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정통의 단막극 프로그램인 ‘드라마스페셜’이 올해에도 다양한 장르의 흥미로운, 그리고 재기 넘치는 단막극을 ‘5편’ 준비했다. 5일 방송된 2024시즌 첫 작품은 탕준상, 남다름 주연의 <사관은 논한다>이다. 사관(史官)은 역사편찬의 기초자료가 되는 초고(草稿)를 쓰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로, 조선시대 예문관 검열과 승정원의 주서를 말한다. <사관은 논한다>에서 탕준상이 연기하는 남여강은 예문관의 검열 직책으로 왕의 어전회의에 참여하여 매일매일의 일들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드라마스페셜 ‘사관은 논한다’는 [본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부사항 및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픽션입니다]라는 안내문가 함께 시작된다.
신록이 푸르른 풀밭에서 두 아이가 뛰어놀고 있다. 둘이 엉켜 싸우다 한 아이의 입술에 피가 흐른다. 어린 왕세자와 그의 놀이친구(陪童)이다. 15년의 시간이 흐른 뒤 왕세자는 이제 왕의 보좌에 오를 것이고, 철딱서니 없이 같이 놀던 아이는 예문관의 사관이 되어 조정 대신의 회의에서 왕과 대소신하들이 국사를 논하는 것을 빠짐없이 받아적고 있다. 사관의 임무는 단 하나, 실록에 쓰일 매일의 국정대소사를 과감 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동궁저하(세자)가 서고에 나타나서 ‘임오년’의 기록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임오년의 기록’이라니. 예문관과 승정원, 나아가 궁궐에서 제일 금기시 디는 사항이 바로 그 일 아니던가. “첫째, 임오년의 일을 알려하지 말라. 둘째, 임오년의 일을 알았다면 그것에 대해 절대 논하지 마라.”는 것. 신 주사는 여강에게 "한번 기록되어버린 과거는 그것을 열 때마다 되살아나지. 허나 우린 다만 기록하고 지키는 자일뿐 되살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고 말한다. 신주사도 세자의 부름을 받고 동궁을 다녀온 뒤 무슨 일인지 대들보에 목을 매고 자진한다. 도대체 임오년의 일이란 게 무엇이었을까. 바로 1762년(영조38년)에 벌어진 임오화변(壬午禍變)이다. 영조가 왕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즉,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동궁의 세자는 바로 정조였던 것이다.
영조의 병이 깊어가고, 세자가 왕위에 오를 준비를 하며 깊은 고뇌에 빠진다. “내 아비(사도세자)의 일로 시비를 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내가 보위에 오르면 또 피바람이 불 것이다. 난 과거에 붙잡힌 소모적인 일을 끝내고 새 조선을 열고 싶을 뿐이다.”고.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은 사초를 다 뒤져 ‘임오년의 기록’을 모두 없애버리려는 것이었다. 세자의 깊은 뜻, 탕평책의 고심책을 예문관의 일개 사관이 딴죽을 걸고 나서는 것이다. “사도세자가 돌아가신 것은 저하의 탓이 아닙니다. 임오년에 쓰인 어떤 일도 저하의 탓이 아닙니다. 그것 또한 역사입니다. 피땀으로 기록한 것은 저하의 것도, 저희의 것도 아닙니다.”고 눈물로 간한다. 결국 ‘새 조선’을 열기로 마음먹은 왕은 사관의 기록을 세초(洗草)하던 세검정의 차일암에서 여강을 베고 만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에 걸쳐 472년의 조선 왕조의 역사적 사실이 편년체로 기술되어있다. 왕이 승하(昇遐)하면 제일 먼저 ‘실록청’이 세워져서 선왕의 실록이 편찬된다. 정확한 역사기록을 위해 사초,시정기,승정원 일기, 경연일기 등 모든 문서들이 참고가 된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는 특이하게도 ‘사신(史臣)은 논한다..’라는 형식으로 사관의 의견이 첨가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이야기는 2020년 5월 6일 방송된 [KBS역사스페셜]을 참조하시길)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한 문장에서 상상력이 발휘된 것이라고 제작사는 밝혔다. 광해8년 2월 28일자 기록에는 “숨겨야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고 전교했다.”고. 과연 그 숨겨야할 일들이 무엇이었을까. 드라마 ‘사관은 논한다’는 그동안 숱하게 나온 ‘영조-사도세자-정조’의 역사이야기를 한 번 더 비틀며 흥미롭게 조선사에 접근했다. 왕조의 안정, 절절한 효심, 당파싸움 등 조선사 클리세가 60분 남짓 단막극에 오롯이 펼쳐진다. 그리고, ‘정직한 기록’을 위해선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당당한 사관의 모습이 고결한 직업정신을 알려준다. 물론, ‘당대의 사관’은 위정자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서일 것이다. 오늘날로 바꾼다면? 대통령이든, 회장님이든 최고의 결정권자 옆에는 자신의 안위와는 상관없이 올곧은 소리를 할 줄 아는 용자(勇者)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스핀닥터’가 아니라 ‘레드팀’의 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는 사람이 역사의 승자가 될 것이다.
한편, ‘드라마 스페셜 2024’의 두 번째 단막극 ‘핸섬을 찾아라’는 12일(화) 밤 10시 45분 방송된다.
▶KBS 드라마스페셜2024 ‘사관은 논한다’ ▶연출:이가람 ▶극본:임의정 ▶출연: 탕준상(남여강) 남다름(동궁) 신희수(윤나무) 서진원(좌의정) 최희진(혜빈 홍씨) 김다흰(도승지) 조한철(왕) 주연우(유서리) 정우재(임검열) 정승진(최검열) 이순원(폐세자) 최예찬(어린 여강) 이천무(어린 동궁) ▶한문번역:최주영 ▶서예대필:이동원 조승원 ▶역사자문:주채영 ▶방송: 2024년 11월 5일 KBS 2TV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