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웅 감독은 영화 매거진 기자(PD) 출신이다. 2002년에 1년 반 정도, 지금은 폐간된 [필름2.0]이라는 매체에서 PD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었단다. 영화관련 행사, 배우들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일. 콘텐츠 제작일을 했었단다. 그리고는 한예종(영상원)에 가서 영화를 ‘제대로’ 배우고 영화감독의 길을 간다. 장편 데뷔작 <불도저에 탄 소녀>로 호평을 받았고, 두 번째 작품 <아침바다 갈매기는>가 지난 달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날린다. 27일 개봉을 앞둔 박이웅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관객들 반응은 어땠는지.
▶박이웅 감독: “영화를 보고난 감상평은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웃더라. 나름 심각하게 생각했던 부분에서도 웃는 것이다. 아마 감정이 억눌린 상태라면 그런 반응이 잘 안 나올 텐데. 작품에 몰입해서 보신 것 같다.”
Q. 둘러서 왔지만, 결국 영화감독이 되었다.
▶박이웅 감독: “대학갈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공부 잘 한다고 (영화과) 원서를 안 써주더라. 그래서 대신 비슷한 신문방송학과 간 것이다. 영화감독의 길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영화)잡지사 공고를 보게 되었고 그 일을 하게 되었다. 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그 때 인연들이 많이 쌓였다. 지금도 현장에서 보게 된다.”
Q. <아침바다 갈매기>는 <불도저에 탄 소녀>보다 먼저 구상한 것이라고 밝혔는데.
▶박이웅 감독: “시나리오를 처음 쓴 것은 2008년, 영상원 2학년 졸업작품을 대신해서 뭘 쓸까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다. 단편 대신 장편을 해보고 싶었다. 그 동안 생각했던 것 중에서 고른 것이다. 친척들을 떠올리면 궁금한 게 많았다. 살가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조각난 이야기 단편들이 잘 모이지 않았다. 어릴 때, 시골마을에 가게 되면 보면서 가졌던 생각들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곳을 떠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재미 요소가 필요했다. 이 많은 단상들을 끌고 나갈 사람. 외국(선진국)이나 도회지가 아니라, 화폐 가치가 우리 보다 낮아, 그곳에 간다면 떵떵 거리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을 그리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와 같은 그림이 딸려오더라.”
Q. 그래도, 용수(박종환)가 단지 그런 이유로 그런 식으로 사라지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
▶박이웅 감독: “그렇게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 어촌마을의 상황, 주변의 처지를 고려해 보다면 설득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면도 그렇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윤주상)과 영란(카작)이 함께 춘천의 첫째 딸집에 갔을 때, 그 가족들이 나누는 대사가 있다. 베트남 이주여성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인제 숨기지 못하는 벽 같은 것이 있다. 이질감이랄까. 암묵적으로 전해지는 감정. 내재한 차별이 있는 것이다. 용수가 (한국을) 떠나려는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럭저럭 살아오다가 2년 전 카작을 만나, 같이 살면서 온전한 삶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용수가 베트남에 간다고 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영란이는 또 한국까지 와서 결혼하고 잘 살다가 다시 돌아온 것에 대 어떤 변명을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암담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영란이의 경우는 차라리 이런 인식들 속에서 사는 것 보다 돌아가서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Q. 박원상 배우가 연기한 형락이라는 인물도 그런 심정으로 마을 떠난다. 그는 서울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케이스다.
▶박이웅 감독: “형락(박원상)은 그 마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드러내기 위해, 마치 굴러온 돌처럼 마을에 균열을 내는 캐릭터로 설정이 되었다. 어쩌면 그 마을에 잠재된 문제를 먼저 눈치 채고 떠났을 것이다. 보험사기 비슷하게 마을사람들을 등치고 도망간 캐릭터이다. 용수가 형락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서울로 떠났다는 것이 잠재의식 속에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생각해보니, 시골뿐만 아니라 서울이든 도시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기가 싫다고 저기로 간다고 하더라도 이 나라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을 것이다.”
