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에서 개봉된 대만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원제:不能說的秘密)은 대만영화의 존재감과 주걸륜(周杰倫,Jay Chou)의 천재적 음악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주걸륜은 이 영화에서 주연과 함께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물론, 피아노 연주도 직접 했다. 그는 3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모차르트’였다.
대만판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예술고등학교로 전학 온 상륜(주걸륜)이 캠퍼스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소리에 이끌려 연습실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한 여학생(샤오위)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인연, 운명의 사랑을 담고 있다. 그 여학생은 누구이며, 그 피아노 연주곡은 무엇일까. 관객들은 치기어린 피아노 배틀과 그림 같은 대만(신베이의 딴수이) 풍광, 그리고 주걸륜-계륜미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게 만들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 당연히 주걸륜의 풍부한 음악성과 스타성, 계륜미의 청순한 매력을 누가 되살리며 그 미스터리한 감성, 판타지한 로맨스를 어떤 식으로 복제할 수 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영화는 오리지널 감성에 충실하다. 그리고, 한국적 로맨스와 드라마의 폭을 확장한다. 과연 ‘대학생’ 도경수와 원진아는 시간을 따라잡고, 오리지널 아우라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유준(도경수)은 콩쿠르의 꿈을 접고 독일에서 귀국한다. 음대 수업을 듣고 나오는 길에 낡은 연습실에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그 운명의 문을 연다. 그리고 피아노 앞의 정아(원진아)와 눈이 딱 마주친다. 이제부터 운명적 사랑에 빠진 듯 유준에게만 정아가 보인다. 강의도 자주 빠지는 이상한 아이지만 왠지 신경이 쓰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쇼팽과 슈바인스학세’의 시간이 지나면서 정아를 처음 보았던 그 강의동이 철거된단다. 자꾸만 사라지고, 정체가 의심스러운, 이상한 소리를 하던 정아의 비밀을 그제야 알게 된다. 유준은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는다. 늦기 전에, 어긋나기 전에, 더 빨리, 알레그로시모로!
역시 오리지널의 아우라와 클래식의 감성은 뛰어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타이베이101빌딩이 아니라 딴수이의 한 고풍스러운 학교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이 일상의 풍광으로 그려지는 그 때의 감성을 따라잡기에는 LP판 사운드의 <매일 그대와>만으로는 따라잡기가 어렵다. 도경수와 원진아라는 좋은 배우가 꽤 괜찮은 연기를 펼치지만 딱 거기까지인 듯하다. 대신, 남녀주인공의 케미가 아니라 도경수-배성우 부자(父子)지간 코미디가 더 눈에 띈다. 배성우의 뜬금없는 ‘유부녀’와 ‘고정간첩’ 이야기는 음표로만 가득한 이 영화에 웃음 한 스푼을 더한다.
감독은 병약한 이미지의 계륜미 대신 진취적 원진아를, 애매한 미스터리 대신 맥락의 인연을 보강했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핵심은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인 것이다. 만약, 그 곡을 느리게 연주하면 어떻게 될까. 차라리 그렇게 리메이크했다면.... 그래도, 오랜만에 피처폰 감성과 LP적 정서를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아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OTT에서 오리지널을 다시 한 번 더 찾아볼 것 같다. 클래식은 영원하고, 비밀은 가슴에 묻어둬야 매력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감독:서유민 ▶출연:도경수(유준) 원진아 신예은 배성우 강말금 ▶제작: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개봉:2025년1월28일/103분/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