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조훈현과 이창호, 한국 바둑사의 전설적인 두 거장이 펼치는 <승부>는 바둑판이라는 좁은 공간 위에서 벌어지는 가장 정적이고도 치열한 심리 전쟁을 다룬다. 영화는 스승 조훈현(이병헌)이 전주의 바둑 신동 이창호(유아인/김강훈)를 제자로 거두어 정점에 올려놓기까지의 과정과, 어느덧 자신을 위협할 만큼 거대하게 성장한 제자를 마주하며 겪는 복잡미묘한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
김형주 감독은 바둑을 모르는 관객이라도 두 승부사가 나누는 기세와 수 싸움의 긴장감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정공법의 연출을 택했다. 특히 이병헌은 한국 바둑의 전성기를 이끈 조훈현의 화려한 천재성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를 명불허전의 연기로 증명한다. 제자 이창호의 성장이 기쁘면서도,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직감하는 스승의 낭패감은 영화 전반을 흐르는 묵직한 감정의 줄기가 된다.
영화는 단순히 이기고 지는 승패를 넘어, 스승의 가르침을 오롯이 흡수하면서도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로 스승을 넘어선 제자의 '바둑판 위 쿠데타'를 담백하게 응시한다. 흑과 백의 돌이 하나씩 놓일 때마다 구축되는 집과 왕국,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지략의 예술은 바둑이라는 종목이 가진 품격을 영화적으로 승화시킨다. 우리가 이미 그 승부의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장면에 압도되는 이유는 그것이 한 시대의 종언이자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숭고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승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두 남자의 고독한 기록이다. 제자는 이겨도 기쁘지 않고 스승은 져도 마뜩찮은 그 기묘한 숙명의 대결 속에서, 관객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 놓인 자신의 돌을 되돌아보게 된다. (박재환영화리뷰.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