자신과는 안 맞다고, 너무 ‘하이’라고 평했다.
▶하정우 감독: “유머에는 타이밍과 템포가 중요하다. <롤러코스터>에서는 김우일 편집기사와 같이 편집을 했었다. 그 때는 제 템포를 올곧이 다 썼다. 찍고나서, 몇 년 뒤, 그리고 최근 다시 봤는데 너무 나 혼자만 즐기려고 찍은 영화같았다. <허삼관>도 그랬다. 이번엔 김상범 편집감독에게 전체적인 템포를 봐달라고 그랬다. 나는 현장에서 편집본을 많이 보는 편인데 그렇게 보다보니 템포 간격이 점점 빨라지더라. 현장에는 현장편집기사가 만들고, 편집실에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조율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다.”
Q. 이번 영화에서도 대사의 타이밍이 영화적 재미를 더했다. 말맛이 살아있는 영화이다.
▶하정우 감독: “의외로 심플한 것 같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표정하다. 흔히 보는 콘텐츠 속 연예인들의 표현이 많은 것이지 일반 사람은 무표정에 가깝다. 그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말은 빨리 한다. 그 두 가지가 중요하고 흥미롭다.”
Q. 극중 창욱은 표정이 거의 없다.
▶하정우 감독: “이 영화는 드라마다. 그래서 그런 연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SNL코리아’ 녹화가 있었는데 계속 ‘연기를 더 해달라’고 하더라. ‘좀 더 당황하고, 좀 더 불편한 연기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그런 연기표현법이 있을 것이다. 나도 최선을 다해 그에 맞추기는 했지만 제가 추구하는 표현법이랑 다르다. <로비>에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연기가 다 들어있다. 작품마다, 감독마다 디렉션 방식이 다르다. 촬영장에서는 맞춰주는 게 배우의 임무이기도 하다.”
Q. 진 프로를 연기한 강해림에 대해서.
▶하정우 감독: “그 역할이 가장 어려운 캐스팅이었다. 제일 먼저 찾아야했다. 골프 훈련을 해야하니. 강해림 배우에게는 처음부터 골프 폼이 좋아야한다고 했다. 화술이나 감정 표현을 너무 잘하며 작품에서 튈 것이다. 이 역할은 배우들의 앙상블 속에 들어와서는 ‘운동선수’, ‘일반인’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 의도는 완전 생짜였다. 연기표현력이 없는, 날 것이었으면 했다. 강해림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아직은 일반적인 이미지를 가진, 진 프로의 모습과 잘 어울리릴 것이라고 보았다. 그에 비해 최시원이 연기하는 마태수는 가장 연예인같은, 셀럽같은 느낌이 들기를 바랐다. 보면 아슬아슬하다. <롤러코스터> 때도 그런 배우를 원했었다. 고성희가 그런 식으로 일본어 승무원 역할로 바뀐 것이다.”
Q. 조카로 나오는 엄하늘은 어떤가. ‘일반인’스러운 배우를 원한 것인가?
▶하정우 감독: “조감독이 추천했다. 장례식장에 잠깐 등장한느 단역이었다. 연기영상 보는데 깜짝 놀랐다. 이 친구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도 않았는데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무슨 작품에 나왔는지 궁금했다. 단편에 출연했더라. 물어보니 단편감독도 하고, 연기도 하고, 소설도 쓰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보석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스팅하고는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그 분량을 늘렸다. 김 이사(곽선영)랑 같이 다니면 신선한 느낌이 들 것이다. 영화에서 키를 쥔, 구세주 같은 인물로 세팅했다.”
