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아이돌 출신인 진영(BIA4)과 다현(트와이스)이 주연을 맡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대만영화(那些年,我們一起追的女孩,2011)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최근 ‘청설’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잇달아 개봉되며 ‘대만영화 붐’이라도 인 것 같다. 대만 오리지널은 1994년 대만의 소도시 창화현의 고등학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한국판은 2002년 강원도 춘천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다. 어떤 역사적 공통점, 혹은 청춘의 공감이 있을까.
봉의산 기슭의 ‘동춘천고등학교’(실제 그런 학교는 없다) 거리엔 ‘Be the Reds!’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보인다. 월드컵 분위기이다. 그 시절, 그 또래 학생은 비슷하다. 대학진학에 목숨을 걸거나, 도색잡지에 탐닉하거나, 꿈도 없이 책상만 지키는 학생들이 섞여있다. 그렇게 교실 안 풍경, 학생들의 사정을 훑어가더니 어느새 3학년이 된다. 이제 수능점수가 그들의 나머지 인생을 재단할 것이라는 중압감 속에 더 열심히 공부하거나, 더 가열차게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 눈부신 청춘의 한 때가 동춘천고등학교 3학년 1반 교실에서 찬란하게 펼쳐진다.
2011년 만들어진 대만영화는 커천둥(柯震東)과 천옌시(陳妍希)라는 눈부신 청춘스타의 빛나는 연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대만은 오랜 계엄령에서 벗어나서 민주화로 들끓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학교모습은 한국과 유사하다. ‘교련 선생’과 ‘사랑의 매’가 위력을 발휘하던 시절 말이다. 당시 학생은 자율‘이나 ‘아름다운 꿈’보다는 합격과 (어쩌면) 연애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 암울한 교실이데아 속에서 우리들의 우정과 화려한 인생이 펼쳐진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대만영화는 그 시절의 공통의 기억과 애틋한 사랑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영화팬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한국 리메이크 작품은 원작을 적당히 ‘한국화’한 게으른 모습을 노정시킨다. 마치 타이베이와 창화현의 거리만큼 적당하게 선택한 춘천이란 배경이 그러하다. (춘천 사람이라면) 알만한 공지천이나 소양강댐이나 하다못해 남이섬의 추억을 녹여내지 못한다. 많은 인상적인 영화는 배경이라도 남는데 말이다. 나머지는 어느 교실에서나 있(었)음직한 모습이다. 예쁜 여학생, 책만 들여다보는 학생, 악동 남학생, ‘국영수’에 밀려 한탄만 하는 선생님 같은. 어쨌든 그 시절은 총알같이 지나갈 것이고 이제 대학에 간 사람, 안 간 사람, 못 간 사람이 또 다른 청춘을 보낼 차례이다. 그들의 인연은 이어지거나, 새롭게 펼쳐지거나, 꼬이거나, 서서히 잊히며 인연이 끝날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제목부터 순정적이다. 그런데 사실 그 안의 이야기는 인생의 총합, 우주의 총질량을 담고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첫사랑의 설렘이나 껍질을 깨는 아픔, 혹은 고향을 떠나는 의미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멀리는 <여고졸업반>(임예진 주연,1975)이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정서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상의 눈물>이나 <말죽거리 잔혹사>, <친구>같은 어두운 기억이 아니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교실에서 펼쳐지는 한 장면은 눈을 찌푸리게 만든다. 순수한 영화의 감흥을 반감시키고, 시대의 공감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느낌을 준다.
다현은 교실의 꽃이며, 누군가의 목표이며, 인생의 개척자인 오선아를, 진영은 꿈이 없는 듯 교실과 운동장을 헤매다 자신의 길을 찾는 구진우를 연기한다. 박성웅은 오리지널 대만영화의 한없이 ‘가벼운’ 무게감을 오롯이 혼자 짊어진다. 청춘의 한 시절을 지나갔다. 자, 이제 책을 펼쳐라. 입시 ‘D- 262일’이란다.
참, 대만 영화는 일본을 시작으로, 태국, 말레이시아, 한국에서 리메이크된 인기 콘텐츠/IP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감독:조영명 ▶출연: 진영, 김다현, 박성웅, 이선민, 신기루 ▶원작:구파도 ▶제작: ㈜영화사테이크 ㈜자유로픽쳐스 ▶배급: CJ CGV, ㈜위지윅스튜디오 ▶개봉:2025년 2월 21일/12세이상관람가/10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