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금기백, 애진아 감독의 <힘내라 대한민국>은 제목부터 정치적 신념을 명확히 드러낸다. 해방 전후의 좌우 대립만큼이나 첨예한 진영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 정치적 논쟁은 여의도를 넘어 아스팔트 위에서, 그리고 이제는 극장가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거에도 선거철이나 대형 이슈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 때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종종 등장했다. 주로 진보진영에서 만든 작품들이 내걸리던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 보수 진영에서도 적극적으로 극장용 영화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의외의 흥행 성공을 거둔 이후 영화란 매체가 더 이상 단순한 오락거리나 역사기록이 아니라 진영 싸움에서 심리적 ‘깃발’의 역할을 하게 된 듯하다.
<힘내라 대한민국>의 포스터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을 적극 옹호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임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현직(직무정지) 대통령을 다룬 영화가 이처럼 서둘러 제작될 수 있다는 점은 기이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개인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이렇게까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 12월 3일을 기점으로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 영화는 단순한 옹호를 넘어 진영의 깃발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영화는 보수 진영이 느끼는 현재의 위기의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힘내라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를 말한다.
영화는 대량의 흑백 영상자료를 활용해 해방 직후 한반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한다. 서두에 등장하는 인물은 박헌영이다. 1920년대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된 박헌영의 일화를 다루며, 그가 감옥에서 정신병을 연기해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이후 그는 공산주의 운동의 맹주로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을 벌인다고 소개한다. 영화는 남로당의 지령 아래 한반도 남쪽에서 벌어진 무장 투쟁을 언급한다. 제주 4·3 사건, 여순 반란 사건, 한국전쟁 등 현대사 주요사건들을 다룬다. 이승만 정권을 거쳐 박정희 시대에 이르기까지 1968년 김신조 사건과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까지 소개한다. 이어 버마(미얀마) 폭탄테러,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 천안함도 언급된다. 결국 <힘내라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그 이후의 현대사를 통해 ‘공산세력에 의한’ 위기들'과 , 보수 진영이 이뤄온 업적을 되짚으며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강조한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영화적 완성도는 아쉬운 점이 많다. 역사적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나열하면서 내러티브의 흐름이 일관되지 않아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자료 영상이 대부분 유튜브에서 가져온 듯하다. 블로우업된 화면들이 조악하게 처리된 점이 영화적 경험을 저해한다. 특히 내레이션이 감정적이고 과장된 톤을 유지하면서, 설득력보다는 일방적 주장에 가깝게 들리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는 객관적인 자료 제시와 함께 논리적인 전개가 중요할 것인데 이 영화는 지나치게 감정적 호소에 의존한다.
영화에는 여당의 주요 정치지도자와 함께 전광훈, 전한길, 황교안 등 우파 인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 광화문 시위현장의 대형 전광판에 잠깐 등장하는 광고 하나가 인상적이다. 이런 PPL(간접광고)은 정치적 메시지를 강조하려는 영화와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
<힘내라 대한민국>은 확실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런 목적성을 띤 영화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보다 정제된 연출과 설득력 있는 서사가 필요할 것이다. 정치적 논쟁이 극장까지 확장된 지금, 진영을 가리지 않고 이런 영화들이 계속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구호로 자기편의 환호를 이끌어 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소통하고, 설득 시키려면 좀 더 정치(精緻)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작금의 대한민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황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힘내라 대한민국 ▶감독: 금기백, 애진아 ▶등장: 윤석열 ▶나레이터: 최윤슬 ▶제작사: 영화사 아리랑 ▶배급사:주식회사 킨스튜디오 ▶개봉: 2025년 2월 27일/115분/12세이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