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할 때가 있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저 사람이 꼭 저래야하는지 짜증을 내며, 화를 내기도 하고, 저런 사람과는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픈 것이라면? 자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말이다. 내가 그러하다면?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새벽의 모든>에는 아픈 여자와 아픈 남자가 등장한다. ‘후지사와’는 PMS(premenstrual syndromepms, 생리 전 증후군)가 심하다. 그 날이 되면 짜증을 억제할 수가 없고, 신경을 거슬리는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의 소리를 여과 없이 내뱉고 만다. 직장생활이 수월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살았을 후지사와는 이제 ‘쿠리타과학’(栗田科学)이라는 자그마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직장동료들은 후지사와를 이해하고, 잘 보듬어주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옆자리 ‘야마조에’에게 화가 나서 감정조절에 실패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야마조에에게도 아픔이 있다. 공황장애를 갖고 있다. 이제 PMS의 여자와 공황장애의 남자는 서로의 처지를 남들보다는 조금 더 이해하고, 서로가 일상을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응원하기 시작한다.
세오 마이코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새벽의 모든>은 전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이어 미야케 쇼 감독이 다시 한 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이른바 루저의 로맨스가 아니라, 독특한 남과 여가 연애 이외의 방법으로 서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작품이다. ‘쿠리타과학’이라는 행복한 회사에서 둘은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을 뿐인데, 마치 천생배필을 만난 듯하다. 하지만 둘은 연애를 하지는 않는다. 야마조에 집의 좁은 방에서 책을 읽고, 과자를 먹는 장면에서 둘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일상을 행복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PMS의 고통이 어떤지 (남자인 필자는) 솔직히 체감할 수 없다. 똑같은 이유로 공황장애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무감각한)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매순간의 삶이 힘들 것이다. 미야케 쇼 감독은 엄청난 치유책을 내놓지 않는다. 결국 사회적 인간은 어떻게든 그 사회에서 살아가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원작과 달리 둘이 우연히 앉게 된 새 직장 쿠리타과학이 ‘어린이 과학도구 제조회사’인 것은 이유가 있다. 어두운 밤하늘 별자리와 해와 달의 운항을 통해 광명의 순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밤이 충분히 어두워지면 이제 밝음만이 있을 터이니.
마지막에 관객들은 쿠리타과학의 상품 ‘플라네타륨’ 안에서 별자리를 함께 보게 된다. 영화는 새벽의 광명보다는 저녁의 어둠에 주의를 기울인다. 밤이 깊기에 빛의 소중함, 아픔이 깊기에 주위사람의 온기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사실 알고 보면 쿠리타과학의 사장도 ‘동생의 죽음’이라는 아픔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전직한 야마조에를 끝까지 챙기는 전 회사의 상사도 그렇고, 세상엔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새벽의 모든>을 보고나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질 것 같다.
▶새벽의 모든 (夜明けのすべて) ▶감독: 미야케 쇼(三宅唱) ▶각본: 미야케 쇼, 와다 키요토 ▶원작: 세오 마이코(瀬尾まいこ) 소설 ▶출연:마츠무라 호쿠토(야마조에), 카미시라이시 모네(후지사와), 미츠이시 켄, 시부카와 키요히코 ▶개봉:2024년 9월 18일/119분/전체관람가