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극장의 라인업 공백'에 뜻밖의 영화들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2일) 개봉하는 영화 <타인의 삶>은 지난 2007년에 개봉되었던 독일영화이다. 감독 이름부터 '독일'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이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탄 것을 비롯하여 많은 베스트목록에서 오랫동안 '최고의 영화'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영화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의 비밀정보기관이었던 슈타지의 비밀요원이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사상적으로 수상하고,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추적, 감시, 때로는 고문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감시망에 예술인들이 걸려든다. 그는 오랫동안 그들을 도청하며, 그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들의 삶을 훔치면서, 그의 인생도 바뀌기 시작한다.
영화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에 시작된다. 코드명 'HGW XX/7'을 가진 비즐러는 나라와 자신의 신념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던 냉혈인간이다. 그에게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영화 초반에 그가 슈타지 후보생에게 자신이 터득한 수사기법을 강의하는 장면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잠을 재우지 마라. 결백한 사람은 여기서 화를 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용하거나 침묵하거나 운다." 그의 이런 냉혈적 첩보활동은 전편에 이어진다. 상관 그루비츠 국장의 지시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몰래 빈집에 가서 집안 구석 곳곳에, 침실과 욕실에까지 도청장치를 깔아놓는다. 그런데, 차츰 그가 듣게 되는 것은 '독재체제에 대한 불만, 창작에 대한 열정'의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소리이다. 동독 문화부 장관은 크리스타를 성적 노리개로 삼고 있었다.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도청하다 점차 자신의 본분을 잃게 된다. 어쩌면 크리스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위험에 처한 결정적 순간에 그는, '냉혈한 슈타지'에서 '따뜻한 인간'으로 변한다.
주인공 비즐러를 연기한 울리히 뮈에는 이 작품으로 독일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독일 영화상'을 비롯해 유럽 각국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석권했다. 그리고 이듬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이 된 셈. 실제 동독 출신의 울리히 뮈에도 슈타지의 감시를 받았다고. 그런데, 그를 감시했던 사람이 같이 연극 활동을 했던 아내(전처)였었다고.
영화 마지막에 극작가 드라이만은 독일이 통일된 뒤 슈타지의 감찰 파일을 열람하면서 비로소 비밀요원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Die Sonate Vom Guten Menschen)'라는 작품을 쓰고, 그 첫 페이지에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남긴다.
이 영화에서 슈타지의 수사기법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취조실에 앉힐 때 두 손을 허벅지 밑에 두라고 명령하는 것. 손바닥의 땀과 체취는 고스란히 의자 커버에 베인다. 슈타지는 그 의자커버를 따로 유리병에 보관해 둔다. 나중에 추적할 때 군견을 동원할 수 있도록.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슈타지의 음흠한 기록들은 고스란히 남아, 그 시대의 동독인의 삶과 예술인의 번뇌를 각인시킨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 파쇄되어 사라진 ‘착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뜨겁고도 차가운 걸작이다.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The Lives Of Others)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출연: 울리히 뮈에(게르트 비즐러), 제바스티안 코흐(드라이만), 마르티나 게덱(크리스타), 울리히 투쿠르(상관 그루비츠),(토마스 티에메 (헴프 장관) ▶개봉:2024년 10월2일/15세이상관람가/1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