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라투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 F.W. 무르나우의 1922년작 <노스페라투>가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할리우드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더 위치>, <라이트하우스>를 통해 탐미적이고 고딕적인 공포를 선보여온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 뿌리를 둔 이 전설적인 뱀파이어를 2025년의 스크린으로 소환했다.
영화는 초자연적 존재와 감응하는 소녀 엘렌(릴리 로즈 뎁)의 모습으로 포문을 연다. 1838년 독일 비스보르그를 배경으로, 부동산 중개인 토마스 후터(니콜라스 홀트)가 올록 백작(빌 스카르스고르드)과의 계약을 위해 트란실바니아의 고성으로 떠나며 비극은 시작된다. 몽롱한 상태에서 계약서에 서명한 후 유폐된 토마스와, 그의 아내 엘렌을 향해 거대한 관과 수천 마리의 쥐 떼를 거느리고 다가오는 올록 백작의 모습은 고전 호러의 시각적 공포를 현대적으로 극대화한다.
에거스 감독은 무르나우가 저작권 문제를 피하기 위해 변주했던 설정들을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1922년 원작이 ‘햇빛’을 뱀파이어의 치명적 약점으로 설정하며 장르적 문법을 세웠다면, 이번 리메이크작은 뱀파이어를 끝장내는 힘을 ‘아침의 순수함’이라는 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또한 뱀파이어가 희생자의 목 대신 가슴을 물어뜯는 등 원작에 내재된 에로틱한 섹슈얼리티를 더욱 대담하고 진화된 방식으로 묘사한다.
배역진의 면모 또한 클래식 호러의 기품을 더한다. 베일에 싸여있던 올록 백작 역의 빌 스카르스고르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며, 릴리 로즈 뎁은 고전적이고 기이한 엘렌의 정서를 훌륭히 소화한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잔상과 전염병의 공포가 뒤섞였던 원작의 음산한 미학은 에거스 감독의 탐미적인 렌즈를 통해 완벽한 고딕 호러로 재탄생했다. <노스페라투>는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영원불멸한 뱀파이어 신화의 품격 있는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박재환.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