Q. 그럼 한국이 싫어서 베트남에 가면 그들이 행복할까.
▶박이웅 감독: “저는 그곳에서 가서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러 일들, 많은 사람들이 피곤하게 하는 것이 있다고 본다. 그런 것이 그 나라엔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이 똑같다는 수준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이주노동자,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는 외국 사람이 많다. 특별히 ‘베트남’을 설정한 이유가 있는지.
▶박이웅 감독: “초반에는 자연스럽게 베트남을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바꾸지 않고 유지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베트남은 과거 우리가 파병을 했던 나라이다. 그 나라에는 분명 우리나라에 대해 적개심이 있을 텐데 이쪽으로 일을 하러 오시는 분들도 있고, 이곳에 같이 살면서 뭔가가 바뀐다. 지금 베트남의 발전 속도는 엄청 빠르다. 언젠가는 역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재밌을 것 같아서 설정을 유지했다.”
Q. 베트남 새댁 영란을 연기한 카작이라는 배우에 대해 소개해 달라.
▶박이웅 감독: “한국의 다른 회사에서 웹드라마 촬영을 위해 베트남에서 캐스팅을 진행했었다. 그걸 수소문해서 50명 정도 오디션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줌으로. 카작은 단편을 하나 찍었고, 모델로 활동하던 중이었다. 꽤 유명한 브랜드 모델도 했고 인지도를 쌓아가던 중이었다. 캐스팅 제의할 때 개런티와 관계없이 출연하고 싶다고 하더라. 아마 한류의 영향일 수도 있고, 장편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감독이 요청하면 10초안에 눈물을 흘릴 연기적 기술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촬영 첫날 다 무너졌다. 한국어 대사 외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촬영 끝나면 계속 대사 연습했다. 자기 대사와 상대 대사를 계속 외우고 연습했다. 그 과정이 힘들었을 것이다. 강릉 쪽에서 초반 촬영 때 언덕길을 판례(양희경)와 함께 올라오는 장면이 있다. 경직되어 보였다. 그런데 양희경 배우가 이리 오라고하더니 꼭 안아주더라. 울컥하더라. 다행히 그런 감정이 잘 들어갔다. 카작 배우는 촬영 쉬는 날에는 쇼핑도 하고, 맛집 다니고 사진 찍고, 즐겁게 여행하는 것 같더라.”
Q. [아침바다 갈매기는] 권길상 작곡가의 동요 가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박이웅 감독: “바닷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이 제목이 떠올랐다. 우리 영화와 정서가 맞닿아있다고 본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그 동요의 첫 구절이다. 희망적인 노랫말인데 듣고 있으면 왠지 정서가 슬프다. 어릴 때는 동요를 들으면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섬집아기>처럼 왜 이렇게 슬프게 부를까. 대학 때 성석제의 단편소설에서 그것에 대해 언급한 게 있다. 가사는 이런데 이상하게 서글픈 이야기가 동요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들어있는 것과 둘러싸고 있는 것 사이에 갭이 있을 때 느끼는 감성.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내용은 빡빡한데, 좀 지나서 멀리서 보게 되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영화를 만들자는 목표가 생긴 것 같다.” (성석제의 ‘아침바다 바닥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는 [재미나는 인생] 초판본(1쇄)에만 수록되어 있단다)
Q.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인가.
▶박이웅 감독: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대학 다닐 때 단편소설학회 하면서 단편을 많이 읽었었다. 그게 자산이 된 것 같다. <돈키호테>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이해 안되는 인간본성을 다룬 소설을 많이 읽은 것 같다. <돈키호테> 보다가 혼자 울기도 했다. 그렇게 꽂힌 캐릭터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Q. 첫 장면에 보이는 절은 해동사이가?
▶박이웅 감독: “아니다. 감추사이다. 강원도 동해에 있는 작은 암자이다. 차를 타고 가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있다. 강원도에서 소화해야할 분량이 있어서 그곳에서 찍었다. 관광지처럼 조성되어 있지만 좀 더 허름하고, 외딴 느낌이 든다.”
Q. 캐스팅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전에 전작 <불도저에 탄 소녀>에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나온 게 의아했다.
