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火)은 고마우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가장 스마트한 전기차에서도 불이 나고, 인덕션을 건드린 고양이 때문에도 화재가 발생한다. 불이 나면 119로 전화할 것이고, 소방차는 긴급 출동한다. 불이 얼마나 더 번질지 모르니, 한 대만 달랑 출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방차는 좁은 골목길 초입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이중주차, 불법주차 차량 때문에. 이제부터 육중한 소방복을 입은 소방관은 각종 장비를 메고, 지고, 긴 소방호스를 들고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간다. 소방관의 임무이다. 그 판단이 숙명이기도 하다.
지난 4일 개봉된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은 그런 대한민국 소방관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순전히 지어낸 억지감동의 드라마가 아니다. 2001년 실제 발생했던 화재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인간극장이다. 화재는 2001년 3월 4일, 서울 홍제동에서 일어난 다세대주택 화재사건이었다.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은 서울서부소방서(現은평소방서)였다. 복잡한 주택가, 낡은 건물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진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그리고 그 안에 혹시 있을지 모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뛰어든다. “저 안에 우리 아들이 있다!”는 엄마의 외침에. (그 망나니 같은 아들이 불을 지르고, 이미 도망갔다) 때는 2001년! 소방관이 국가공무원 신분도 아니었고, <분노의 역류>(Backdraft)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소방관처럼 대우받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곽경택 감독은 20년 전의 화재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느 한구석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고귀한 공무원의 실상을 영화로 전해주는 것이다.
2001년의 소방서가 저랬단 말인가 싶은 한탄이 절로 나오는 초반부 이야기를 통해 당시 소방관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철웅(주원)이 신입구조대원으로 온다. 전입신고도 제대로 못한 채 현장으로 곧바로 출동한다. 사고현장은 끔찍하고, ‘살인적’이다. 그렇게 주원은 그곳에서 소방대원의 격무, 애환, 처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곳에는 베테랑 구조반장인 진섭(곽도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꿋꿋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투철한 소방대원이 있다. 그들 각자에게는 사연이 있고, 가정이 있고, 내일이 있다. 그리고, ‘홍제동 방화사건’이 일어나며 오직 책임감으로 버텨오던 소방관들이 어이없이 산화하는 것이다. 그 사고로 소방관 6명이 숨진다. 여명 밝아오를 때, 눈발이 내리고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 아래에서 생을 다하는 소방대원의 거친 마지막 숨결이 관객의 누선을 적신다.
영화는 소방대원의 노고와 희생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곽경택 감독은 당시의 열악한 소방관에 대한 대우를 드라마틱하게 전해준다. “소방점검 핑계대고 돈이나 뜯는 소방대원 운운”하는 황색언론 기자의 발언을 굳이 내세운 것은 이유가 있다. 소방서장 유재명이 자비로 방화 장갑을 구매하는 장면은 (아무리 2001년이었다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어쩌겠는가. 한국전쟁 때는 훈련도 제대로 못 마친 어린 학도병에게 총 한 자루를 안겨주고 전장에 내보냈고, 21세기에는 비옷 같은 복장으로 불구덩이에 뛰어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 나라인데.
주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이준혁, 오대환 등 배우들의 뜨거운 연기가 통속극 같은 영화에 힘을 준다. 논란 많은 곽도원 배우의 극중 역할은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영화 보는 내내 안타까움이 들 뿐이다.
론 하워드 감독의 <분노의 역류>(1991)를 보면 긴급 출동한 소방차가 주차한 차량을 밀어붙이고(깔아뭉개고!) 탱크처럼 화재현장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있다. 소화전 앞에 주차한 자동차의 창문을 박살내고 호스를 연결하는 통쾌한 모습도 있다. 소방관의 임무는 재빨리 달려가서 적시에 도착하여 최선을 다해 불을 끄고, 사람이 있으면 구해내는 것이다. 나머지, 그들이 입는 옷, 들고 있는 장비, 출동의 과정은 국민과 국가가 책임져야하는 것이다. 언젠가, 적시에 도움을 받으려면 말이다.
▶소방관 (영어제목: Firefighters) ▶감독: 곽경택 ▶원작:김연지 ▶각본:곽경택 김용대 최관영 ▶각색:이윤형 최석환 ▶출연: 주원, 곽도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이준혁, 장영남,황성준, 허진, 홍상표 ▶제작사: 에스크로드픽처스, 아센디오, 로니스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 ▶개봉:2024년12월4일/12세이상관람가/106분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