Q. 감독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감독으로부터 감독수업을 받은 셈이다. 구체적으로 밝힌다면.
▶하정우 감독: “영향받은 게 엄청 많다. 최동훈 감독은 배우를 대게 사랑한다. 좋은 감독들은 본인이 만든 캐릭터의 배우를 좋아한다. 꼼꼼하게 배우를 기억해서 그 캐릭터에 녹여낸다. 옆에서 봐왔기에 그런 마음을 가져야겠고 생각했다. 액션은 류승완 감독에게 배운 게 있다. 이 영화에도 액션이 있다. (골프)카트 체이싱이 10회차 정도 있었다. 최시원이 액션을 펼치는데 (편집과정에서) 많이 뺐다. 류승완 감독은 액션 씬 찍을 때 정말 날아다닌다. 정말 효율적으로 찍는다. 10회 차(분량)를 3회차에 끝낸다. <베를린>때 그랬다. 나도 나중에 액션 씬 찍을 때는 저렇게 찍어야지 생각했다. 무리하게 강요하는 게 아니다. 무술팀 데리고 다 시킨다. 위험한지 아닌지 본다. 배우들은 그 컷에 꼭 필요한 부분만 찍는다. 안전도 다 보장이 된다. 나홍진 감독은 프리 프로덕션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콘티를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해야하는지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윤종빈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 시나리오 단계에서 프리 프로덕션, 후반작업을 다 경험했다. 영화 찍으면서 비슷한 영감을 받은 것 같다. 그런 가르침과 디렉션을 준 친구는 윤종빈 감독인 것 같다. 김용화 감독은 현장에서 디렉션하는 방법을 배웠다. 저는 책상에서 연출을 배운 게 아니라 훌륭한 감독 옆에서, 뒤에서, 어깨 너머로 서당개처럼, 현장에서 다 배웠다.“ (그렇게 다 배운 하정우의 감독으로서의 장점은?) ”그걸 다 경험해서 다 제 것으로 만들었다. “ (하하하)
Q. 마지막에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정우 감독: “영화 <바빌론>을 나중에 봤는데 마고 로비 토하는 것 보고 놀랐다. 좀더 많이 토해 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 진프로가 최실장에 대해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왔던 피로도를 생각하면. 관객들을 뒤엎을만한 반전의 카타르시스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은 저에겐 중요한 포인트이다. 클라이막스이다. 진프로가 토하고, 토한 뒤 쏟아내는 말들의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재촬영을 두 번 했다. 강배우가 잘 따라와 줬다. 그 배우에게 더 남은 게 없을까, 피크에 이른 감정이 없을까. 더 보고 싶었다.”
하정우 감독
Q. 김의성 배우는
▶하정우 감독: “실제로 김의성 배우는 20대를 연기하든 30대를 연기하든 다 어울리는 배우이다. 본인이 맡은 역할이 재수없고 더럽다는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살아온 스펙트럼이 넓어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비호감으로 보일지, 더러워 보일지 잘 아는 것 같다. 누구보다도 영화적으로 잘 표현할 것이라고 믿었다.”
Q. 세 번째 감독 작품이 개봉되는 소감은.
▶하정우 감독: “나라가 이렇게 뒤숭숭한데 이럴 때 개봉해서 어떡하냐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자연의 흐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개봉시기를 저 혼자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하다보니 이렇게 운 좋게 투자를 받고, 제작을 하게 되었다. 지금 또 다른 작품(<윗집 사람들>) 찍고, 후반작업 하고 있다. 예전 작품을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잘 될 작품은 아닌데, 더 잘 될 수 있는 작품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게 있다. 경력이 늘고 작품이 쌓이면서 돌이켜보니 매 작품을 열심히 하고 홍보했던 것 같다. 넓고, 크게 보면 내 마음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4월 2일 개봉일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있을까. 컵에 물이 차면 넘치고, 궁하면 통하는 게 이치이니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할 것 같다.”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홍보한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유튜브 채너, 공중팡, SNL코리아까지 다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하겠다고 나선 부분이니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맥시멈으로 다할 것이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는 평가를 받으며서, 참고해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조금 다행스러운 것은 그동안 조금은 쿨해진 것 같다.“
Q.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정우 감독: “비밀이고요. 주위에서 너무 많이 이야기하니. 결혼하는 것이 좋다. 르브론이 아들과 코트에서 농구하는게 보기 좋다. 우리 엄마가 르브론 팬이다. 그래서 영화에도 등장한다. 결혼에 대해서는 하루가 다르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비혼이나 싱글로 살겠다 이런 것은 없다.”
Q. 세 번째 작품을 연출하면서 본인의 연출 스타일이 정해졌는가.
▶하정우 감독: “이 작품은 <롤러코스터>와 <허삼관>과는 너무나 다르다. 하지만 하다보니 블랙코미디이다. <롤러코스터>로 가느냐 <허삼관>으로 가느냐. 이제 확신이 든다. <윗집 사람들> 찍을 때 확실히 이렇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밀도를 높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찍었따. <로비>는 감독 하정우의 노선이 정해졌다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다.”
“<로비>는 재밌는 작품이다. 와서 웃고 갔으면 좋겠다. 낯설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 <롤러코스터> 같은게 있었으니 설명하기도 쉬워졌다. 코드가 맞으면 재밌게 즐기고 가세요. 영화는 감독에겐 하나하나 다 의미 있고 소중하지만 시청자나 관객에겐 그냥 소비되는 것이니. 재밌게 봐주셨으면 고마울 뿐이다.”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