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설’은 배우 한소희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작품이다. 2019년에 크랭크인 한 영화인데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비로소 공개되고, 내일(23일) 마침내 극장 개봉된다.
영화 <폭설>은 윤수익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데뷔작 <그로기 썸머>도 2013년 전주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그 영화도 청춘드라마였단다. 10년의 세월동안, 그리고 5년을 갈고 닦은 신작 <폭설>은 어떤 영화일까. 영화는 한소희가 나왔고, 퀴어무비라는 것만 알려졌다.
영화가 시작하면 한 고등학교 연극반 연습 모습을 보여준다. 강원도 양양의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둥글게 앉아서 수안이 펼치는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준비 중인 모양이다. 이곳에 어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한 설이가 무슨 일인지 이 학교로 전학온 것이다. 연기가 되고, 인기가 있는 ‘설이’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수안은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가까워진다. 둘은 양야의 겨울바다로 간다. 서로의 고민과 불안을 나눈다. 그들 앞에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이제 둘은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다. 겨울 바다도, 세찬 파도도, 몰려오는 불안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둘은 헤어져 있다. 수인은 서울로 갔고, 수안은 남겨졌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겨울 바닷가에서 다시 만난다. 이제 수안은 인기배우가 되어 있고, 설이는 모든 것이 비틀대는 모양이다. 둘은 겨울바다로 향하고, 서핑을 하고, 모래밭에 도달하고, 숲속 오두막집에서 추위를 견뎌낸다. 환상인지, 꿈인지.
예술고등학교 학생으로 처음 만난 설이와 수안은 ‘연기’에 대한 열정과 ‘현실’에 대한 불안감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아마도, 아역 때부터 습관적으로, 강압적으로 내몰리며 연기를 하며, 인기를 얻어온 설이는 슬럼프에 빠진 것일 수도 있고, 스캔들에 휩싸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어린 시절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자아를 찾으려는 방황인 지도 모른다. 설이와 수안에게는 퀴어 멜로로서의 휘발성은 거의 없다. 설이에게는 절박함이, 수안에게는 현실감이 떨어진다. 대신 서핑으로 둘에게 닥친 세파를 대신한다. 그렇다고 서핑에 대한 진정성이나, 극적 효과도 없다. 모든 것이 잔잔한 바다에 이뤄지는 소녀미 가득한 멜로물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삼키고, 폭설은 소복이 덮어버린다. 그런데 그게 청춘의 한 때, 열정의 순간을 상징할 수 있을까. 아니, 윤수익 감독은 그것을 제대로 표상화 했을까. 모든 것이 아쉬운 범작이다. 그래도 양양의 추운 겨울바다의 뜨거운 서핑의 열정은 남아있는 작품이다.
▶폭설 ▶감독/각본:윤수익 ▶각색:박근영 ▶출연:한해인,한소희,박인하,정수지,장혁진 ▶제작:LINT FILM ▶배급:판씨네마㈜ ▶개봉:2024년 10월 23일
[사진=판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