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북부 펀잡 주 출신의 타셈(타르셈/Tarsem Singh) 감독이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사이파이 심리호러 <더 셀>(2002) 이후 내놓은 두 번 째 작품 <더 폴>이 최근 ‘4K 복원’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극장에 다시 내걸렸다. 이 영화는 2008년 연말 <더 폴: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었다. 그 때 관람객 수는 2만 8천명. <더 셀>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더 폴>의 미학적 소문을 들었다면 극장에서 확인해볼만한 작품이다.
영화는 1915년, 미국 캘리포니아가 배경이다. 오렌지농장이 있고, 넓은 들판과 강물이 흐는 이곳은 나중에 ‘할리우드’가 되는 곳이다. 영화의 시작은 아마 흑백무성 촬영현장인 듯하다. 강물을 가로지르는 철교 위. 기차가 달려오고, 배우가 다리에 뛰어내리는 액션을 펼친다. 마치 사고가 난 듯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달려가고, 지켜보고 있다. 흑백의 영상으로, 슬로우비디오로! 그리고 병원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곳 병원 어린이 병동에는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서 팔에 깁스를 한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가 있고, 촬영장에서 추락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스턴트맨 로이가 입원해 있다. 호기심 많은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로이는 그런 알렉산드리아를 위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렉산더 대왕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로이의 이야기에 차례로 다섯 명의 전사가 등장한다. 조용한 인디언 전사, 활과 화살을 휘두르는 노예출신의 오타 벤가, 이탈리아 폭발물전문가 루이지, 월러스라는 애완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는 만물박사 찰스 다윈, 그리고 가면을 쓴 호전적 산적이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하며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모험이 이어진다. 로이가 들려주는 장대한 사랑과 복수의 대서사극의 결말을 듣기 위해 꼬마는 매일같이 로이를 찾아온다. 로이의 목적은 단 하나, 캐비닛의 ‘모르핀’을 몰래 가져다주면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 스턴트맨 로이는 촬영 중 말에서 떨어진 육신의 아픔과 연인을 빼앗겼다는 감정의 절벽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에겐 모르핀이 필요한 것이다.
타셈 감독은 로이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완성시키기 위해 세계 곳곳의 절경을 필름에 담는다. ‘블루 시티’로 나오는 곳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조드루프(Jodhpur)란다. 감독은 CG같은 인공적 노력대신 최대한 아날로그적 감성과 비주얼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단다.
● 스토리텔러와 리스너, 이야기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영화는 좋은 이야기의 완성에 대한 우화인 셈이다. 타셈 감독은 이야기라는 것은 누가 들려주고, 누가 듣는가에 따라, 상상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여준다, 로이는 스토리텔러로서의 목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아주 짧게, 아주 빨리 끝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 리스너가 있었기에 이야기는 생생하게 살아나면 생명력을 얻고 사방팔방으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로이가 말한 ‘인디언’의 경우, 스턴트맨 로이는 서부극 시대의 아메리칸 인디언을 생각했을 것이고, 알렉산드리아는 저 먼 서남아시아의 인도인을 생각했을 것이니. 다르게 달려가는 이야기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완벽한 이야기로 봉합된다. 행복한 결말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이.
영화가 끝난 뒤 보여주는 영사기 속 흑백영화에서는 위대한 영화인 ‘버스터 키튼’의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가 거짓말이고, 조작이고, 마술이고, 스턴트맨의 헌신이 녹아든 즐거운 오락거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면서 말이다. 순화하자면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상상의 소산’이란 것이다.
<더 폴>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디즈니스타일로 완성시킨 영화적 판타지이다. 버스터 키튼과 다름없는 마지막 스턴트 영상은 그걸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더 폴: 디렉터스 컷 (The Fall 4K re-mastered version) ▶감독/각본 : 타셈 ▶출연 : 리 페이스(로이/블랙 밴디트) 카틴카 언타루(알렉산드리아) 저스틴 와델(에블린) 다니엘 칼타지로네(싱클레어/오디어스) 마커스 웨슬리(얼음배달원/ 오타 벤가) 로빈 스미스(루이지) 레오 빌(찰스 다윈) ▶수입/배급 : 오드(AUD) ▶개봉: 2024년 12월 25일/ 12세이상관람가/ 119분
[사진=오드(A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