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장 뤽 고다드 감독의 클래식 흑백영화 <국외자들>(1964)이 한국의 극장에서 개봉된다. 그동안 수십 번 복사를 거듭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시네필을 매혹시켰던, 그리고 시네마떼크에서 매니아를 우쭐하게 만들었던 그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상영되는 곳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니 잘 챙겨보시길.
장 뤽 고다르는 프랑스와 트뤼포 등과 함께 누벨바그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기존의 영화작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만의 영상미학을 만들어갔는데 이런 시도는 점차 세계 곳곳의 신진 영화세력에 영향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이마무라 쇼헤이 등이, 홍콩에서는 서극 등이, 대만에서는 후효현 등이 뉴 웨이브(新浪潮)의 기수로 통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장선우, 박광수, 이명세 등이 ‘코리안 뉴웨이브’를 주도했다는 식이다. 여하튼 영화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영화인이다.
<국외자들>은 프랑스의 두 건달이 순진한 여자 하나를 꼬셔 가정집 옷장 속의 거금을 훔치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범죄물이지만 캐릭터와 스토리의 전개는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고다르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바로 이해한다.
파리 교외 주앵빌르퐁, 차들로 붐비는 교차로. 아르튀르와 프란츠는 차를 타고 강가에 접한 한 2층집을 살펴보고 있다. 순진한 여자 오딜은 이 집에 하숙 들어 살고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주인집 2층 옷장에 돈다발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셋은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며 서로 알게 된 사이인 듯. ‘놈팡이’임에 분명한 아르튀르와 프란츠는 오딜을 ‘가스라이팅’한다. 이제 그 돈을 어떻게 훔칠 것인지 셋은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학원에서, 카페에서, 프란츠의 차 안에서. 한편으로는 시시덕대면서도 한편으로는 잠입한 기회를 엿본다. 그런데, 오딜이 머뭇거리는 것과 함께 아르튀르의 난폭한 삼촌도 그 돈을 노리고 있다. 이제 돈다발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된다.
<국외자들>은 흔한 ‘범죄물’이다. 한탕 노리는 악당과 마지못해 합류한 공범, 그리고 그에 끼어드는 또 다른 악당. 속셈을 숨기는 범인이 있고, 한바탕 소동 끝에 범죄행각은 거의 무위로 돌아갈 판국이다. 장 뤽 고다드 감독은 초반에 세 명의 성격과 그들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펼치게 될지 관찰하듯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영화사에 길이 남은 장면들이 속출한다.
영어교습소에서 강사는 열심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읊조리고 세 명은 정신없이 자리를 바꿔가며 시선끌기를 한다. 그리고, 카페에 앉아 뜬금없이 ‘1분간 정적’의 시간을 갖자고 말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미학 중 하나는 ‘자연스러운 현장감’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외부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쉴 새 없이 들려온다. 오직 그 ‘침묵의 1분’ 시퀀스에서 소음(消音)된다. (정확히는 37초란다!) 그리고, 세 사람이 카페에서 흐느적대며 춤을 춘다. 타란티노 감독이 <펄프 픽션>에서 존 트라볼타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며 재연했단다. 그리고 진짜 뜬금없지만 세 사람은 ‘루브르 박물관’ 내부를 달려간다. 단지 ‘기록을 깨기 위해서! 문화의 나라, 루브르의 도시에서 이런 비문명적 놀이를 즐기다니. 이 장면은 ’누벨바그‘의 실험정신,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명장면일 것이다. 루브르에 전시된 그림들이 대표하는 기존의 예술에 대한 반항과 도전이 무모한 청춘의 질주로 표출되는 것이리라.
영화에서 세 사람이 카페를 나와 어두운 파리 시내를 방황하는 장면이 있다. 흑백의 영상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네온사인은 ’누벨 바그‘라는 가게이다. 고다드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영상미학의 낙관을 찍은 셈이다.
장 뤽 고다드와 프랑소와 트뤼포의 관계, 그리고, 또 한 명의 누벨 바그 기수인 루이 말까지 생각한다면 ’영어교습소‘에서는 꽤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고간다. “클래식=모던”이라는 이야기에서부터 “100만 달러 영화”라는 대사까지. 물론, “요즘은 영어 말고, 중국어가 대세랍니다”같은 말까지 들을 수 있다니. 아참,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에 나왔던 ’발 없는 새‘ 이야기도 이 영화에 등장한다. 마지막에 아르튀르가 죽어갈 때 고다르의 내레이션이다.
....아르튀르는 죽어가며 오딜을 떠올렸다. 그는 검은 안개 속에서 인디언 전설에 나오는 새를 봤다. 발이 없어서 영원히 못 앉는 그 새는 높은 바람 위에서 자고, 죽을 때 빼고는 안 보인다. 날개는 투명하고 길지만 날개를 접으면 손바닥에 잡히는 크기다....
그러고 보면, 아르튀르와 프란츠 두 사람이 목표로 삼은 집을 염탐할 때 갑자기 애들 같이 총격전을 펼친다. 그 전에 뜬금없이 “1881년 7월 14일 팻 개릿이 빌리 더 키드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신문 기사를 읽는다. 할리우드의 대중문화 이미지를 따라하고, 흉내 내고, 스스로 전복하고, 새로운 미학을 창조한 셈이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무려 60년 전 흑백영화 <국외자들>은 ‘누벨 바그’라는 용어의 무게감 이상으로 훌륭하고, 재밌고, 까다로운 걸작이다. 도전해 보시라.
▶국외자들 (Bande à part/Band of Outsiders) ▶감독: 장 뤽 고다드 원작: 돌로레스 히친스 소설 ’Fools' Gold‘ ▶출연: 안나 카리나(오딜), 다니엘레 지라르(영어 강사), 사미 프레이(프란츠), 클로드 브라자르(아르튀르) ▶수입/배급:엠엔엠인터내셔널㈜ ▶개봉:2024년 9월25일/95분/12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