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유의 집이 없는 사람은 어디서 사나. 전세를 살 것이다. 그런데 천정부지로 치솟는 ‘거주의 대가’는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별 수 없이 집의 규모를 줄이거나, 도심에서 멀어진다.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이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올 경우, (충분히 부자가 아니라면) 살 집은 고사하고 당분간 머물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옥탑방’이나 ‘반지하’같은 구조물, 혹은 고시원이 대안이다. 그런 ‘집 걱정’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공포스럽게 보게 될 것이다. 4일 개봉하는 윤은경 감독의 영화 <세입자>이다. <세입자>는 장은호 작가의 동명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옮긴 ‘하이브리드 블랙 호러’이다. 방구석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치는 세입자 이야기를 다루면서 한 발 걸쳐 환경오염, 부의 양극화 등 작금의 현실을 풍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흑백’이다.
작은 회사에서 악착같이 버티며 적은 수입으로 근근이 살고 있는 신동(김대건)의 거주공간은 작은 원룸이다. 작은 거실, 좁은 침실, 더 좁은 화장실은 그가 밤늦게 퇴근하여 잠시 잠들었다가 아침이면 서둘러 나가는 공간일 뿐이다. 집주인이 건물을 리모델링할 것이라며 퇴거를 종용한다. 이 수입과 이 현실에서 이곳을 나간다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뾰족한 수가 없다. 그때 친구가 ‘뾰족한 수’를 준다. ‘월월세’를 이용해라고. 이 집에 누군가 ‘월월세’계약을 맺고 들어와서 산다면 ‘집주인’은 함부로 퇴거시키지 못할 것이란다. 그런데 원룸인데? 놀랍게도 신혼부부가 계약을 맺고, ‘화장실’을 개조해서 들어앉는다. ‘원룸’의 기이한 공생이 시작된다. 그런데, 새끼는 새끼를 치며 번식하는 법. 이 좁은 집에 또 다른 세입자가 들어온다. 어디에? 화장실을 통해, 변기 위 좁은 구멍을 통해 ‘천장’에 둥지를 튼다는 것이다. 이른바 ‘천장세’. 이제 ‘원룸>월월세>천장세’의 사슬이 완성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세입자의 악몽과 집에 대한 근심걱정으로 ‘이사’를 도모하게 된다. 하지만 계약의 사슬은 그를 옭아맨다.
영화 <세입자>는 ‘전세계약’의 공포심에서 출발한다. 변기 물은 내려가는지, 방음은 잘 되는지, 바퀴벌레는 안 나오는지 같은 ‘품질’보다 집주인 혹은 세입자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계약기간의 도래에서 긴장감이 최고조가 된다.
윤은경 감독은 흑백의 영상에 숨 막힐 것 같은 등장인물로 극한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월월세’ 신혼부부(허동원-박소현)는 범상치 않은 모습이고, 머무르는 행태는 괴이하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얼굴도 못 본’ ‘천장세’ 세입자의 존재감은 그로테스크하다. 이제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주인공은 계약의 덫에, 집의 저주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원작 단편 <세입자>를 쓴 장은호 작가는 ‘의사’란다. 그러고 보니 굉장히 의학적 공포심이 느껴지는 이야기구조이다. 당연히 ‘정신과’적으로 말이다.
‘살 집’의 공포를 다룬 영화가 많다. 귀신들린 집 같은 고전적 호러에서 ‘틈입자’ 불청객으로 행복과 평안이 깨지는 내 집이야기, 그리고 <숨바꼭질> 같은 한국형 부동산호러까지. <세입자>는 모든 ‘집의 공포’의 집대성이다. 환경오염에 계급분화, 못 가진 자의 비애까지 좁은 공간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 영화가 흑백인 이유는 희망이 없기 때문인 듯하다. 햇빛이 들지 않고, 먼지가 흩날리며, 겨우 훔쳐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좁디좁은 공간의 유폐자에게 무슨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있을까.
<호텔 레이크>로 공간의 두려움을 극대화했던 윤은경 감독의 <세입자<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연출이 공포감을 극대화시키고, 처량한 세입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 작금의 불안한 사회심리를 민감하게 노정시킨다.
▶세입자 (The Tenants) ▶감독/각본: 윤은경 ▶원작: 장은호 단편소설 [천장세] ▶출연: 김대건, 허동원, 박소현▶제작: 올로미디어 ▶배급: ㈜인디스토리 ▶개봉:2024년 12월 4일/ 89분/ 15세이상관람가
[사진=인디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