▶박이웅 감독: “캐스팅을 진행할 때 아주 적절한 누군가를 찾는 것보다는 의외의 인물을 찾는 게 매력적이더라. 김혜윤 배우의 경우에도 딱 맞는 역할은 아니었다. 키가 좀 더 크다든지 삭막하게 생겨야했을 것이다. 배우에게 뭔가 있어 보였다. 몇 번 만난 뒤 결정했다. 그런 분을 캐스팅했을 때 결과가 좋더라. 그런 배우를 찾기 위해 사진을 펼쳐놓고 오래 보는 편이다. 마치 관상 보듯이. 어딘가 반짝이는 면이 있는가 본다. 예성 배우는 다른 작품에서 날카로운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하더라. 제가 좋아하는 연기 톤이었다. 나른한 형사의 역할이었다. 윤주상, 양희경, 정애화 배우 같은 연배의 연기자들을 어마어마한 연기력을 가졌기에 무대만 잘 깔아놓으면 각자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신다.”
Q.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베트남 새댁 영란이 같은 베트남 이주여성과 신세한탄(!)을 하는 장면이다. 머나먼 나라로 시집 왔는데, 한국 남편이 베트남 말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박이웅 감독: “그 장면을 편집에서 빼자는 사람도 있었다. 극 진행에서 너무 한가롭다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들의 고민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초기 시나리오부터 들어있던 장면이다. 제가 어촌 마을을 관찰해 보니까 결혼하면 가족이 되는 것이고, 말도 배워 보려고 하고, 가르치려고 하고, 그런 게 교류일 것이다. 멀리서 볼 때 가족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제가 본 많은 모습에서는 가족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물과 기름같이 섞여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살고는 있지만 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잘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신한 설정을 넣은 것도 그래서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 구상하여 마지막 시나리오를 고칠 때까지 14년이 걸렸다. 2022년 마지막 고칠 때 어촌 마을을 다시 한 번 가 봤었다. 그런데 예전에 봤을 때와 조금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나이만 더 먹은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지방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명확하다. 어린이가 사라지고,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시골 마을이 우리 미래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힘들게 해서 떠나보내게 허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것, 좋은 것을 나눠보자는 바람이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떠나는 것이 차라리 나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Q. 영화감독의 꿈은 어떻게 단련되었는지.
▶박이웅 감독: “글쎄. 고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비디오테이프를 이렇게 쌓아놓고 보셨다. 외삼촌은 극장에서 영화보고 와서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에일리언2>를 보고 와서는 줄거리를 이상하게 섞어서 전해주었는데 그게 매력적이었다. 아버지가 6밀리인지, 8밀리인지 카메라 사주셔서 그것을 차에 올려 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재밌었다. <인디애너 존스> 같은 판타지 모험 어드벤처가 매력적이었다. 남들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이야기할 때 나는 <레옹>이나 <쇼생크탈출> 이런 것을 동경했다.” (영상원 가서는?) “내가 영상원에 간 이유는 제일 잘하는 사람과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겨례문화학교에서 영화를 조금 배웠을 뿐이다. 그래서 영화를 제일 잘하는 사람과 함께 찍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에 제일 잘하는 친구들이 그곳에 와있었다. 그들은 시나리오 어떻게 쓰는지, 현장에서 어떻게 연출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이창동, 박광수 감독님에게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좀 확 넓어진 감이 있다. 영화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시학>에 나오는 비극적 요소들을 배웠다. 단순히 즐길 거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갖는 공포나 두려움, 카타르시스를 통해 해소해주고 위로 해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후 만들 내 영화의 지표가 되었다. 미학적인 것은 다 혼자 해야 해요. 촬영의 기술 이런 것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 극장에는 마술사(위키드)나 검투사(글래디에이터2)가 상영 중이다. 제 이야기는 주변의 이야기이다. 영웅들이 나오는 판타지가 아니라, 지극히 허술한 인물이 나와서 펼치는 이야기이다. 보고 즐기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연말에 보시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많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처럼,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극화한 것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직후이다. 조선시대에 그런 비슷한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야기로 담았다.”고 한다.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헤어컷에 대해 질문했다. “오래전부터 직접 ‘바리캉’으로 직접 이발한다. 2주에 한 번씩.”
박이웅 감독의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27일 개봉한다.
[사진=㈜트리플픽쳐스/㈜고집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