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내 집 마련이 요원한 이들에게 전세와 월세는 피할 수 없는 선택지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거주의 대가'는 삶의 질을 갉아먹고, 사회 초년생들을 옥탑방이나 반지하, 고시원 같은 한계 공간으로 내몬다. 윤은경 감독의 <세입자>는 바로 이러한 주거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한 '하이브리드 블랙 호러'다. 장은호 작가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흑백의 미학을 빌려 방구석 디스토피아의 풍경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적은 수입으로 원룸에서 근근이 버티는 신동(김대건)에게 청천벽력 같은 퇴거 통보가 날아든다. 갈 곳 없는 그는 기괴한 해결책을 택한다. 바로 '월월세'다. 좁은 원룸 화장실을 개조해 신혼부부(허동원, 박소현)를 들인 것이다. 하지만 증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변기 위 천장 좁은 구멍에 둥지를 튼 '천장세' 세입자까지 등장하며 '원룸-월월세-천장세'라는 기이한 공생의 사슬이 완성된다. 집을 지키려 시작한 계약은 어느새 신동을 옥죄는 거대한 덫이 되어버린다.
영화는 부동산 계약이 주는 근원적인 공포를 파고든다. 수압이나 방음 같은 물리적 조건보다,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진 시대의 서늘함이 화면을 지배한다. 윤은경 감독은 폐쇄적인 공간 연출을 통해 주인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을 극대화한다. 특히 보이지 않는 천장 위 존재가 주는 그로테스크한 긴장감은 개미지옥에 빠진 듯한 절망감을 선사한다.
작품이 흑백인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햇빛조차 허락되지 않는 유폐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색채란 사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호텔 레이크>를 통해 공간의 공포를 다뤘던 감독은 이번에도 환경오염, 계급 분화, 빈자의 비애를 좁은 방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세입자>는 단순한 호러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불안한 사회심리를 예리하게 노정하는 서늘한 자화상이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