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3'에서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고, '반칙왕'에서 가면 쓴 레슬러가 되고, 'YMCA야구단'에서 시대를 앞 선 야구를 했던 송강호가 스포츠무대로. 4일 개봉하는 신연식 감독의 <1승>이다. 송강호는 이번 영화에서 모든 것이 실패인 루저 인생의 배구선수 출신 생활인을 연기한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여자 프로배구팀 '핑크스톰'의 감독자리. 구단주(박정민)가 바라는 것은 시즌에서 '1승'이라도 올리는 것이다. 정신나간 구단주와 오합지졸 선수들을 거느리고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한다. 개봉을 앞두고 송강호 배우를 만나 '1승'의 진정한 의미를 들어보았다.
“지난 주말 개봉을 앞두고 극장을 돌며 무대인사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보신 어르신들도 좋아하시더라. 어려운 영화가 아니어서 다들 표정이 밝았다. 저도 이런 모습이 반가웠다. 그동안 이런 연기를 일부러 안 한 게 아니다. 못 한 것이다.”며 오랜만에 가벼운(!) 영화에 출연한 소감을 전했다.
Q. 시사회 때 ‘아기자기하다고 한 말이 화제가 되었다. 그럼, 이 영화의 아기자기한 재미는 어떤 것인지.
▶송강호: “카미오로 대단한 국가대표 선수가 나온다. 선수를 연기하는 배우들도 다양하다. 모델 출신도 있고, 배구 선수 출신도 있다.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한데 어울러 묘한 시너지를 낸다. 오합지졸이 하나씩 합을 맞춰 ‘1승’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 재미가 있다.”
Q. 극중 김우진 감독은 ‘20세기 선수출신’이다. 어떤 화법을 보여주려고 했는가.
▶송강호: “김우진은 선수 시절부터 상처를 많이 받은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다. 열정은 넘치는데 현실은 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세련된 화법으로 현실에 맞추기 보다는 고지식한 사고방식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충돌도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변화한다. 가끔씩 진지하다. 진심도 묻어나온다.”
Q. 과거 선수시절의 모습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송강호: “그게 그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감독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매끄럽고 세련된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우리 작품과 안 어울렸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전사를 소개하는 것이지만 그런 형태가 관객에게 만화 같은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이런 영화입니다’식으로.”
Q. 송강호 배우에게 <1승>은 어떤 영화인가.
▶송강호: “배우는 관객들의 마음을 읽어야 되는 사람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무겁고 진지하고, 깊이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해왔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반칙왕>, <조용한 가족>, <넘버 3> 이런 때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20여 년 만에 이런 연기를 보니 반가울 것이다. 물론, <삼식이 삼촌>도 그것만의 결이 있다. 배우로서 작품을 고를 때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애를 썼다. 완벽한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Q. 신연식 감독과는 세 작품을 해보니 어떤가.
▶송강호: “신연식 감독의 시선을 말하고 싶다. <동주>의 경우 우리는 윤동주 시를 기억하지만 그분의 삶에 대해, 발자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신 감독은 그런 시선을 담아낸다. 역사를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좋았다. <거미집>과 <삼식이 삼촌>보다 <1승>을 먼저 찍었었다.”
Q. 송강호의 연기론에 대해 하나 말하자면.
▶송강호: “영화판에서는 ‘마’를 줄인다고 한다. 설명되지 않은 영화적 시간을 최소화 시킬 때 좋은 연기가 나오더라. 그렇게 하면 편집도 수월하다. 후배에게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해 준다. 설명되지 않는 영화적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장면이 그런 케이스인가?) “예를 들어 첫 장면에서 애들에게 배구를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밖(코트)에 나갈 형편이 안 되니 이론만 가르친다. 그때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낸다. 물리적인 시간은 얼마 안 된다. 그런 연기는 감독의 현장 디렉팅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Q. 신연식 감독의 스포츠 영화는 어떤가.
