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이 누구의 땅인지 알아야할 것 같다. 적어도 1945년 이후엔 이스라엘 사람이 지배하고 있다. 그 전엔? 오스만 제국이, 그 전전엔? 페르시아와 칼리파가, 그리고 그 전전전엔 로마인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영유권을 확인해야할까. 그런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누가 먼저 살았느냐는 관점보단 그곳에 무엇이 있느냐로 싸운다.
이스라엘 솔로몬 왕이 만든 성전 터에 세운 통곡의 벽이 있기에 유대교의 성지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이슬람 선지자 마호메트가 승천했다는 곳에 세운 사원이 이곳에 있으니 이슬람으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예수가 묻히고 부활했다는 곳에 건립한 성묘교회와 그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도 이곳에 있다. 자, 누구 땅인가. UN이 선을 긋기 전에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 이어졌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1187년, 이곳에서 벌어진 전쟁을 다룬다. 유대인-로마인-이슬람인 등이 차례로 차지했던 이곳은 십자군 전쟁의 결과 십자가를 높이 세운다. 하지만 당연히 그 십자가는 곧 끌어내려질 것이다.
대장장이 발리앙, 성전에 나서다.
1184년 프랑스 땅, 십자군 전쟁에 한 차례 나섰던 대장장이 발리앙(올랜도 블룸)은 지금 슬픔에 사로잡혔다. 아이를 사산한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 발리앙 앞에 나타난 십자군 기사 고드프리(리암 니슨)는 자신이 아버지라며 함께 성전에 나서자고 말한다. 그렇게 발리앙은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물론, ‘오디세이의 모험’처럼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 예루살렘은 현재 한센병을 앓고 있는 보두앵 4세(에드워드 노튼)가 이슬람과 위태위태한 평화관계를 유지 중이다. 그의 죽음을 앞두고 뤼지냥의 기(Guy de Lusignan,마튼 초카스)는 르노 드 샤티용(Raynald of Châtillon, 브렌단 글리슨)과 손잡고 호시탐탐 일전을 치를 생각뿐이다. 발리앙은 보두앵의 누이인 시빌라(에바 그린)와 가까워진다. 집결하는 템플기사단과 점증하는 위험들. 1187년 결국 기와 르노가 불을 지핀 성전기사단은 무슬림을 습격하고, 분노의 살라딘(가산 마소드)은 르노의 케락을 함락하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한다. 이제, 예루살렘의 인간과 그들의 신을 수호하기 위해 처참한 공성전이 시작된다. 누가 이기든, 한쪽은 노예가 되거나 몰살당할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곽엔 또 다른 깃발과 그들의 성물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 ‘에일리언’, ‘마션’, ‘블레이드 러너’, ‘글래디에이터’ 등 못 만드는 장르가 없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05년 내놓은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은 개봉당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역사물이며, 종교물일 수밖에 없는 십자군전쟁과 이슬람과의 충돌을 그리기에는 스크린이 작든지, 러닝 타임이 짧든지, 관객의 역사이해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여하튼 또 다른 의미의 ‘문제적’ 작품으로 남아있던 이 영화는 이른바 감독판(디렉터스컷)이 나오면서 사라진 퍼즐이 완성되었고, 코로나 극장가에 다행히 대형 화면에서 재개봉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영화는 이전 판본에 비해 50여분이 늘어난 190분에 이른다. 성전에 나서려는 기독교인들의 어리석음과 전쟁의 어리석음을 잘 아는 이슬람의 술수가 덧붙여지면서 이야기의 완결성을 가져온다. 아마도, 911테러의 여파로 한쪽이 완전한 악당이기를 바라는 당시 관객에게는 불편한 이야기였을지 모른다. 십자군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이념(종교가 이념이라면) 전쟁이었는지 확인해 주니까 말이다.
물론,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느슨하게 재현했을 뿐이다. 이블린의 발레앙도, 시빌라도, 보드앵도, 기도 모두 실존했던 인물이다. 엄청난 공성전 끝에 화평회의가 이뤄졌다는 것은 영화적 결말일 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그러면서 모든 것일 수밖에 없는, ‘십자가를 꽂을’ 한 뼘 땅을 지키기 위해 성스러운 전쟁을 치러야했던 그들에게 무슨 세속적인 희망이 있으리오. 2020년 11월 11일 재개봉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