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캐니언
지난 밸런타인데이에 애플TV+를 통해 공개된 <더 캐니언>은 마일즈 텔러와 안야 테일러조이라는 화려한 조합만으로도 시선을 붙드는 작품이다. ‘협곡’이라는 고립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밀리터리 액션과 동서 냉전의 음모론, 그리고 기괴한 크리처물이 뒤섞인 기발한 장르 변주곡이다. 스콧 데릭슨 감독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보여준 시각적 상상력과 호러 장르에서 다진 긴장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관객을 거대한 협곡의 비밀 속으로 몰아넣는다.
미국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최정예 스나이퍼, 레비 케인(마일즈 텔러)과 드라사(안야 테일러조이)는 협곡을 사이에 둔 감시탑에 배치된다. 무엇을 감시하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경계하던 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고립된 공간에서의 동지애를 넘어 로맨틱한 기류를 형성한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정체불명의 괴생물체들이 이들을 습격하며 영화는 본격적인 서바이벌 액션으로 전환된다. 과거 냉전 시대의 비밀 생화학 실험이 낳은 비극적 결과물이 협곡 밑바닥에서 좀비처럼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스나이퍼의 정교한 사격술부터 변종 크리처와의 처절한 사투까지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배우들의 전작을 오마주한 듯한 장치들은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안야 테일러조이의 체스판과 마일즈 텔러의 리드미컬한 감각은 <퀸스 갬빗>과 <위플래쉬>를 사랑한 팬들에게 선사하는 깜짝 선물 같다. 여기에 시거니 위버가 가세하며 무게감을 더한 이 작품은, 국가 권력의 비정한 비밀과 그 속에서 피어난 생존 본능을 효과적으로 엮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묵직한 긴장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밸런타인데이의 의외성 넘치는 수확이다. (박재환.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