▶송강호:“<1승>은 배구를 소재로 만든 첫 번 째 영화로서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완벽한 선수들이 모여 뭔가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허점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뭔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배구 선수로뿐만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신연식 감독만의 시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Q. 김우진은 능력 있는 운동선수, 감독인가? 이혼까지 한 신세이다.
▶송강호: “사실 주위에서 그런 사람 많이 봤다. 그들이 계속 선수생활을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어쩔 수 없이 은퇴하더라. 김우진도 그런 사람이다. 선수시절 지도자만 제대로 만났으면 국가대표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잠재되었던 것이 하나씩 일어나는 것이다.”
Q. 배우 송강호도 간절하게 ‘1승’을 소망하는지. 배우로서 다시 증명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송강호: “배우들은 다 그런 마음이다. 물론 결과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지만 말이다. <1승>도, <삼식이삼촌>도 <거미집>도 그랬다. 작품을 하면서 ‘뭔가를 보여 주겠어’ 이런 마음은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이 작품을 하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다. 그렇게 마음먹어도 결과가 잘 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Q. 작품을 고를 때 어떤 것을 보는지.
▶송강호: “제가 한동안 (흥행)성적이 좋지 않았다. 만약 흥행을 염두에 두고 안전한 선택을 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난 지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선택을 한 적이 없다.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작품이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면, 검증이 안 되고, 위험할 것 같은 작품도 고른다. 도전을 해보고 싶은 이야기라면 기꺼이 선택해온 것 같다. 그래서 한 동안은 무얼 해도 잘 되었고, 또 어떤 때는 다 안 되더라. 이게 인생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그럴 것이다.”
(그럼 ‘1승’은?) “이 영화는 스포츠, 배구만을 담은 게 아니다. 아마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갈 때 맛있는 ‘통닭’을 사가자기고 애들과 맛있게 먹는다면 그것도 ‘1승’이 될 것이다. 그런 작은 위안이 된다면 그 ‘1승’이 백승, 천승 만승이 될 수도 있다. 영화 <1승>이 조금이라도 관객에게 희망이 되고, 자신감을 회복시키게 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Q. 연기의 진정성에 대해.
▶송강호: “사실 나는 ‘진정성’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말하지 않아도 ‘진정성’을 갖고 있다. 배우라면 어떤 작품이든 진정성을 갖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연기에 임할 때 그런 표현은 적절한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뭔가 계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Q. 함께 연기한 박정민, 그리고 특별출연한 조정석 배우에 대한 평가.
▶송강호: “조정석 배우는 개인적으로 친하다. 같이 연기하게 되어 반가웠다. 흔쾌히 특별출연 해주었다.박정민은 <파수꾼> 때부터 좋아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 본인의 소양을 끊임없이 갈고닦는다. 지적인 소양,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로 연기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된다. 순간적인 장악력이 대단하다.”
Q. 한국영화 시장이 어렵다. 내년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선배 연기자로서 책임감을 느끼는지.
▶송강호: “계속 어려웠는데 더 어려워진다고? 나는 이런 상황이 침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고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그 과정에서 영화계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갈 것이라 믿는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다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다시 올 것이라고 본다. 영화만이 가진 독보적인 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Q. 영화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송강호: “부산에서 <거미집> 무대 인사를 할 때였다. 그 큰 극장에 관객이 열 분 정도 앉아있었다. 그 때 영화관이란 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와서, 티켓을 사고, 자리에 앉아, 영화를 기다린다.이런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자체를 잊고 있지 않았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생각을 하면서 ‘영화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배구협회와 많은 배구인들의 도움을 받아다. 전체 배구인들이 이 영화를 응원하더라. 성원 받은 만큼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될지 고민하며 찍었다. 한국배구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고 덧붙였다.
“다음 작품은 드라마 <내부자들>이다. 영화 '내부자들'의 프리퀄은 아니다. '내부자들'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그대로 차용되지만 새롭게 창작된 이야기다."고 밝혔다.
송강호의 새로운 도전 <1승>은 극장가에 1승을 올릴 수 있을까. 12월 4일 개봉한다.
[사진=(주)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